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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K의 'LBO 방식' 인수에서 촉발된 홈플러스 신용등급 하락 사태 [김기동의 이슈&로(LAW)]

증권 일반

기습적인 기업회생(법정관리) 신청으로 시장의 혼란을 야기한 홈플러스 사태가 발생한 지 약 50일이 흘렀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홈플러스가 상당 기간 전부터 기업회생 신청을 준비해 온 증거를 확보해 검찰에 이첩했다”고 밝혔다. 이 점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홈플러스의 사기 처벌 가능성은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홈플러스의 신용등급 하락 사태는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 신빙성 떨어지는 홈플러스의 주장MBK파트너스(이하 ‘MBK’)가 인수하기 전인 2015년만 하더라도 홈플러스의 신용등급은 최상위 ‘A1’단계였다. 그런데 인수 직후부터 등급이 하락하기 시작했고, 10년간 추락한 끝에 올해 2월에는 ‘rating trigger’(자산유동화 전자단기사채 ‘ABSTB’ 발행 관련 계약이 해지되는 신용등급 조건)에 해당하는‘A3-’까지 강등됐다. 이처럼 거듭된 신용등급 강등은 MBK의 LBO(Leveraged Buyout·차입매수) 인수 방식에서 촉발되었다고 보는 것이 시장의 지배적인 평가다. 인수 이후 본업 부진과 매출 정체가 지속됐고 거듭된 자산매각으로 인한 장기 성장성까지 저하된 것이 경영난 악화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MBK는 2015년 7조2000억원에 홈플러스를 인수했다. 아시아 최대 규모 인수합병(M&A)로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하지만 인수 대금 중 절반 이상을 홈플러스 자산을 담보로 한 차입금으로 조달했다. 「한국리테일투자(주) 등 SPC→홈플러스베이커리→홈플러스테스코→홈플러스 본사」 순서로 자회사로 편입했다. 최종적으로 SPC를 제외한 3개 회사가 홈플러스(주)에 합병돼 모든 부채를 떠안게 됐다. 인수 직후부터 MBK는 알짜점포를 매각하는 방식으로 채무를 상환해 나갔다. 자산의 매각 및 담보 제공을 통해 확보한 자금은 인수금융 상환 및 MBK 투자자들에 대한 투자금 상환 등에 사용됐다. 그 결과, 더 이상 홈플러스에는 매각하거나 담보로 제공할만한 자산이 거의 남아있지 않게 됐다. 그 과정에서 홈플러스 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2015년 인수 전 1조6178억원이던 차입금은 10년 만인 2024년 말 5조4620억원으로 늘었다. 상환전환우선주 9786억원을 포함하면 6조 3277억원에 이른다. 2016년부터 2023년까지 이자 비용으로 2조9329억원을 지출했는데, 같은 기간 발생한 영업이익의 6배를 초과한다. 이러한 부실 경영의 결과, 2021년부터 2024년까지 4년 연속 연평균 2000억원대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이자 비용, 세금 등까지 포함된 당기순손실은 작년 5743억원에 이르렀다. 부족한 현금 유동성을 해결하기 위해 동원된 수단이 ABSTB이다. 2023년 총 1조547억원 규모였던 ABSTB 누적 발행량은 2024년에 1조3743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결국 ABSTB와 CP 등 6000억원 규모의 단기금융채권을 결제하지 못하게 되자 지난달 4일 법원에 기업회생신청을 하게 된 것이다.홈플러스는 6개월 단위로 신용평가를 받아 왔다. 그때마다 향후 재무구조나 영업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 신용등급이 더 하락될 수 있다는 메세지를 받았다. 또한 2022년 8월 신용등급이 ‘A3’로 하락되기 직전, 신용카드사들과의 계약을 수정해 rating trigger를 ‘A3’에서 ‘A3-’로 낮추기도 했다. 따라서 올해 2월 26일 신용평가회사로부터 등급 강등 예정을 통보받은 뒤에야 그 하락을 예견했다는 홈플러스의 주장은 신빙성이 떨어진다. 2011년 LIG건설 및 2013년 동양그룹 사건에서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사기죄가 인정돼 관련자들이 중형을 선고받았다. 발행 당시 재무 상태 및 자금 상황을 고려하면, 발행자는 상환 불능의 위험을 충분히 인식했음에도 불구하고 CP나 회사채를 발행했고, 이는 결국 투자자들을 기망할 수 있음을 용인한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배임죄 여부 따져봐야이 법리는 홈플러스 사태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회계 및 자금 관련 자료를 정밀하게 분석하면, 홈플러스가 상환 불능의 위험을 인식한 시점을 특정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현재 진행 중인 검찰수사에서는 사기죄와는 별개로 MBK의 홈플러스 인수 구조가 배임죄에 해당하는지도 가려져야 한다. 2006년 대법원이 ㈜신한 매각 사건에서 “반대급부가 제공되지 않는 LBO 방식 기업 인수는 배임죄에 해당한다”는 유죄판결을 내린 이후 LBO가 제대로 활용되지 못했다. 이후 담보 제공 외에 합병이나 유상감자, 이익배당 등 거래를 추가하는 방식이 등장했는데, 이와 관련된 사건에서는 줄줄이 무죄가 선고됐다. 상법상 반대주주·채권자 보호를 위한 절차가 충분히 마련돼 있다는 것이 배임죄를 부정하는 주된 논거였다. MBK가 홈플러스를 인수할 당시에는 ‘합병형·분배형 LBO’는 배임이 되지 않는다는 판례의 경향이 형성돼 있었다. 그러나 홍콩계 사모펀드인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AEP)의 하이마트 인수 사건에서 제동이 걸렸다. ‘합병형 LBO’였던 이 사건에 관하여 1·2심은 기존 판례 경향대로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2020년 대법원은 반대급부 없이 하이마트 자산을 채무 담보로 제공해 대출 기회 제한 및 환가처분 위험 등의 재산상 손해를 입었고, 이는 하이마트보다는 AEP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봐야 한다면서 유죄를 선고한 것이다. 재무·경영상 효율성 향상을 통해 인수한 기업의 가치를 증대시키고, 사모펀드의 투자를 촉진하는 순기능도 존재하는 LBO에 관한 배임죄 적용은 신중해야 한다. 그러나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한 홈플러스 사태에서는 그 법적 책임을 분명하게 가리기 위해 MBK의 LBO 인수 방식에 대한 수사가 필요해 보인다. 리파이낸싱이나 세일앤리스백 등으로 조달된 자금이 인수 금융과 투자금 상환에 과도하게 지출됨으로서 홈플러스를 형해화시킨 것은 아닌지, LBO 대가로 홈플러스에 실질적인 반대급부가 제공된 것인지 등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아울러 이번 기회에 LBO 허용에 대한 사법적 기준도 보다 명확해지길 기대해 본다. 김기동 법무법인 로백스 대표변호사

2025.04.28 10:01

4분 소요
“알래스카 항공 직항 개설…시애틀 한국 관광객에게 더 가까워질 것” [이코노 인터뷰]

