전문가 칼럼
한류는 어떻게 세계 최강의 문화 브랜드가 됐나?[허태윤의 브랜드 스토리]
-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 되는 시대
[허태윤 칼럼니스트] 파리, 밀라노, 뉴욕. 세계 패션의 중심지에서 지금 가장 주목받는 얼굴은 금발의 서구 모델들이 아니다. 블랙핑크, BTS, 뉴진스, 스트레이키즈 등 한국 아이돌들이 샤넬, 루이비통, 디올 같은 초일류 명품의 얼굴이 됐다.
100년 전통의 유럽 명품 하우스들이 앞다퉈 K-팝 스타를 뮤즈로 선택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이제 '문화 권력'의 중심이 동아시아의 작은 반도국가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를 석권하고, '오징어게임'이 넷플릭스 역사를 새로 쓰며, 불닭볶음면이 전 세계 식탁을 점령했다.
10여년 전만 해도 "한국이 어디에 있는 나라냐"고 묻던 서구인들이 이제는 한국어를 배우고, 김치를 담그며, 블랙핑크 콘서트 티켓을 구하기 위해 밤을 새운다. 이것은 우연일까? 아니다. 체계적인 브랜딩 전략이 만들어낸 21세기 최대의 문화 혁명이다. 한류가 일시적 유행을 넘어 세계 최강의 문화 브랜드가 된 비결은 무엇일까.
스토리가 브랜드가 되다
한류 성공의 첫 번째 열쇠는 '가장 한국적인 것으로 가장 세계적인 것'을 만들어낸 스토리텔링이다.
'기생충'의 반지하. 세계 어디에도 없는 이 기묘한 주거 형태가 아카데미를 정복했다. 봉준호는 와이파이를 찾아 화장실에 쪽그리고 앉는 가족, 폭우에 변기물이 역류하는 집을 통해 21세기 자본주의의 잔인한 계급 구조를 폭로했다. 반지하라는 극히 한국적 공간이 '위로 올라가고 싶지만 올라갈 수 없는' 전 인류의 좌절을 대변한 것이다.
'오징어게임'은 더 극단적이다. 456억 빚에 쫓기는 한국인들이 목숨을 걸고 구슬치기를 한다. 한국의 가계부채는 GDP 대비 106%로 세계 최고 수준. 하지만 황동혁 감독이 천재적이었던 것은 이 한국적 비극을 어린 시절 놀이와 결합시킨 점이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달고나 뽑기 - 순수했던 놀이가 생존게임이 되는 아이러니. 전 세계 1억 1,100만 가구가 열광한 이유는 자신들도 매일 비슷한 생존게임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BTS의 '뱁새'는 한국의 '금수저, 흙수저' 신조어를 세계 청년들의 애국가로 만들었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면 가랑이가 찢어진다" - 이 토속적인 속담이 어떻게 빌보드를 울렸을까? "노력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라는 뼈아픈 자조가 오히려 전 세계 청년들에게 위로가 됐기 때문이다. 한국의 '헬조선'이 프랑스의 '잃어버린 세대', 일본의 '사토리 세대', 미국의 '밀레니얼 푸어'를 하나로 연결했다.
봉준호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말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한류의 비밀이 바로 여기에 있다. 할리우드를 흉내 내지 않고 오히려 가장 한국적인 것에 천착했을 때, 인류 보편의 감정을 건드렸다. 압축성장의 부작용, 극한 경쟁, 양극화 - 한국이라는 '자본주의 실험실'에서 벌어진 극단적 현상들이 21세기 인류의 가장 정직한 거울이 된 것이다.
한류의 두 번째 성공 비결은 디지털 플랫폼의 전략적 활용이다. 자본력의 한계를 기술과 창의력으로 극복했다. 2013년 무명으로 데뷔한 BTS는 방송 출연이 어려웠다. 하지만 이들은 SNS를 단순한 홍보 도구가 아닌 '팬과의 일상 공유 플랫폼'으로 재정의했다. 새벽에 먹는 라면, 연습실에서의 실수, 멤버들 간의 사소한 대화까지 모든 것을 공개했다. 이는 기존 K-팝의 '신비주의' 전략을 완전히 뒤집은 것이었다. 현재 BTS의 유튜브 구독자는 8160만명에 달한다. 더욱 인상적인 것은 이들이 만든 'SNS를 통한 진정성 있는 소통' 모델이 전 세계 아티스트들의 새로운 표준이 됐다는 점이다.
