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ECONOMIST

오피니언

오피니언

‘케데헌’이 증명한 ‘브랜드K’의 새로운 가능성과 과제[허태윤의 브랜드 스토리]

전문가 칼럼

서울 남산타워 입구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애니메이션 속 장면을 재현하며 사진을 찍는다. 국립중앙박물관은 호작도 배지와 갓 키링 품절 대란으로 온라인 오픈런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는 단순한 문화 현상이 아니다. 넷플릭스의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헌터스(KPOP Demon Hunters)가 만들어낸 경제적 파급효과의 생생한 현장이다. 실제 수치는 더욱 놀랍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케데헌’ 방영 이후 외국인 관광객의 37.7%가 K-콘텐츠를 접한 후 한국 여행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응답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상반기 관람객 수는 전년 동기대비 64.2%이상 증가했고 상당수는 케데헌이 공개된 지 1개월 이후의 관람객이다. 특히 외국인 관람객은 50% 이상 급증했다. K-푸드 관련 주식시장에서도 즉각적인 반응이 나타났다. 대상, 오뚜기, CJ제일제당 등 K-푸드 관련 기업들의 주가가 연이어 상승했고, 김치찌개를 비롯한 한국 전통 음식에 대한 글로벌 검색량이 300% 이상 폭증했다.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던 '한류 피크론'에 대한 우려를 한방에 잠재웠다. 케데헌 현상은 한류가 여전히 성장하고 있으며, 더 중요한 것은 그 성장의 방식이 진화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브랜딩 관점에서 본 한류의 진화이제 우리는 한류를 단순한 문화 상품이 아닌 '문화 브랜드'로 접근해야 한다. 브랜딩 전략 측면에서 케데헌의 성공 요인을 분석하면 '색다른 친숙함'이라는 핵심 개념이 도출된다. K-POP과 퇴마라는 이질적 소재의 조합, 서울의 현란한 야경과 한옥의 대비, 김치찌개와 현대적 K-POP 문화의 만남. 이 모든 것들이 글로벌 관객들에게는 신선하면서도 친근한 경험을 제공했다.이는 K-콘텐츠가 이제 단순히 '한국적인 것'을 넘어 '글로벌하게 통용되는 한국적 감성'으로 진화했음을 의미한다. 문화적 할인(Cultural Discount)을 최소화하면서도 고유한 정체성은 유지하는 절묘한 균형점을 찾아낸 것이다.팬덤 기반 확장 전략의 새로운 모델케데헌이 보여준 또 다른 브랜딩 차원의 중요한 시사점은 팬덤 기반 지식재산권(IP) 확장의 정석이다. 넷플릭스는 케데헌 세계관을 활용한 의류, 완구 사업은 물론 싱어롱 이벤트를 위한 극장 상영까지 추진하고 있다. 스트리밍 오리지널이 극장으로 간 이례적 사례다. 나아가 넷플릭스는 ‘넷플릭스하우스’ 라는 오프라인 체험공간을 올 연말 완공을 목표로 댈러스와 필라델피아에 개관한다. 이곳에서 세계적인 팬덤을 가진 ‘캐데헌’이 주요한 콘텐츠로 다뤄질 것이라는 건 물어볼 필요도 없다.이는 콘텐츠가 단순한 일회성 소비를 넘어 지속적인 가치 창출이 가능한 '살아있는 IP'로 진화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K-POP이라는 이미 강력한 팬덤을 보유한 장르와 결합함으로써 그 확장 가능성은 더욱 커졌다.여기서 중요한 것은 앞으로는 우리가 이런 확장을 주도해야 한다는 점이다. 브랜드 K를 알리는 콘텐츠 자체의 성공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만들어내는 모든 파급효과를 내재화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K 브랜드를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열쇠다.IP 소유권이 만드는 차이: 해리포터 vs 쿵푸팬더케데헌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IP 소유 여부가 만드는 경제적 차이를 살펴봐야 한다. 해리포터와 쿵푸팬더, 그리고 픽사의 코코를 비교해보자. 해리포터는 영국 작가 J.K. 롤링이 창조한 IP다. 책은 물론이고, 영화 시리즈만으로 전 세계에서 77억 달러의 박스오피스 수익을 올렸지만, 그것은 빙산의 일각이었다. 해리포터 테마파크, 상품, 뮤지컬, 게임 등으로 확장되면서 총 경제효과는 300조 이상이다. 핵심은 IP 소유자인 롤링과 영국이 이 모든 부가가치의 상당 부분을 가져갔다는 점이다.반면 쿵푸팬더는 어떨까. 중국 문화를 소재로 한 이 애니메이션은 전 세계적으로 18억 달러의 박스오피스 수익을 올렸다. 하지만 IP를 소유한 것은 드림웍스였고, 중국은 문화적 자부심 외에는 얻은 것이 거의 없었다. 심지어 중국 내 캐릭터 상품 판매 수익조차 대부분 미국 기업이 가져갔다. 픽사의 코코 역시 마찬가지다. 멕시코의 '디아 데 무에르토스(죽은 자들의 날)' 문화를 다룬 이 작품은 8억 달러의 박스오피스 수익을 올렸고, 멕시코 관광업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IP에서 파생되는 핵심 수익은 여전히 디즈니의 몫이었다.케데헌은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 우리는 원재료를 제공했지만 가공과 유통을 통한 부가가치 창출은 넷플릭스와 소니픽처스가 담당한 셈이다. 이런 구조 속에서 K 브랜드가 지속가능할 지 생각해 볼 일이다. ‘케데헌’이 제시한 새로운 한류의 가능성을 토대로 K 브랜드의 미래를 다시 그려야 하는 이유다. 메이드 위드 코리아의 전략적 의미케데헌은 기존의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에서 '메이드 위드 코리아’(Made with Korea)로의 패러다임 전환 필요성을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슬로건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다. 완성품 수출 방식에서 벗어나 기획, 제작, 유통의 가치사슬 전반에서 글로벌 파트너십을 구축하되, 핵심 지분과 권리는 확보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초현지화(hyper-localization) 전략이 필요하다. 글로벌 이용자들의 문화적 장벽을 최소화하면서도 세밀한 디테일로 몰입도를 높이는 것이다.케데헌의 성공 비결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한국계 제작진과 실제 K-POP 업계 관계자들의 참여로 현실적이면서도 흥미로운 한국 문화의 면면들을 그려냈고, 제삼자 시선으로 포착한 디테일은 한국인들에게도 신선함을 주었다.넥스트 K로 가는 길케데헌은 K-콘텐츠의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보여준 이정표다. 우리 문화의 글로벌 파워를 재확인시켜주는 동시에, 그 파워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 필요한 과제들도 명확히 제시했다.이제 우리는 문화적 자부심을 넘어 산업적 주도권 확보로 나아가야 한다. 케데헌이 증명한 K-콘텐츠의 무한한 가능성을 바탕으로, 다음번에는 우리가 직접 기획하고 제작하고 유통까지 주도하는 '넥스트 K'의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 케데헌의 성공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 돼야하는 이유다.