산업 일반

그가 관광산업에 발을 디딘 지 어느덧 35년이 지났다. 그동안 관광 산업에 벌어졌던 수많은 변화 중에서 그가 가장 중요하다고 꼽는 것은 여성 리더들의 등장이다. 글로벌 관광 협회인 데스티네이션 인터내셔널(Destination International)에서 그는 다섯 번째 여성 회장을 지냈다. 미국 워싱턴 관광연맹의 설립자이자 초대 의장이자, 2022년 최초의 여성 미국 시애틀관광청장직에 올랐다. 그가 ‘올해의 CEO’ ‘MICE 산업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25인 중 한 명’ ‘Destination International 글로벌 리더십 상’ ‘2023년 Smart Women in Meetings 명예의 전당 입성’ 등의 기록을 낼 수 있는 것은 35년 동안 한 분야에서 꾸준하게 성장하고 후배 여성 리더들을 육성하는 데 큰 노력을 했기 때문이다. 12년 전 6명의 모임으로 시작했던 ‘일을 해내는 똑똑한 여성들’(Smart Women Who Gets The Shit Done)은 현재 600여명의 글로벌 여성 리더들이 참여하는 커뮤니티로 성장했다. 국적도 다양하다. 미국, 프랑스, 중국 등 다양한 국적을 가진 여성 리더들은 이 모임을 통해 소통하고 서로를 격려하면서 각 분야의 리더로 성장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주인공은 태미 카나밴(Tammy Canavan) 시애틀관광청이다. 2022년 시애틀관광청장으로 취임한 후 첫 번째 방문이다. 시애틀 홍보를 위해서다. 카나밴 시애틀관광청장은 “코로나19로 시애틀관광청 임직원 수도 줄고 조직도 축소됐다”면서 “내가 취임하면서 2~3년 동안 조직 안정화에 집중했고 그동안 투자했던 관광상품을 팔기 위해 한국을 처음으로 찾았다”면서 웃었다. 또한 “한국에서 많은 음식을 먹어서 배가 부르지만 모두 훌륭했다”면서 웃었다. 그는 한국에서 한국 여행사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세일즈 미션 행사를 열면서 한국 관광객 유치에 열을 올렸다. 시애틀관광청장 취임 이후 적극적으로 투자했던 컨벤션 및 레저 체험 프로그램 등을 소개했다. 그는 본지 기자와 만나는 자리에 니파프론 에이 보잉작타(Neepapron A Boungjaktha) 시애틀항만청 경제개발 총괄이사, 토니 프리버그(Toni Freeberg) 알래스카 항공 판매 총괄이사와 동행했다. 시애틀 홍보뿐만 아니라 시애틀이 기업친화적인 도시라는 것을 적극적으로 알리기 위해서다. 9월 알래스카 항공 한국-시애틀 직항 노선 마련…주 5일 운항특히 알래스카 항공이 9월에 한국-시애틀 노선을 처음으로 선보인다는 소식을 전했다. 프리버그 알래스카 항공 이사는 “코로나19 이후 관광객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지난해에는 2023년에 비해 관광객 수가 19%가 성장했다”면서 “알래스카 항공이 9월부터 한국-시애틀 직항 노선을 주 5일 운항을 하는데, 이는 시애틀로 들어오는 국제 항공편 중에서 네 번째로 많은 것이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9월 미국 국내 위주의 노선만 가지고 있던 알래스카 항공은 국제노선이 있는 하와이안 항공을 인수했다. 이후 일본을 시작으로 한국 등에 시애틀 직항 노선을 마련했다. 프리버그 이사는 “일본과 한국을 시작으로 아시아 지역에 시애틀 직항 노선을 선보일 예정이다”고 덧붙였다. 카나밴 시애틀관광청장은 “한국에서 미국 본토로 들어가는 노선 중에 가장 빠른 곳이 시애틀이다”면서 “시애틀은 미국으로 들어가는 가장 완벽한 곳이다”고 강조했다. 시애틀은 관광뿐만 아니라 기업 활동도 활발한 곳으로 꼽힌다. 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스타벅스·보잉 등의 글로벌 기업 본사가 시애틀에 있다. 혹자는 “실리콘밸리의 시대는 가고 시애틀의 시대가 왔다”고 할 정도로 테크 기업이 시애틀로 몰려들고 있다. 글로벌 기업이 시애틀에 본사를 마련하면서 엔지니어들도 시애틀에 오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테크 기업들도 시애틀에 사무실을 마련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쿠팡도 시애틀에 본사를 마련했고, 한국의 배터리 기업 CTNS도 지난해 4월 시애틀에 법인을 설립했다. 한국 정부도 미국 진출을 계획하는 스타트업을 위해 시애틀에 K-스타트업 센터 같은 인큐베이터 공간을 마련했다. 보잉작타 시애틀항만청 경제개발 총괄이사는 “한국 기업이 시애틀을 찾는 이유는 기술 인재가 풍부하고 아마존 및 코스트코의 물류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라며 “시애틀은 과학 분야의 연구개발 센터가 많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카나밴 시애틀관광청장도 “한국 관광객뿐만 아니라 한국 기업인들도 시애틀을 많이 찾을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시애틀은 1년 내내 수많은 축제가 열리는 곳이다. 코로나19 이전처럼 많은 한국인이 찾아오기를 기대한다”면서 웃었다. 카나밴 시애틀관광청장은 캐나다 밴쿠버에서 자라면서 호텔 일을 하면서 관광 산업과 연을 맺었다. 35년 동안 관광 미국과 캐나다에서 활동하면서 선한 영향력을 끼쳤다. 그는 관광 산업의 매력을 “관광 산업은 문화와 사람 간의 장벽을 허물 수 있는 분야다”면서 “관광 산업은 경제적이 측면과 아울러 사회·문화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가 이 분야에서 존경을 받는 이유는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줬기 때문이다. 카나밴 시애틀관광청장은 “과거에는 여성 리더들이 거의 없었지만 이제는 미국 주요 도시의 관광 마케팅 조직에는 많은 여성 리더가 생겼다”면서 “내가 열심히 노력한 이유는 다른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를 보고 용기를 얻은 후배들이 있다면 내가 뿌린 가장 중요한 유산일 것”이라며 웃었다.

2025.04.28 10:00

4분 소요
배민·29CM가 성공한 이유…브랜딩의 ‘핵심경험’ 덕분[스페셜리스트 뷰]