이후 스트레이키즈, 세븐틴, 엔하이픈 등 모든 K-팝 그룹이 이 모델을 따랐고, 아리아나 그란데, 듀아 리파 같은 서구 아티스트들도 팬과의 일상적 소통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아울러 웹툰 플랫폼의 성공, 틱톡과 K 팝의 시너지, 게임을 통한 문화전파, 넷플릭스를 활용한 콘텐츠 확산전략 역시 한류 브랜딩의 큰 역할을 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세 번째 성공 요인은 'K'가 단순한 원산지 표시를 넘어 '품질 보증 마크'가 됐다는 점이다. BTS, 블랙핑크, 기생충, 오징어게임 등 한류의 연속적 성공이 'K=고품질'이라는 인식을 강화했다. 실제로 2022년 한국 이미지 조사(문화체육관광부)에서 외국인들이 한국하면 떠올리는 이미지 1위가 'K-팝'(36.2%), 2위가 '혁신적 기술'(28.1%)로 나타났다. 문화적 성공이 국가 전체 이미지를 끌어올린 것이다.
2020년 '기생충' 아카데미 수상 직후, 미국 아마존에서 'Korean' 태그가 붙은 제품 매출이 85% 증가했다. 짜파구리를 검색한 미국인들이 김치, 고추장, 심지어 한국산 프라이팬까지 함께 구매한 것이다. 이는 'K'가 개별 산업을 넘어 하나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가 됐음을 보여준다. 미국에서 CJ ‘비비고 만두’가 중국 만두보다 20% 비싸도 미국 시장 1위가 된 것, K뷰티 브랜드가중국시장에서 프리미엄브랜드로 포지셔닝 된 것 모두 'K=혁신+품질'이라는 브랜드 프리미엄 덕분이다.
문화가 산업이 되다
네 번째 성공 비결은 정부와 민간의 유기적 협업이다. 한류는 자연발생적 현상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20년 이상의 체계적 지원이 있었다. 1998년 김대중 정부의 '문화산업진흥기본법' 제정은 단순한 법률 제정이 아니었다. 문화를 '비용'이 아닌 '투자'로, '예술'을 넘어 '산업'으로 인식한 패러다임 전환이었다. "21세기는 문화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한다"는 당시의 선언은 20년 후 현실이 됐다. 특히 주목할 점은 '팔길이 원칙’(Arm's Length Principle)이다. 정부가 팔 길이만큼 거리를 두고 지원한다는 의미로, 창작자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면서 간접 지원하는 방식이다.
파리, 밀라노, 뉴욕의 명품들이 K-팝 스타를 뮤즈로 모시는 시대. "한국이 어디냐"고 묻던 세계가 이제는 한국어를 배우고 김치를 담그는 시대. 이 놀라운 전환의 비밀은 무엇이었나? 한류는 네 가지 혁신으로 답했다. 가장 한국적인 이야기로 인류 보편의 감정을 건드렸고(스토리의 힘), SNS로 팬과 친구가 되는 새로운 소통법을 만들었으며(디지털 혁명), 'K'를 품질의 상징으로 만들었고(브랜드 프리미엄), 문화를 예술이 아닌 산업으로 키웠다(전략적 지원).
비단 이것은 한국만의 것이 아니다. 당신의 도시, 당신의 회사, 당신의 이야기에도 세계를 울릴 특별함이 있다. 한류가 증명한 것은 단 하나다. 21세기 최고의 수출품은 제품이 아니라 문화라는 것.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 되고,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 되는 시대가 왔다.
이제 질문을 바꿔보자.
"당신의 문화는 어떻게 세계 최강의 브랜드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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