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 시장에서 ‘책임준공 약정’은 더 이상 선택사항이 아니다. 사업에 참여하는 건설사라면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조건으로 자리 잡았고, 금융기관은 이를 통해 대출 회수의 안전판을 마련한다. 문제는 이 약정이 부동산 경기 침체와 자금시장 경색이 겹친 상황에서 건설사의 구조적 위험 요인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책임준공, ‘적극적 채무’지만 강제집행 어려운 이유책임준공 약정은 도급계약과 사업약정서에 통상 포함되며, 시공사가 정해진 기간 내에 공사를 완공할 의무를 부담한다. 주목할 부분은 이 약정이 단순한 공정계획 수준을 넘어 PF 사업 전체의 핵심 신용보강 장치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실질적으로는 보증에 가까운 역할을 하며, 위반 시 손해배상은 물론 시행사가 차입한 PF 대출금에 대한 채무를 시공사가 인수하는 방식으로 귀결된다.이러한 구조는 단기적으로는 사업 안정성 확보에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일정 한계를 넘어서면 시공사 입장에서는 과도한 재무 부담으로 전환된다. 특히 공정률이 낮거나 분양률이 부진한 경우, 금융기관은 준공기한의 짧은 연장조차 허용하지 않고 곧바로 자금 회수에 나서는 경향을 보인다. 이 과정에서 책임준공 약정은 건설사의 유동성을 급격히 고갈시키는 역할을 하며, 대출 조기 회수 움직임이 여러 사업장의 동시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리스크가 크다.2022년 강원도 레고랜드 사태 이후 PF 시장은 급속히 위축됐다. 금융기관은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회수하려는 기조를 강화했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건설사와 시행사로 전가됐다. 실제로 책임준공 약정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건설사들의 폐업이 급증했고, 작년 한 해 동안 500개에 가까운 종합건설사가 폐업했다. 올해 초 두 달 만에도 100곳이 넘는 종합건설사가 문을 닫았다.법적으로 책임준공은 ‘작위채무’로 분류된다. 이는 단순히 공사를 끝마치겠다는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위를 통해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적극적 채무를 의미한다. 그러나 실무에서는 이행청구나 강제집행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의무 내용이 명확히 특정되기 어렵고, 강제이행의 방식 또한 현실적으로 제약이 따르기 때문이다. 결국 책임은 손해배상 또는 채무인수 방식으로 전환되고, 시공사는 정해진 기한 내에 준공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연체이자 ▲분양자에 대한 손해 ▲PF 미상환 원리금까지 책임지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여기서 더 큰 문제는 ‘책임 범위’의 불명확성이다. 사업약정서에서 손해배상과 채무인수가 혼재되어 있거나, 계약 말미의 ‘특약사항’에서 별도로 시공사의 부담을 정리해 놓는 경우가 흔하다. 실무상 이러한 특약은 계약 본문보다 우선하는 효력을 갖는 것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아, 시공사는 예상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재무 리스크에 노출될 수 있다.
중소형 건설사의 경우는 사정이 더욱 열악하다. 자체 신용으로는 PF 대출을 유치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책임준공 약정은 사업 수주를 위한 필수 조건이 된다. 시장 경쟁이 워낙 치열하다 보니 불리한 조항에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고 계약을 체결하게 되고, 이런 구조가 반복되면 책임준공 약정은 ‘처음부터 손실을 내포한 계약’으로 기능하게 된다.이러한 구조는 ‘책임준공형 토지신탁’에서도 동일하게 작동한다. 부동산신탁사는 PF 사업 초기에 금융기관과 함께 책임준공 확약을 체결하며, 시공사가 의무를 다하지 못할 경우 이를 대신 이행하거나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 이를 위해 사용하는 자금이 ‘신탁계정대’인데, 이는 시공사의 공사 중단에 대비한 예비 자금이다. 그러나 이 자금은 PF 대출보다 후순위에 위치하며, 회수 가능성도 낮아 신탁사 입장에서는 상당한 부담이 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계약서에는 신탁사가 부담한 금액을 시공사에 다시 청구할 수 있는 조항이 포함돼 있다. 이 조항 역시 특약사항 형태로 정리돼 있어 본문보다 우선하는 효력을 갖는 경우가 많으며, 결국 최종 책임은 다시 시공사로 돌아간다. 표면적으로는 신탁사가 위험을 떠안는 구조처럼 보이나, 실질적으로는 건설사의 리스크가 분산되지 않고 되돌아오는 구조다.정부 개선안 실효성 의문...균형적 재정립 필요정부도 이러한 구조적 불균형을 인식하고 있다. 2024년 11월 발표된 ‘부동산 PF 제도 개선방안’에서는 책임준공 기한 연장 사유를 폭염·감염병·법령 개정 등으로 확대하고, 책임 미이행 시 채무인수 비율을 경과 기간에 따라 차등화하는 방안을 담았다. 아울러, 신탁사의 일괄 대출상환 약정을 제한하고, 손해배상 범위를 직접적인 손해로 한정하는 기준도 함께 제시됐다.그러나 이러한 제도 개선은 자율규범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실효성에는 의문이 제기된다. 금융기관은 여전히 대출 회수 안정성 중심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고, 시공사나 신탁사는 사업을 따내기 위해 불리한 약정도 수용해야 하는 현실에 놓여 있다. 그 결과, 책임준공 약정은 ‘신용보강’이라는 이름으로 구조적 부담을 고착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지금 필요한 것은 책임준공 약정의 법적 구조와 실제 운용방식에 대한 균형 잡힌 재정립이다. ▲사업장의 수익성 ▲리스크 요인 ▲시공사의 실제 이행능력을 함께 고려해 책임 범위를 현실화하고, 책임이 무제한으로 확대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특히 ▲면책 사유 ▲책임 범위 ▲손해배상 예정액 등을 계약서에 명확히 규정하지 않으면 분쟁 발생 가능성이 높고, 이는 시장 전체의 불확실성으로 이어진다. 책임준공 약정은 본래 사업의 안정성을 위한 제도다. 그러나 지금처럼 건설사와 신탁사에 일방적으로 책임이 집중되는 구조로는 장기적으로 PF 시장 전체의 건전성을 위협할 수 있다. 법적 정합성과 실무 현실을 조화롭게 반영하는 개선책이 필요한 시점이다.김기동 법무법인 로백스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