전문가 칼럼

‘브랜딩의 시대.’ 내가 요즘 피부로 느끼는 브랜딩에 대한 표현입니다. 이는 서점만 가봐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서점을 방문할 시 습관적으로 경제·경영·마케팅 코너를 반드시 방문하는데요. 심심치 않게 브랜딩 관련 서적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럼 왜 브랜딩에 관심이 쏠리는 시대가 온 것일까요? 한때 효율만을 중시하는 마케팅이 성했던 적이 있습니다.(물론 여전히 그것은 유효하며 또 한편으로 중요합니다) 이것을 통해 즉각적인 매출로 이윤을 올린 기업들도 과거 상당히 많았습니다. 무분별한 마케팅에 지쳐가는 현대인하지만 사람들은 어느새 무분별한 마케팅에 지쳐갔습니다. 그래서 그것의 효율은 이전과 다르게 감소하기 시작했습니다. 보라빛 소가 온다는 책으로 유명한 미국의 유명 마케터 그루 세스고딘은 과거 한 국내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소비자에게 선택권이 없거나 적었던 시절에는 기업이 물건을 사라고 유인하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으라고 압박하거나 종용하는 일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제 소비자들은 거의 모든 시장에서 무한한 선택지와 끝없는 대안을 손에 쥐었다. 이런 상태에서 이전처럼 일방적이고 주입식으로 '이 제품을 사라'고 강요하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세상에 시끄러운 소리가 많아지면 사람들은 귀를 막는다”라고 말이죠. 그러니 자연스럽게 효율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죠. 기업의 목적은 이윤의 창출입니다. 그러니 한 방향에서 막히면 자연스럽게 다른 길을 찾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저는 이것으로부터 기업들이 브랜딩에 예전보다 더욱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기업마다 생각하는 브랜딩의 정의가 조금씩 다를 순 있지만 그럼에도 결국 기업은 귀를 막은 소비자들의 귀를 다시 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브랜딩은 무엇일까요? 브랜딩이란…‘남들과 나를 구분 짖는 나만의 가치를 만드는 행위’ 브랜딩에 대해 얘기하기 전 먼저 목적구매와 가치소비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물건을 사는 행위를 칼로 무를 자르듯 똑 잘라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저는 이 행위는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보는데요. 그것이 바로 목적구매와 가치소비입니다. 목적구매란 물건을 사는 행위에 특정한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날이 추워졌는데 추위로부터 내 몸을 보호할 옷이 필요해, 혹은 여름에 바다로 휴가를 가서 바다에서 놀고 싶은데 수영복이 없으니 수영복을 하나 사야할 것 같아와 같은 것이 바로 목적 구매, 즉 명확한 목적에 의해서 구매를 행위를 말합니다. 목적구매를 발생시키는 기준은 두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바로 가격과 퀄리티(품질)입니다. 이는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밥을 짖기 위해서 쌀을 산다고 생각해 보죠.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쌀을 살까요? 가격의 차이가 나도 더 좋은 쌀이 있다면 그것을 살 수 있을 것이고, 동일한 품종의 쌀을 사야 한다면 아마도 그 중 더 저렴한 가격의 쌀을 사겠죠. 그래서 기업들은 더 좋은 퀄리티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고, 그것을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기 위해서 또 노력합니다. 그래야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런 과정에서 한가지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술의 발전으로 퀄리티에 대한 부분이 어느 정도 상향 평준화 된 것입니다. 그래서 기업은 제품의 가격을 더 낮추기 시작했어요. 경쟁사가 우리보다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제품을 판매하면 소비자는 그 제품을 구매할 확률이 높아질테니 말이죠. 물론 이것은 소비자 입장에서는 나쁠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어떨까요? 그렇게 서로 할인을 하기 시작하면 이것은 결국 가격 경쟁을 넘어 가격 전쟁이 발생하고 모든 기업은 어려워질 것입니다. 저는 여기에서 가치 소비라는 것이 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앞서 얘기했던 가격 경쟁에서 탈피(?)하기 위해서 말이죠. 그렇다면 가치소비란 무엇일까요? 소비자가 구매하는 브랜드에 ‘가치’라는 것을 주입하여 판매를 하는 것입니다. 결국 소비자는 물건뿐 아닌 그 가치를 함께 소비하는 것이죠. 편의점에 가보면 아시겠지만 시장에는 수 많은 생수 브랜드가 있습니다. 생수를 예로 드는 이유는 무색·무미·무취의 제품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 중에 삼다수와 백산수, 아이시스의 물 맛을 구분하는 분이 계신가요?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물이라고 하는 제품은 목적구매의 카테고리 거의 끝 영역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제품마다의 차이는 거의 없습니다. 단지 목이 마르니 마시고 싶다는 목적에 의해서 구매하게 되는 제품이죠.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장 가격이 저렴한 제품, 혹은 늘 마시던 익숙한 제품을 구매합니다. 그런데 에비앙은 어떤가요? 에비앙은 일반적인 생수보다 더 비쌉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에비앙을 구매하고 싶어 합니다. 왜일까요? 에비앙에는 삼다수나 백산수가 가지고 있지 않은 그들만의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 언어로 그것을 얘기한다면 ‘고급스러움’, ‘부유함’과 같은 가치일 것입니다. 그렇게 에비앙은 다른 생수에 비해 가격이 높음에도 판매가 되고 있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가치소비의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결국 기업들은 어느새 자신이 만드는 제품의 이름에 이러한 가치를 넣은 것이 품질이 상향 평준화되는 시대에 가격 경쟁을 피하면서 소비자의 선택을 받는 방법임을 알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기업의 마케터들은 이것을 만드는 것에 고민을 시작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브랜드에 이런 가치를 집어 넣는 일, 그래서 가격 경쟁의 시대에서 그것을 뛰어 넘는 방법, 이것이 브랜딩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이 가치소비로부터 브랜딩의 개념은 시작되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앞서 언급한 목적구매와 가치소비와 연결시켜 볼 때 저는 브랜딩을 이렇게 정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들과 나를 구분짖는 나만의 가치를 만드는 행위’라고 말입니다. 29CM가 100일 동안 100명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추천 아이템을 소개한 프로그램 ‘매일의 가이드’ / 사진:29CM 홈페이지 캡처29CM가 성공한 이유….’스토리텔링’에 성공했기 때문 그렇다면 나만의 가치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우선 생각해봐야 할까요? 그것이 바로 ‘핵심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핵심경험이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우리가 만들어야 할 경험입니다. 보통 마케터들은 우리의 제품과 브랜드에 많은 요소들을 넣으려 합니다. 우리 제품은 이것이 좋고 저것이 좋고, 우리 브랜드는 이런 장점이 있는 브랜드이고 저런 장점이 있다고 말이죠. 하지만 모든 것을 전달하려 하면 아무것도 전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 중 가장 우리 브랜드의 경쟁력이 될 만한, 또는 우리 브랜드만이 가지고 있어야 하는 기억과 경험의 정의가 중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핵심 경험입니다. 경험이라고 하는 것은 고객들이 우리 브랜드를 사용하면서 느낄 수도 있고 우리 브랜드를 떠올렸을 때 생각나는 무엇일 수도 있습니다. 그 단 하나의 무엇을 남겨야 한다면 브랜드에 어떤 경험 요소를 만들어야 할까요? 우리는 이것을 두가지 방향에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기능적 핵심경험과 감성적 핵심경험입니다. 기능적 핵심경험은 우리 브랜드와 제품이 경쟁사 대비 더 우수한 기능을 중심으로 나만의 가치를 전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우리만의 강점이 영원히 가질 수 있는 강점이 아닐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강점이 경쟁사에 없는 혹은 약한 포지션을 가지고 있는 강점이라고 해도 나중에 경쟁사가 쉽게 카피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만의 강점이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장에서 당장 우리의 존재감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이 기능적 경험이 초반에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것을 현 시점에서는 남들과 나를 구분지는 우리만의 강점으로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온라인 편집샵 29CM가 좋은 예시입니다. 29CM는 수 많은 커머스 경쟁사들과 다른 어떤 가치를 만들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스토리텔링’이라는 핵심 경험입니다. 29CM가 시장에 진입할 당시 온라인 커머스 기업들은 대부분 두가지 기능에 집중했습니다. 하나는 상품수, 또 하나는 가격이었죠. 이는 너무 당연합니다. 많은 상품들을 경쟁력 있는 가격에 판매한다는 것은 이커머스의 핵심과도 같으니 말이죠. 하지만 당시 29CM는 인지도도 낮을 뿐더러 규모 역시 작은 스타트업이었기 때문에 다른 경쟁사들 대비 상품의 수도 가격 경쟁력도 가지고 있지 못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29CM는 어떤 핵심경험으로 다른 곳과 구분할 수 있는 29CM 만의 가치를 만들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다양한 국내외 브랜드들이 가지고 있는 그들만의 이야기를 고객들에게 잘 전달하는 것이었죠. 예를 들어 슈퍼잼이라는 영국 브랜드가 있습니다. 이 브랜드는 프레이저 도허티라는 한 소년의 이야기에서 시작되는데요. 당시 영국의 잼들은 대부분 설탕이 많이 들어간 건강에 그리 좋지 않은 잼을 판매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프레이저 도허티는 이때 어릴 때 잼을 만들어준 할머니를 기억했다고 합니다. 할머니의 잼은 설탕이 들어가지 않은 순수 과일의 당만으로 잼을 만들었었고 프레이저 도허티는 이것을 시장의 기회로 판단하죠. 그래서 할머니의 레시피를 활용한 슈퍼잼이라는 잼 브랜드를 론칭하게 되는데요. 이는 점점 건강한 잼이라는 입소문이 나게 되고 결국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된다는 얘기입니다. 어떤가요? 일반적으로 슈퍼잼이라고 하면 그냥 잼 브랜드의 하나라고 생각하겠지만 이런 스토리를 알고 나면 한번 이 잼을 사용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죠. 29CM 이렇듯 남들과 다른 우리만의 가치를 이 스토리텔링에서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중심으로 브랜딩을 전개했죠. 타사의 온라인 페이지와 앱이 한 화면에 많은 상품을 보여주지만 29CM는 그 보다는 하나의 브랜드와 그안에 있는 이야기 혹은 우리만이 생각하는 가치를 글로 풍성하게 풀었습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에게 다른 경험을 전달하기 시작했고 이것을 중심으로 다양한 브랜딩을 전개해 나갔습니다. 이 스토리텔링이 바로 29CM의 기능적 핵심경험입니다. B급 감성으로 경쟁력 갖춘 배민 기능적 핵심경험이 우리 브랜드가 가진 기능적 강점이자 차별점이라고 한다면 감성적 핵심경험이란 우리 브랜드만이 가진 감성의 차별점을 얘기합니다. 그럼 감성적 차별점이 왜 필요할까요? 기술은 늘 상향평준화를 이룹니다. 한 브랜드에서 어떠한 기능을 강점의 우위를 가지고 시장에 진입하고 (이것이 기능적 핵심경험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중심으로 브랜딩을 진행한다면 사람들의 시선을 주목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에 사람들이 반응한다면 아마 경쟁사에서도 그러한 기술을 도입할 확률이 큽니다. 그것이 해당 브랜드만이 독점적으로 가지고 있는 기능이 아니라면 말이죠. 그렇게 그 기능은 시장의 여러 브랜드들이 가지고 있는 기능으로 변하게 되고, 시장에서 그것은 더 이상 어떤 브랜드만의 기능으로 얘기할 수 없게 되죠. 물론 그것을 먼저 시장에 내세운 기업의 인지도는 높아질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더 이상 우리만의 강점이라고 얘기하기는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되죠. 그리고 이 기능이란 것이 개발과 연결된 기술이 아니라고 한다면 이는 더더욱 쉽게 카피가 됩니다.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할 것이 감성적 핵심경험입니다. 이는 우리 브랜드만의 이미지와 개성을 만드는 일입니다. 수 많은 경쟁사들 속에서 우리만의 존재감을 기능적으로만 전달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한다면 감성적 핵심경험은 여기서 다른 곳과 우리를 구분할 수 있는 큰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가장 좋은 예가 배달의 민족(이하 배민)의 사례입니다. 사실 배민은 앱 배달 시장을 개척한 선구자 브랜드입니다. 전화가 아닌 앱을 통해 음식을 주문한다는 그 편리함에 시장은 급성장했죠.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시장이 성장하니 다양한 브랜드들이 같은 기능의 배달앱을 내놓기 시작한 것입니다. 앱으로 음식을 주문하는 것이 사실 배민의 아이디어인 것은 맞지만 그것이 배민만이 가지고 있는 기술은 아니다보니 배민과 같은 방식으로 다양한 브랜드들이 시장에 진입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수많은 경쟁자들이 생기면서 배민은 위기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 시점 배민은 그들만의 독특한 브랜딩을 전개하는데요. 그것이 바로 B급 유머코드를 그들의 감성적 경험으로 활용한 것입니다. 배민문방구라는 것을 열고 재미있는 굿즈를 출시하죠. ‘덮어놓고 긁다보면 거지꼴을 못면한다’라는 카드케이스부터 ‘다 때가 있다’라는 제목의 때수건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고 다양한 잡지에 잡지광고를 시작합니다. 기존에 보던 광고의 형식이 아닌 잡지의 성격을 겨냥한 테러(?)를 집행하죠. 예를 들어 머슬 피트니스라고 하는 운동잡지에는 ‘머슬위한 치킨인가’라는 보면 피식 웃음이 나오는 광고를 집행하고요. 올리브라는 음식 잡지에는 ‘고기맛이 고기서 고기지’라는 카피의 광고를 내보내죠. 이러한 배민만의 B급 유머코드는 배민신춘문예라는 이벤트로 그들의 감성적 코드를 더 확장하는데요. 음식을 주제로 시를 짖게 한 것입니다. “치킨은 살 안쪄요, -살은 내가 쪄요-”와 같은 많은 사람들이 한번은 들어봤을 법한 음식을 주제로 한 웃긴 문장들이 다 여기서 탄생했습니다. 이렇게 배민은 다른 경쟁사들이 가지지 못한 배민만의 감성적 영역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의 더 큰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포카리스웨트의 일본 시장에서의 광고는 유독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왜 그럴까요? 포카리스웨트는 그들의 이미지를 학생들에 투영하여 청량하고 순수한 이미지를 가지고 가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포카리스웨트는 이온음료이고 시장에서는 이것을 대표하는 브랜드들은 다수 존재합니다. 이온음료는 땀을 흘린뒤 수분을 보충하기 위해 마시는 명확한 목적성 음료입니다. 대부분의 이온음료 브랜드들은 그것의 이미지를 스포츠와 많이 연결시킵니다. 게토레이나 파워에이드의 예전 광고들을 떠올려보시면 아마도 이해하기가 쉬울 것입니다. 이러한 글로벌 브랜드와 맞서기 위해 이들과 비슷한 이미지 전략을 펼치는 것이 보통의 생각이지만 포카리스웨트는 그들의 이미지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개하였습니다. 스포츠맨과는 확실히 대비되는 젊은 학생들, 순수하고 젊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을 중심으로 그들의 이미지를 만들기 시작하죠. 이는 그들의 컬러인 하얀색과 푸른색의 조화와도 잘 어울립니다. 이렇게 포카리스웨트는 이런 감성을 활용하여 브랜딩을 전개하고 있고 다른 이온음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이미지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게토레이와 파워에이드와는 상대적으로 다른 느낌으로 포카리 스웨트를 보게 되는 것이 바로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감성적 핵심경험 때문입니다. 이렇듯 핵심경험은 우리가 무엇을 중심으로 브랜딩을 전개할 지를 정하는데 있어 반드시 필요한 고민입니다. 우리가 기능적으로 어떤 경험을 줄 수 있을지, 감성적으로 어떤 것을 고객에게 전달할지에 대한 정의인 것입니다. 그래야 경쟁사들과는 차별화된 우리만의 모습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 브랜드의 핵심경험은 무엇인가요. 앞서 브랜딩은 남들과 나를 구분하는 나만의 가치를 만드는 행위하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그 가치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 브랜드만의 핵심경험을 면밀히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도 얘기했죠. 우리는 종종 브랜딩을 단지 보여주는 것에만 집중합니다. 로고를 예쁘게 만들고, 광고를 멋지게 찍고, 소셜미디어에 감도 높은 콘텐츠를 올리며 말이죠. 하지만 진짜 브랜딩은 소비자에게 어떤 경험을 전달해야 하느냐에 대한 정의에서 출발해야 합니다.이제 우리는 스스로의 브랜드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우리 브랜드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우리를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요?” 이렇듯 소비자가 우리 브랜드에서 반드시 느껴야 할 감정과 가치를 정의하는 것이 바로, 핵심경험입니다. 핵심경험은 단지 브랜드의 슬로건이나 USP(Unique Selling Point)와는 다릅니다. 그것은 고객이 우리 브랜드를 접하면서 ‘반드시 경험해야 하는 기능적, 정서적 경험’을 의미합니다.예를 들어 볼보는 기능적으로는 자동차이지만, 사람들이 기억하는 그들만의 핵심경험은 ‘안전’이죠. ‘무신사’는 단순히 패션 쇼핑몰이지만, 사용자에게 ‘요즘 스타일의 감도’를 경험하게 해줍니다. 이렇듯 핵심경험이 잘 정의되어 있으면 브랜딩의 모든 의사결정과 방향이 일관성을 가집니다. 그래서 서비스 뿐 아니라 콘텐츠, 디자인, 마케팅 메시지, 심지어 고객 응대까지 모든 접점에서 같은 경험을 일관되게 줄 수 있도록 설계할 수 있습니다. 이 일관성이 쌓일수록 브랜드는 점점 더 남들과 자신을 구분 지을 수 있는 명확한 인상을 갖게 됨은 물론입니다. 그러니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당신의 브랜드는 소비자에게 어떤 핵심경험을 주고 있나요? 그리고 그 경험은 경쟁사와 우리를 차별화시키고, 소비자의 머릿속에 기억으로 남을 만한 경험인가요?라고 물어봐야 합니다. 브랜딩은 결국 우리 브랜드만의 ‘이름값’을 만드는 일입니다. 그 이름을 들었을 때 사람들이 떠올리는 남들과 나를 구분짖는 기억. 그것을 만드는 것이 결국 브랜딩이고 그것의 시작점에 핵심경험이 있습니다. 브랜딩 디렉터 전우성은….현재 브랜딩 전략 및 컨설팅 회사 시싸이드 시티의 대표다. 삼성전자, 네이버를 거쳐 29CM, 스타일쉐어, 라운즈 등에서 브랜딩 디렉터, 브래딩 총괄 이사를 역임했다. 영국 웨스트민스터대에서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저서로는 '그래서 브랜딩이 필요합니다', '마음을 움직이는 일', '핵심경험론' 등이 있다.

2025.04.2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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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한국 가요는 ‘내수용’이 아니다. K-POP 가수가 미국 빌보드 차트에 진입했다는 기사는 이제 더 이상 새롭지 않다. 국내 대중가요가 세계적인 인기를 얻은 이유는 곡과 가사로 이뤄진 음원의 매력이 크겠지만, 무시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요소가 있다. 바로 안무이다. 포인트 안무는 소셜미디어의 숏폼 영상에서 챌린지의 형태로 전 세계인에 의해 수없이 재연된다.대중문화를 조금이라도 접하는 이들은 K-안무가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다는 걸 쉽게 느낀다. 하지만 그런 안무가 어떻게 만들어지며 창작자인 안무가들이 어떤 처우를 받는지 잘 아는 사람은 일부에 불과하다. 방송 프로그램 ‘스트릿 우먼 파이터’ 등 미디어의 흥행으로 과거와 달리 안무가의 존재는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게 됐다. 하지만 수익이 지속적으로 창출하는 작곡가 등의 창작자와는 달리 안무가들은 창작 이후 추가 수익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이에 안무 창작에 대한 권리 보호가 필요하다는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필자는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실시하는 ‘안무 분야 계약 실태조사 및 표준계약서 제정 연구’에 연구자로 위촉돼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소속의 연구진들과 함께 과업을 진행했다. 유명 안무가들을 비롯해 업계 협·단체 구성원들을 여럿 만났다. 그 과정에서 새롭게 알게 된 흥미로운 사실들을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편집자에게 지면을 요청했다. 이하에서는 K-POP 안무의 창작 과정과 그간의 업계 관행 및 법률적 쟁점을 소개하고자 한다.현재 위 연구결과는 보고서 형태로 정책연구관리 서비스 홈페이지에 공개돼 있다. 제정안은 나왔지만, 아직 추가적인 의견수렴 절차가 남아있어 실제로 표준계약서가 확정돼 고시되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K-안무, 어떤 과정으로 탄생하나대형 기획사의 소속 가수가 신곡을 발표하고 무대에 서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자. 기획사는 곡을 선정하고 댄스 담당 ‘퍼포먼스 디렉팅’팀에서는 대략적인 콘셉트를 구상한다. 구체적인 안무 창작을 맡길 만한 안무가를 물색하고 접촉하는 것은 기획사 퍼포먼스 디렉터의 역량 중 하나다.본격적인 안무 창작은 기획사가 안무가에게 창작 용역을 의뢰하며 시작된다. 기획사는 여러 안무가 혹은 안무팀에게 음원을 건네며 어울리는 안무 ‘시안’을 만들어 주길 요청한다. 안무가들은 분주해진다. 그들은 창작을 보조할 ‘서브 안무가’를 고용하기도 한다. 나아가 안무를 직접 시연할 ‘시안 댄서’를 섭외한다. 결과물을 영상으로 찍어 기획사에 전달해야 해서다. 가수가 여러 명의 그룹이라면 그 구성원 수에 맞는 시안 댄서를 고용해야 한다. 기획사는 통상 10일에서 2주 사이로 결과물을 달라고 요청하기 때문에, 안무가들은 서둘러 시안을 만들어 납품한다. 기획사의 퍼포먼스 디렉터는 위 안무 시안들을 취합해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내고 수정, 추가하는 작업을 진행한다. 실제로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는 가수 역시 작업에 참여할 수도 있다. 이렇게 최종 안무가 만들어진다. 그런데 모든 기획사가 여러 명의 안무가에게 시안 제작을 의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안무가의 수만큼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금력이 충분한 대형 기획사들은 여러 결과물을 취합·선택하는 방식을 택하고,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다수의 중소 기획사들은 1인 안무가에게 의뢰하는 편이다. 비용 문제 때문에 단 한 명에게만 안무를 의뢰한다면, 기획사는 우선 납품받은 그 시안을 쓸지 말지부터 결정한다. 만약 시안이 마음에 쏙 든다면 별다른 수정 없이 최종 안무로 확정할 수도 있다. 손을 보아야 한다면, 별도의 퍼포먼스 디렉터가 없는 중소 기획사에서는 시안의 제작을 맡겼던 안무가에게 수정을 요청하고 다시 전달받은 수정안을 최종 안무로 확정할 것이다. 최종 안무가 확정된 후에는 ‘아티스트 트레이닝’ 단계를 거친다. 이 단계에서 안무가 가수에게 전수된다. 짧으면 3일에서 길게는 2주까지 걸린다. 아티스트 트레이닝은 안무를 창작한 안무가에게 맡기기도 하고, 대형 기획사의 경우에는 소속 퍼포먼스 디렉터가 진행하기도 한다. 트레이닝이 끝난 후에는 뮤직비디오 촬영 및 음악방송 등을 위한 디렉팅 작업을 한다. 라이브 공연을 위해서는 뮤직비디오와는 또 다른 디테일이 요구된다. 따라서 추가적인 수정과 보완이 계속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도 안무가 또는 퍼포먼스 디렉터가 개입된다. 이렇게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최종적으로 완성된 안무와 곡은 마침내 대중에게 공개된다. ‘갈등의 씨앗’ 되는 계약서 미작성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안무 시안의 창작을 의뢰받은 안무가는 통상 10일에서 14일이라는 짧은 기간에 안무를 구상해 창작하고 시안 댄서들에게 가르쳐 영상까지 만들어 내야 한다. 일정이 촉박하기에 서면 계약서의 작성은 생략하고 구두로만 대략적인 일정과 금액을 합의하기도 한다. 실태조사에 의하면, 최근 3년간 K-POP 안무 분야에서 50%는 서면 계약으로, 나머지 50%는 구두로만 창작 의뢰가 이뤄졌다.이때 짧은 용역 기간은 안무가 측의 책임이 아니다. 기획사가 급한 일정을 가져와 안무가들에게 요청하기 때문이다. 미리미리 준비해 안무가와 여유 있게 계약 조건을 의논하고 창작 기간도 넉넉히 주면 좋으련만, 시장 상황은 그런 여유가 없는 듯하다. 안무가들도 어느 정도는 팽팽한 일정을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촉박함을 이유로 한 계약서 미작성은 이후 갈등의 씨앗이 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먼저 정확한 용역 내용과 보수 지급 시점을 정하지 않아 문제가 생긴다. 별도의 선금 지급 없이, 안무가 완성되면 전체 금액을 받기로 약속된 상태에서 안무가가 창작에 착수했다고 가정해 보자. 안무가는 서브 안무가와 시안 댄서를 자기 돈으로 고용한다. 그리고 연습을 할 장소 역시 자기 돈으로 대여한다. 이렇게 비용을 들여 시안을 완성했지만, 적시에 창작 용역비를 받기는 쉽지 않다. 기획사 입장에서 안무가의 역할은 시안을 만들어 제출한 그 시점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뮤직비디오 촬영이나 무대 구성을 위한 디렉팅까지 계속 이어지는 것으로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 안무가는 시안을 제출하는 것까지를 용역 내용이라 생각하고, 기획사는 트레이닝과 디렉팅까지도 같은 계약의 업무 범위에 포함하는 것이라 여기는 것이다. 이런 동상이몽을 막기 위해서는 잘 정리된 서면 계약이 필요하다.여러 명의 안무가에게 시안 창작을 의뢰했지만, 그중 선택받지 못한 시안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당초 1000만원에 안무 시안을 만들어 줄 것을 약속했는데, 시안을 전달받은 기획사가 위 시안이 결국 최종 안무에 반영되지 않았으므로 500만원만 지급하겠다고 말해 갈등을 겪은 사례가 있다. ‘시안의 창작 및 제출’만으로 완전한 대가지급청구권이 발생하는 것인지, 아니면 ‘시안의 최종 안무로의 이용’ 요건까지 완성돼야 하는지에 대한 견해 차이가 불러온 분쟁이다.안무 시안이 최종 안무에 쓰이지 않으면 금액을 낮춰서 받거나 동작이 단 하나라도 사용되면 전액을 지급받는 합의도 있었다. 이렇게 되면 사소한 동작이라도 최종 안무에 포함되는지가 중요한 쟁점이 된다. 포함된 동작이 과연 해당 계약을 통해 창작된 시안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여느 K-POP 안무에서든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일반적인 동작이라 별 의미가 없는 것인지에 대한 견해가 대립할 수 있다. 위와 같은 다양한 갈등을 사전에 막기 위해 표준계약서 제정 연구 과정에서 안무 창작 용역에서의 업무 범위를 명확히 할 필요성이 중요하게 다뤄졌다. 안무 창작 사실, 공개해도 될까...부당한 비밀유지의무안무가가 안무 창작 사실을 공개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원칙 없이 개별 계약 때마다 발주자(기획사)가 원하는 조건에 따르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어떤 안무가는 계약서상의 비밀유지 조항에 대해서 ‘구체적인 계약의 세부 내용’을 공개하면 안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또 다른 안무가는 ‘해당 안무를 창작한 사실’ 자체를 일체 발설하지 못하는 것으로 인식하기도 했다.안무를 창작한 사실의 공개를 금지하는 것은 해당 안무가의 섭외 사실 자체를 중요한 ‘영업상 비밀’로 보는 것과 관련이 있다. 실력 있는 안무가를 독점하고 싶어서 그에 대한 정보 자체가 경쟁사에 퍼지기를 원치 않는 것이다. 하지만 안무가가 대중의 찬사를 받고 스타덤에 오르는 현재 상황에서 영업 비밀을 이유로 창작 사실 자체의 공표를 금지하는 것이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안무가의 권리를 부당하게 제약해 불공정하다는 점을 차치하고라도 말이다. 이런 부당한 조항은 저작인격권 중 하나인 성명표시권의 행사를 포기하는 방식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른바 ‘크레딧’에 올라가는 것을 사전에 포기하는 것을 약정에 넣는 것이다. 물론 이는 잘못된 관행이다. 만약 기획사가 뛰어난 안무가를 독점하고자 특정 안무가의 창작 참여 사실을 비밀로 하고 싶다면, 이에 대해서는 저작인격권 행사를 포기하는 특약이 아니라 다른 조항을 통해 보상 방식 등을 별도로 합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비밀로 하는 명확한 이유와 기간, 그에 따른 합당한 대우 등을 명시할 필요가 있다.근래에는 오히려 홍보를 목적으로 안무가들에게 안무 시안을 개인 소셜미디어에 올리고 새로운 챌린지를 해도 좋다고 독려하는 기획사도 있다. 하지만 마케팅 채널이 분산되는 것을 염려하고, 저작권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안무 시안의 공개를 허락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해당 가수보다 안무가의 춤이 더 주목을 받는 상황을 피하고 싶을 수 있다. 어느 쪽이 되든 사전에 안무가와 기획사가 서로 납득할 수 있는 합의를 하면 된다. 저작재산권 양도 관행, ‘이용허락’ 방식으로 바뀔까사실 안무가들이 생각하는 가장 큰 문제는 수익 배분이다. 불명확한 업무 범위나 크레딧에서의 누락보다, 저작재산권의 포괄적 양도로 인해 추가 수익 분배 가능성이 원천적으로 차단되는 것에 더 불만을 느끼고 있다. 콘서트를 하거나, 광고를 찍는 등 아이돌 가수의 신곡 발표 이후 기획사가 얻는 이익은 나날이 쌓인다. 하지만 춤이 아무리 ‘대박’이 터져도 안무가들에는 시안 창작 용역비 이상의 보상을 요구할 권리가 없다. 이는 안무 시안을 납품하는 동시에 이에 대한 저작재산권 일체가 기획사로 양도되는 관행에 따른 결과다. 실태조사에서는 K-POP 안무 창작에서 예외 없이 안무저작권이 기획사에 귀속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간 비판을 받아온 바 있는 소위 ‘매절계약’이 여전히 전형적으로 이뤄지는 것이다.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일괄적인 권리 양도 방식은 K-댄스의 빠른 발전에 일정 부분 기여한 바가 있긴 하다. 저작재산권자가 여러 명이 될수록 그 이용 방법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수인의 합의가 필요한 상황에서는 결정에 시간이 많이 들고, 자칫 일부가 반대하는 경우에는 이용 자체가 곤란해질 수도 있다. 요컨대 단독저작권자가 공동저작권자보다 신속하고 효율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것이다.그렇다면 K-POP 안무는 본디 이용이 까다로운 공동저작물인 것일까? K-POP 안무의 법적 성질에 대해 법 규정과 판례가 명백한 판단을 한 바는 없지만, 문체부와 한국저작권위원회 등 유관기관은 공동저작물로 보고 있다.앞서 설명한 K-POP 안무의 제작 과정을 가상의 예를 들어 다시 한번 살펴보자. 기획사 A는 안무가 B, C, D에게 안무 시안을 만들어달라 요청한다. B, C, D가 나름대로 시안을 만들어 왔지만, A회사 소속 퍼포먼스 디렉터인 E가 보기엔 B와 C만이 쓸만한 것 같다. E는 D의 시안은 전혀 사용하지 않은 채, B와 C의 시안 중 일부분을 선택해 배열하고 자기 자신이 창작한 동작을 가미한다. 사례에서 최종 안무에 대해 저작재산권을 갖는 이는 누구일까? 바로 A, B, C이다. D의 안무는 사용되지 않았으므로 D는 권리자가 될 수 없다. E는 후반부에 창작적인 작업을 도맡았다 해도 기획사 A의 직원으로서 A의 지시에 따라 업무를 한 것에 불과하므로 E의 창작 부분은 ‘업무상저작물’ 법리에 포섭돼 최종 안무에 대한 권리자는 E가 아닌 회사 A가 된다. B와 C는 저작재산권을 양도하지 않는 한 최종 안무에 포함된 자신의 부분에 대해서 권리를 갖는다.기획사 입장에서는 자유로운 상업적 활용을 위해 안무가들로부터 저작재산권을 일괄적으로 양도받는 방식을 선호한다. B와 C로부터 저작재산권을 양도받을 경우, A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판단으로 공연, 영상 제작, 광고 삽입 등 다양한 매체에서 안무를 자유롭게 쓸 수 있다. 반면 안무가 B와 C의 입장에서는 저작재산권의 양도로 창작의 통제권을 상실하고 경제적 손실을 입을 수 있다. 창작물의 변형, 재사용, 상업적 활용 등에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기회가 원천 차단된다. 자신이 만든 안무의 유명세를 이용한 예능프로그램에서 마음대로 안무를 보일 수도 없다. 더는 권리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A가 동의해주지 않으면 어떻게든 사용할 수 없다.이런 상반된 이익의 조화를 위해 유사 콘텐츠 업계에서는 ‘이용허락’ 제도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라이선스를 받고 창작물을 이용하는 것인데, 저작권을 창작자에게 유보하면서도 기획사가 창작물을 특정 조건하에 자유롭게 활용하는 것으로 조율하는 방식이다. 표준계약서 제정안은 ‘시안’은 안무가의 단독저작물로, ‘최종 안무’는 기획사와 안무가의 공동저작물로 규율하며 상호 간에 이용을 허락하는 방식을 기초로 하고 있다.하지만 사적 자치의 원칙상, 안무 분야에서 기존의 저작재산권 양도 관행을 배제하고 이용허락 제도를 강제할 수는 없다. 연구 용역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맞닥뜨린 기획사 및 협·단체들의 반발이 상당했다. 표준계약서는 그 사용이 강제되는 것이 아니므로, 실제로 이용허락 제도가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인지는 시간을 들여 지켜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창작자-산업계, 윈-윈(WIN-WIN)의 길 찾아야우리에겐 이미 창작자와 산업계의 상충되는 듯 보이는 이해관계를 조율해나간 역사가 있다. 과거 모든 권리를 독점하고 있던 레코드사로부터 창작자가 음악 저작권을 되찾아오고, 방송 작가와 웹툰 작가도 점차적으로 플랫폼으로부터 독립된 권리를 인정받았다. 처음에는 산업계의 반발이 거세고 창작자와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것으로 보였지만, 어떠한가. 결국에는 상생법을 찾아 나가고 있다.안무 분야도 마찬가지다. 음악처럼 저작권료 징수 체계가 존재하지 않는 안무 분야에서는 안무가가 저작권을 보유해도 K-POP의 확대에 따른 직접적인 이익을 향유하기가 사실상 쉽지 않다. 다만 이용허락을 통해 기획사 등을 통한 간접적인 수익의 분배는 기대할 수 있다. 지속 가능한 K-댄스의 발전을 위해서는 창작자의 권리를 더는 도외시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안무 분야 계약 실태조사 및 표준계약서 제정 연구’에의 참여를 의미 깊게 여기고 있다. 하지만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표준계약서 제정안 역시 처음부터 이용허락의 세부 내용을 정하고 있지는 않다. 많은 부분은 안무가와 기획사가 별도로 협의할 영역으로 남겨뒀다. 표준계약서가 어떻게 확정돼 고시될 것인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계약서의 빈 공간이 K-POP 산업의 생산자는 물론 소비자인 우리들도 함께 채워 나가야 할 부분임은 분명하다.백세희 법률사무소 아트앤 대표변호사

2025.04.2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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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학년도 ‘황금 돼지띠’ 수험생들이 겪어온 변화들 [임성호의 입시지계]

전문가 칼럼

금년도 고3 학생들은 지난해보다 약 4만7000명 늘어났다. 2007년 황금돼지띠 해에 태어난 수험생들이다. 2026학년도 대입 수험생들로, 현재도 의대 모집정원 조정 등 입시 변수와 수험 준비에 집중해야 하는 시점에 조기 대선까지 경험해야 하는 상황이다. 사상 처음으로 6월 평가원 모의고사 일정까지 조정됐으며, 하필 조정된 날짜가 6월 3일 대선 다음 날인 6월 4일이다.변화의 연속 2007년 황금 돼지띠이 학생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2014년에는 학생부종합전형이 도입됐다.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앞으로의 대학입시는 ‘학교생활에 충실해야 하며, 교내외 다양한 활동, 수행평가, 회장·부회장 이력 등 여러 스펙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시 정책의 변화 시점이었다.초등학교 3학년이 되던 2016년에는 수능에서 한국사가 절대평가로 바뀌었다. 당시 수능에서 사회 선택과목 중 한국사를 선택하는 학생들이 매우 적어 교육적 문제로 부각됐기 때문이다. 한국사는 절대평가와 동시에 수능 필수 과목으로 지정됐다. 수능에서 한국사 과목은 쉽게 출제된다는 인식이 퍼졌고, 이는 학습 중요도가 낮아질 수 있다는 전망을 낳았다. 반면 학생부종합전형이 적용되는 상황에서 학교 내신에서는 한국사가 상대평가로 운영됐기에, 여전히 높은 학습 강도가 요구됐다. 당시 수험생들이 한국사를 기피한 또 다른 이유는 서울대가 이를 필수 지정과목으로 채택했기 때문이었다. 서울대 지원자 간의 치열한 경쟁을 피하기 위한 전략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초등학교 4학년이던 2017년에는 수능 영어 과목이 절대평가로 바뀌었다. 이로 인해 수능에서 영어의 부담이 크게 줄어들었고, 상대평가 과목들에 비해 수능에서의 중요도도 낮아졌다. 이는 전 과목 절대평가를 위한 전 단계로, 영어부터 우선 적용된 것이다. 하지만 영어도 학교 내신에서는 여전히 상대평가였기에 학습 강도는 여전히 높아야 했다. 따라서 수험 전략으로는 수능 영어를 조기에 대비하고 다른 과목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과, 영어의 중요도를 낮게 보고 비중을 줄이는 방식으로 나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초등학교 5학년인 2018년에는 학생부종합전형의 불공정성이 사회적 문제로 크게 부각됐다. 이른바 ‘엄마 찬스’, ‘아빠 찬스’ 등이 개입됐다는 논란이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초등학교 1학년 때는 학생부종합전형이 중요하다는 분위기였는데, 불과 4년 만에 ‘학생부종합전형은 폐지되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된 것이다. 입시 방향이 180도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중학교 1학년이던 2020년에는 서·연·고 등 주요 16개 대학이 정시 40% 확대 선발로 전환됐다. 그동안 내신 위주였던 입시가, 상위권 대학을 중심으로 수능 중심 체제로 급변한 것이다. 초등학교 입학 당시에는 ‘학생부종합전형’ 중심이었지만, 중학교 1학년 시점에는 ‘수능 중심’으로 입시 기조가 바뀌었다.중학교 2학년이던 2021년에는 통합수능이 도입됐고, 이과생들이 문과로 교차 지원해 합격하는 이른바 ‘문과 침공’이라는 생소한 현상이 나타났다. 이 해에는 전국 약대가 학부 모집으로 전환되면서 고교 졸업 후 약대 진학이 가능해졌고, 의대 또한 2015년부터 의학전문대학원에서 학부 체제로 전환되기 시작해 메디컬 계열 학과에 대한 선호도가 크게 높아졌다. 이로 인해 이과 쏠림 현상과 함께 ‘이과로 가야만 한다’는 심리적 압박도 심화됐다. 킬러문항 배제에 의대 증원까지중학교 3학년이던 2022년에는 현재 39개 의대가 모두 학부 체제로 전환됐다. 이과 상위권 학생들에게는 의대·치대·한의대·약대 등 메디컬 계열 학과에 대한 집중도가 급상승한 상황이 됐다. 중학교 시점부터는 수능의 중요성이 커지고, 이과 진학이 대세가 되었으며, 상위권 학생들은 의대를 중심으로 몰리는 입시 환경이 형성됐다.고등학교 1학년이던 2023년에는 수능에서 킬러 문항이 배제된다는 발표가 있었다. 어려운 문항을 제거해 수능 부담을 줄이겠다는 취지였으나, 그 해 수능은 오히려 매우 어렵게 출제됐다. 킬러 문항은 빠졌지만, 수험생 체감 난이도는 결코 낮지 않았던 것이다.고등학교 2학년이던 2024년에는 의대 모집정원의 대폭 확대가 발표됐다. 해당 연도 수험생들에게는 1500명이, 현재 고3 학생들에게는 2000명이 증원돼, 전체 의대 정원은 기존 3000명에서 5000명으로 확대될 예정이었다. 의대에 대한 높은 관심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 발표는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에게 커다란 입시 변수로 작용하게 됐다.고등학교 3학년인 현재는 의대 모집정원 5000명 증원이 불가능해진 상황이다. 여기에 조기 대선까지 겹쳤다. 현행 투표 연령이 만 18세로 낮아지면서 올해 고3 수험생들도 투표권을 행사하게 된다. 공교롭게도 대선 투표일은 6월 3일이며, 6월 평가원 모의고사는 바로 다음 날인 6월 4일이다. 이는 재수생들과 함께 보는 마지막 모의고사로, 9월 수시 원서 접수 전 최종 점검 성격이 강한 매우 중요한 시험이다.지난 12년간 초중고 시절을 거치며 경험한 입시 정책의 변화는 정책적 일관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디에 집중해야 할지 혼란스러울 정도였다. 현재 고1부터 적용되는 2028학년도 대입 정책 역시 내신과 수능 모두에서 큰 폭의 변화가 예고되어 있다. 앞으로의 12년도 지금처럼 혼란스러운 변화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2025.04.2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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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크 코리아 극복을 위한 생산성 주도 성장 전략 ‘리빌딩 코리아’[새로 나온 책]

△리빌딩 코리아한국 경제는 글로벌 투자자들이 우려하는 이른바 ‘피크 코리아’의 기로에 서있다. 지난 20여 년간 한국은 주력 산업이 거의 변화하지 않고 안주하는 모습이다. 극단적 저출생 현상으로 2040년대 후반이면 평균 경제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선포로 표출된 극단적 정치·사회적 갈등,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의 예측할 수 없는 세계 경제 질서 등은 우리 앞에 닥쳐올 퍼펙트 스톰을 예고한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이념 논쟁 속 리더십 부재로 한발 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주요 나라들이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엄두도 못 냈던 산업 정책을 추진하며 경쟁력 강화에 매진하는 이때, 우리는 여전히 과거 이념에 스스로 발목을 묶어 놓은 형국이다. 기성세대는 “우리 세대는 좋은 시절 살았어”라며 미래 세대를 걱정하지만 정작 미래 세대를 위해 뭘 하겠다는 사람은 많지 않다. 4차 산업 혁명 시대의 도래로 창조적인 일에 나서야만 비로소 살아남을 수 있는 미래 세대들을 위해 과거에 비해 부유해진 우리 사회가 기본 생존권을 보장해 주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가치중립적이고 민생과 실리에 초점을 둔 실용의 리더십을 기반으로, 혁신과 선도의 ‘생산성 주도 성장 전략’을 채택할 필요가 있다고 책은 강조한다.저자는 고려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일리노이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은행에서 32년여 재직하며 조사국, 금융안정국, 경제통계국, 경제연구원 등 주요 부서를 거쳤다. 한은 재직 중 통화 및 거시 경제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평가받다. ‘경제 전망의 실제: 직관과 모형의 종합 예술’ ‘21세기 자본을 위한 이단의 경제학’ 등 저서를 발간했다.◆이주의 신간 △기업이 된다는 것기업이 된다는 것, 오랫동안 이어온 가업을 이어받아 기업을 만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1716년 일본 나라 현에서 시작된 나카가와 마사시치 상점(中川政七商店)은 ‘나라자라시’라는 나라 지역의 전통 마직물 공예를 기반으로 성장한 일본 공예 제품 중심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다. 300년의 역사를 가진 나카가와 마사시치 상점은 단지 오래된 기업 중 하나가 아니다. 기업가 나카가와 마사시치는 좋은 기업이란 어떤 것이며 그것을 위해 비전을 만들고 공유하는 일이 왜 중요한지, 단순히 물건을 파는 것을 넘어 산업 생태계를 살리는 브랜딩 등 능력 있는 기업가로서 경영철학을 조언한다. △행동은 불안을 이긴다사람들은 모두 더 나은 삶을 살길 바란다. 더 좋은 직장으로 이직하길 원하고 사업에 도전해 큰 성공을 거두는 부푼 꿈을 꾸기도 한다. 다이어트도 성공했으면 좋겠고, 인간관계의 복잡한 고민도 해결되길 바란다. 그런데 왜 여전히 어제와 같은 삶을 반복하고 있을까? 왜 더 나은 삶을 위해 행동하지 않을까? 이 책은 그 오랜 의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존재하지 않는 공포와 불안에 속아 현실에 안주하는 마음가짐을 버릴 것. 그리고 몸이 먼저 움직이는 행동 자동화 패턴을 익힐 것. 이 두 가지의 실천법이 만성적 불안과 습관적 미루기에서 벗어나는 지름길을 안내한다. △지방의 역설수십 년 동안 우리는 밥상에서 지방, 특히 포화지방을 줄이려고 애써왔다. 비만 문제의 원인이 바로 포화지방 섭취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말이 과연 사실일까? 우리가 거부해온 크림치즈와 스테이크 같은 고지방 음식이 오히려 비만, 당뇨, 심장 질환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라면 어떨까. 탐사보도 저널리스트인 니나 타이숄스는 우리가 지방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지난 60년간 권장된 저지방 식단은 전 인류를 대상으로 한 통제되지 않은 실험이나 마찬가지였다. 저자는 9년에 걸친 조사를 통해 포화지방에 관한 잘못된 정보가 과학계와 대중의 통념에 어떻게 자리 잡았는지를 밝힌다.

2025.04.26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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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환자가 사랑하는 기업으로”…배신규 엠디뮨 대표가 추천하는 ‘이 책’ [CEO의 서재]

세계적인 경영의 구루(Guru)로 불리는 짐 콜린스는 그의 저서 ‘좋은 기업(Good Company)을 넘어 위대한 기업(Great Company)으로’를 내놓으며 수많은 경영자에게 길잡이가 될 경영 지침을 선물했다. 위대한 기업으로 도약한 기업의 특징을 이 책에서 언급했고, 이를 통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의 반열에도 올랐다.하지만 위대한 기업이 기업 경영의 종착지는 아니다. 라젠드라 시소디어 벤틀리대 교수는 이런 생각으로 도서 ‘위대한 기업을 넘어 사랑받는 기업으로’(Firms of Endearment: How World-Class Companies Profit from Passion and Purpose)를 출간했다. 이 책은 기업이 21세기 격변하는 경영 환경에서 지속해서 성장하려면 위대한 기업의 다음 단계인 사랑받는 기업이 돼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시소디어 교수가 생각하는 사랑받는 기업은 무엇일까. 시소디어 교수는 “고객, 동료, 파트너, 투자자 등 모든 이해당사자 집단의 이익을 전략적으로 정렬해 모두에게 사랑받는 회사”를 사랑받는 기업으로 정의한다. 사랑받는 기업은 사람들이 함께 사업을 추진하고 싶은 회사. 제휴를 맺고 싶은 회사. 그 안에서 일하고 싶은 회사. 투자하고 싶은 회사라고도 설명한다.쉽게 말해 사랑받는 기업은 고객을 비롯한 이해당사자들이 ‘충성’(Loyalty)를 보이는 기업이라는 뜻이다. 배신규 엠디뮨 대표도 이 도서를 통해 기업 경영의 방향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배 대표는 “사랑받는 기업은 고객들이 ‘저 기업이 없다면 삶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며 “단순히 회사의 제품을 좋아하는 것을 넘어, 사랑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배 대표는 사랑받는 기업이야말로 엠디뮨의 기업 정체성과 가장 가깝다고 봤다. 그는 “엠디뮨을 처음 설립할 때, 암 환자나 난치질환 환자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 창업을 결심했다”며 “애플, 구글 등 몇몇 기업이 고객에게 큰 사랑을 받는 것처럼 엠디뮨도 암 환자에게 큰 사랑을 받는 기업으로 키우고 싶다”라고 했다.배 대표의 꿈은 엠디뮨이 개발한 신약을 쓴 환자들로부터 받은 편지로 회사를 장식하는 일이다. 배 대표는 “회사 로비에 암 환자가 쓴 편지를 놓고 싶다”라며 “암 환자의 고통을 해소하는 일이 회사의 목표”라고 설명했다. 배 대표가 신약을 개발하겠다고 결심한 이유도 암 환자였던 어머니를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여러 방법을 강구하면서다. “어머니는 항암 치료를 하다 현재 돌아가셨다, 마지막으로 쓴 약이 아바스틴(성분명 베바시주맙)이었지만, 투약 3달째쯤 종양이 다시 커졌다”고 배 대표는 말했다. 그는 “아무리 혁신적이고, 값 비싼 약이라도 해당 약이 암 환자에게 듣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라는 점을 경험했다”라며 “엠디뮨을 통해 암 환자가 꼭 쓸 수 있는 치료제를 개발하고 싶다”고 말했다.

2025.04.2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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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스와 카카오뱅크가 일궈낸 브랜드 혁신을 보라 [허태윤의 브랜드 스토리]

전문가 칼럼

#1 지하철 안에서 대출이 완료됐다. 30대 직장인 김 씨는 퇴근길 스마트폰으로 토스뱅크 앱을 열어 신용대출을 신청했다. 몇 가지 정보를 입력하자 1분 만에 심사 결과가 도착했고, 300만원이 즉시 계좌로 입금됐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은행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서류를 제출하고 며칠을 기다려야 했던 과정이, 몇 분 만에 지하철 안에서 이뤄졌다.#2 새벽 3시, 어머니는 호주 유학 중인 아들에게 급히 500달러를 송금해야 했다. 토스뱅크의 '평생 무료환전' 서비스로 수수료 걱정 없이 호주 달러를 구매하고 즉시 송금했다. 영업시간을 기다릴 필요도, 은행 지점을 찾아갈 필요도 없었다. 호주에서 아들이 곧바로 전화를 걸어왔다. "엄마, 벌써 돈이 들어왔어요!"#3 동창회 모임이 끝난 후 총무는 카카오뱅크 모임통장 연결 카드로 식당 계산을 마쳤다. 누군가 "회비 걷느라 고생 많지?"라고 묻자 총무는 웃으며 말했다. "이제는 누가 냈는지 확인할 필요가 없고, 모두가 통장 내역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어서 투명해. 회비 알림도 자동으로 가니까 총무 맡은 지 2년 됐는데 스트레스가 사라졌어."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고리타분했던 은행 업무가 스마트폰 속으로 들어와 일상에 녹아들었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이 혁신적 변화의 중심에는 토스와 카카오가 있다. 창립 10년, 출범 8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이들은 어떻게 한국 금융의 지형도를 완전히 바꿔놓았을까?숫자보다 중요한 소비자 경험의 혁명2024년 말 기준, 토스의 월간활성이용자 수(MAU)는 2480만명, 카카오뱅크는 1800만명, 카카오페이는 2402만명에 달한다. 국내 성인 인구의 절반 이상이 이들 앱을 매달 최소 한 번 이상 이용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 숫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불러온 경험의 혁명이다.토스의 출발점은 단순했다. 공급자 중심으로 만들어져 있는 모든 금융 프로세스를 소비자중심으로 바꾸자는 생각이었다. 그것이 바로 '금융을 쉽고 간편하게'라는 브랜드 이념이다. 2015년 간편송금 앱 토스를 출시하며 당시 금융거래의 최대 골칫거리였던 공인인증서와 보안카드를 과감히 걷어냈다. 여섯 자리 비밀번호만으로 송금할 수 있는 이 혁신은 금융의 진입장벽을 획기적으로 낮췄다. 이것이 소비자 중심의 첫 번째 혁신이었다토스의 브랜드 DNA는 '금융의 모든 불편함(페인포인트)을 해결한다'이다. 이것이 토스의 모든 서비스 개발과 마케팅 전략의 근간이다.토스뱅크의 '평생 무료환전'(25년 3월 말부터 700달러 이상은 수수료를 받음) 서비스는 금융 시장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환전 수수료 부과가 당연했던 외환 시장에 수수료 무료 경쟁을 촉발한 것이다. 출시 1년도 안 돼 200만 고객을 확보했다. "왜 환전할 때 수수료를 내야 하나요?"라는 단순한 의문이 시장 판도를 바꾼 셈이다.또한 토스뱅크가 선보인 '함께대출'은 서로 다른 두 은행이 공동으로 자금을 조달해 소비자에게 대출을 제공하는 상품으로, 금융위원회로부터 '혁신금융서비스'로 선정되기도 했다. 기존 은행들의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파격적 발상이었다. 카카오의 출발도 다르지 않다. "왜 사용자가 불편을 감수해야하죠?"가 첫 번째 질문이다. 이런 철학이 반영된 것이 카카오 모임통장이다. 카카오뱅크의 '모임통장'은 한국 사회에 뿌리깊은 모임 문화에 주목한 상품이다. 통장 하나로 회비 관리의 투명성을 높이고 총무의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이미 850만명 이상이 이용하는 대표 서비스로 성장했다. 14~19세 Z세대를 위한 카카오뱅크의 '미니뱅킹'도 빼놓을 수 없다. 통장 없이도 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해 '미래의 고객'을 선점했다. 엄마 카드를 쓰던 10대들에게 '내 카드'라는 자부심을 심어준 건 물론이고 미래고객을 묶어두는 록인(rock-in)효과를 톡톡히 보고있다.패러다임을 바꾼 조직과 문화토스와 카카오 금융이 혁신적인 서비스를 내놓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기존 금융권과는 다른 조직 문화가 있다. 가장 보수적인 은행산업에서 후발 주자지만 변화를 만드는 '메기'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었다. 그들은 그저 익숙한 '또 하나의 은행'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일례로 토스뱅크는 '도메인-트라이브-스쿼드'라는 조직 구성을 통해 각 영역이 온전한 책임을 갖고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했다. 기존 은행은 기획부서와 개발부서가 분리돼 있지만, 토스뱅크는 하나의 스쿼드에 ▲상품 전문가 ▲디자이너 ▲개발자 ▲데이터분석가가 모두 속해 있다. 이런 구조가 빠른 의사결정과 고객 중심의 서비스 개발을 가능하게 했다.이들의 고민은 "은행은 원래 이렇게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는 것이었다. '어떻게 하면 더 잘할까?'보다 '고객입장에서 불필요한 이 일을 아예 없앨 수는 없을까?'라는 근본적인 생각을 했다는 점이 다른 점이다. 토스와 카카오 금융의 성공은 100년 이상을 이어온 공급자 중심의 시장을 단기간에 소비자 중심으로 만든 '브랜드 혁신'(Brand Innovation)의 사례다. 이들은 단순한 기술 혁신을 넘어, 금융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과 경험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브랜드 경험 혁신'을 일궈냈다.현재 두 기업의 자산 규모는 시중 대형 은행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지만, 고객 접점과 디지털 혁신 역량에서는 이미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특히 금융업의 미래를 좌우할 MZ세대와 Z세대 시장에서는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어, 미래 성장 가능성은 무한하다는 평가다.토스는 2013년 창업 이후 금융 규제 속에서도 혁신적인 간편송금 서비스로 시장에 도전하며 빠르게 성장했다. IT와 금융의 경계가 점점 흐려지는 가운데, 토스는 단순한 금융 서비스를 넘어 생활 플랫폼으로의 진화를 꿈꾸고 있다.카카오페이는 2025년 핵심 전략으로 데이터 수익화에 주목하고 있다. 업계 최다 수준의 마이데이터와 자사 보유 데이터를 활용해 생성형 인공지능(AI)를 결합한 금융 플랫폼으로 진화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개인화된 금융 어드바이저로서의 입지를 굳히겠다는 전략은 금융의 미래를 보여주는 중요한 시그널이다.이들 두 금융브랜드의 디지털 금융 혁신 사례는 글로벌 금융업계가 주목하는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이들이 추구하는 '불가능을 삭제한 사용자 경험(UX)'은 금융을 넘어 다양한 산업에 영감을 주고 있다. 토스와 카카오 금융, 이들의 행보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허태윤 칼럼니스트(한신대 교수)

2025.04.26 10:01

4분 소요
막 오른 경제 공약 경쟁, 그리고 힘 잃은 의료개혁 [EDITOR’S LETTER]

전문가 칼럼

오는 6월 3일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출사표를 던진 후보들이 공약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65세 이상 버스 무료 탑승부터 핵무장까지 다양한 정책을 내고 있는데요, 경제 공약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 눈길을 끕니다.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후보는 2030년까지 ▲3% 잠재 성장률 ▲세계 4대 수출 강국 ▲1인당 국민소득 5만 달러 달성을 목표로 하는 ‘3·4·5 성장’을 집권 비전으로 내걸었으며, 주가 5000 시대와 상법 개정안 재추진 등도 약속했습니다. 김동연 후보는 경제 위기 극복를 위해 기회경제·기후경제·돌봄경제·지역균형·세금-재정 빅딜 등 신속하고 과감한 5대 빅딜로 ‘경제대연정’을 성사시키겠다고 했습니다. 국민의힘의 한동훈 후보는 ▲인공지능(AI) 세계 3대 강국 ▲국민소득 4만 달러 ▲중산층 70% 확대를 골자로 하는 ‘3·4·7 비전’을 내놓았고, 김문수 후보는 법인세와 상속세 최고세율을 각각 21%와 30%로 인하하고, 일자리 창출 기업에 각종 세금·부담금을 감면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홍준표 후보는 ▲도심 노후 주택 재개발·재건축 ▲종합부동산세 폐지 등 주택 세제 개편 ▲징벌적 상속세 대폭 완화를 제안했습니다. 또 모든 후보가 인공지능(AI) 시대로의 대전환에 맞춰 적게는 50조원, 많게는 200조원 규모의 AI 산업 육성 정책을 경쟁적으로 제시했습니다. 이재명 후보는 ▲AI 기본소득 ▲무료 AI 서비스(한국형 챗GPT) ▲AI 단과대학 설립 등 ‘K-AI 국가전략’을 발표했습니다. 김경수 후보는 AI 주권 확보와 산업의 전환에 향후 5년간 총 100조원 규모 민관 공동투자를 이뤄낼 것이라고 했습니다. 김문수 후보는 ‘AI G3 진입’을 목표로 AI 인프라 확대와 스타트업·벤처 중심의 성장 모델을, 한동훈 후보는 200조원 규모 민관 공동 펀드 조성과 ‘AI 전사’ 1만명 양성 등을 각각 내걸었습니다. 홍준표 후보는 5년간 AI·양자·초전도체 등 첨단 분야에 최소 5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했고, 안철수 후보는 2035년까지 AI 세계 3강 진입을 약속했습니다. 각 후보들이 정쟁보다는 경제정책을 내놓고 경쟁하는 모습을 보여 기대가 됩니다. 이는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 트럼프발 관세전쟁 등의 여파로 국내외 경제 상황이 악화하면서 시민들이 심각한 먹고사는 문제에 직면해 있어 후보들이 경제를 중심에 놓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다만 경계해야 할 것은 이들 공약이 보기 좋고 듣기 좋은 공약이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실현 가능한지, 실제로 도움이 되는지를 따져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에게 재앙이 될 수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윤석열 전 대통령이 공약으로 추진한 의료개혁입니다. 의료인력 부족 해소와 지역 및 필수의료 강화, 고령화 사회 대비 등을 이유로 의대생 2000명 증원을 강행했는데, 의대생과 전공의가 교육·의료 현장을 떠나는 등 의료계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습니다. 양측이 한 치의 양보 없이 싸우는 사이 응급 환자들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의료개혁은 윤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파면되면서 동력을 잃게 되었는데요, 1년 간 의료 현장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 됐습니다. 의대생이 복귀했지만 수업 정상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고, 내년 의대 정원 동결에 수험생들이 대혼란에 빠졌습니다. 이에 의료계는 의료개혁 철회까지 요구하고 있는데요, 아무리 명분이 좋아도 치밀한 계획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한다면 실패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멋진 공약이 아니라 실행 방안까지 구체적으로 준비된 공약이 제시돼야 합니다. 그런 공약이 나오기 위해서는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는 유권자가 있어야 합니다.

2025.04.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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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유통 시장의 숨은 허리, '베드뱅크'(Bedbank)가 뜬다

유통

유엔 세계관광기구(UNWTO)에 따르면 지난해 국제 관광객 수는 약 14억명으로, 팬데믹 이전(2019년)의 99% 수준에 도달했다. 다시 한 번 글로벌 여행 시장이 달아오르고 있는 셈이다. 이에 늘어나는 숙박 수요를 잡기 위한 여행사들의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숙소 유통의 숨은 중개자인 ‘베드뱅크’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국내에서는 다소 생소한 개념인 ‘베드뱅크(Bedbank)’는 B2B 사업 모델이다.대부분의 ‘숙소 상품’들은 호텔, 리조트 등의 숙소 운영자와 온/오프라인 여행사, 항공사 등의 판매자와 직계약을 맺고 판매된다. 이때 다수의 숙소 상품들을 도매가 시스템을 통해 제공함으로써 숙박 옵션을 확장하고 비용 효율을 높이는 구조가 베드뱅크다. 숙소 운영자는 여러 유통 채널과 직접 계약을 맺지 않아도 되고 판매자 역시 흩어져 있는 숙소 재고를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이 같은 사업은 이미 해외 숙박 유통 시장의 핵심 축으로 자리잡고 있다. 스페인에 본사를 두고 있는 ‘호텔베즈(Hotelbeds)’나 호주의 ‘웹베즈(WebBeds)’가 대표적이다. 호텔베즈는 6만여 개의 여행사 및 OTA(온라인 여행사)와 파트너십을 맺고 있으며 연간 약 4,600만 건의 객실을 연결하고 있다. 웹베즈 또한 5만 개 이상의 여행사와 제휴를 맺어 영역을 크게 확장하고 있다. 양사 모두 실시간으로 숙소를 연동하는 API 기반의 플랫폼을 구축해 관련 글로벌 시장의 핵심 인프라로 여겨진다.반면 국내 시장에는 아직 베드뱅크 모델이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한 모습이다. 각 여행사 및 호텔마다 직접 계약이 일반적인 방식으로 정착돼왔고 팬데믹 여파에 따른 여행업계 인력 감소로 유통 구조의 디지털 전환(DX)도 늦어진 영향이다. 이로 인해 여행사는 다양하고 안정적인 재고를 확보하기 어렵고, 호텔 역시 효율적인 판매 채널 관리에 한계를 겪어왔다.다만 국내에도 토종 베드뱅크형 업체가 있다. 지난 2020년 말 설립된 올마이투어닷컴은 AI를 기반으로 한 베드뱅크형 업체로 잘 알려져 있다. 현재 198개국 25만 개 도시에 걸쳐 약 300만 개의 숙소를 확보하고 있다. 이는 국내 글로벌 온라인 여행 플랫폼(OTA) 중 최대 수준의 인프라로 평가된다.특히 올마이투어닷컴은 솔루션을 기반으로 인바운드 여행 시장에서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간 해외 여행사들은 한국에 특화된 B2B 공급망의 부재로 글로벌 OTA에 의존한 결과, 가격 및 옵션 구성, 실시간 재고 확인 등 다양한 측면에서 제약을 겪어왔다. 호텔들은 비교적 좁은 판로와 중간 수수료 정책으로 소비자에게 보다 경쟁력 있는 가격을 제시하기 어렵다고 목소리를 높였다.이에 올마이투어닷컴은 자사가 직계약한 10만 개 이상의 국내 숙소 상품에 대해 실시간 재고 및 가격 정보를 해외 여행사에 제공, 한국 관광의 접근성과 경쟁력 제고에 나서고 있다.올해 3월 방한 관광객 2위 국가인 일본의 한큐교통사와 체결한 파트너십도 그 일환이다. 현재 올마이투어는 약 200개 이상의 해외 판매 채널을 보유하고 있으며, 전사 매출의 약 63%가 해외에서 발생하고 있다.석영규 올마이투어닷컴 대표는 “B2B 베드뱅크는 글로벌 숙박 유통 시장에서 보이지 않는 중추 역할을 하고 있으나 국내에서는 상대적으로 그 중요성이 덜 부각돼왔다”며 “호텔과 여행사를 효율적으로 연결하는 이 구조는 공급자와 판매자 모두의 부담을 줄이고 최종 소비자들에게 보다 다양한 선택지와 합리적인 가격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25.04.25 08:01

3분 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