2025.09.21 16:00

4분 소요
AI 시대 성공하는 조직의 조건...AI를 운영체제로 전환해라 [스페셜리스트 뷰]

전문가 칼럼

얼마 전 ‘미래의 조직, 조직의 미래’라는 책이 출판되었을 때만 해도 ‘인공지능(AI)이 조직 운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때가 얼마나 빨리 올까?’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비즈니스뿐 아니라 생활 전반에 이르기까지 AI가 미치는 영향을 모두가 체감하고 있다.AI는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행동 패턴 전반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그러나 이를 조직 운영에 적용하는 기업들의 준비 수준은 극명하게 갈린다. 이미 앞서가는 기업들은 AI를 기존 시스템과 프로세스에 빠르게 통합하여 효율성과 성과 측면에서 혁신을 이뤄내고 있다. 반면, 어떤 기업들은 여전히 AI 도입 자체를 고민하거나, 단순히 개인 단위의 효율화 도구로 활용하는 데 그치고 있다.글로벌 컨설팅 회사들도 AI가 바꿀 산업과 노동의 미래에 관해 앞다투어 보고서를 내고 있다. PWC의 「2025 글로벌 AI 직업 바로미터」 보고서는 AI에 많이 노출된 직종(금융 분석가, 고객 지원 담당 등)은 그렇지 않은 직종보다 직원당 수익 성장률이 3배 이상 높았으며, 이들 직무에 요구되는 핵심 역량의 변화 속도 또한 66% 더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한다. 이는 AI가 업무 효율을 높여 실제 성과로 이어지지만,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개인과 조직의 지속적인 학습과 혁신이 필수적임을 보여준다.단순한 '도입'을 넘어 '조직 재설계'로 현장 리더들과의 인터뷰나 주요 기업 사례 연구를 통해 성공하는 기업들에는 공통점이 있음을 발견했다. 이들은 AI를 단순한 기술로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AI를 중심으로 마인드셋, 조직 문화, 업무 흐름 등 조직의 운영 방식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설계하고 있었다.산업 전반의 경쟁 구도는 이미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AI를 기반으로 사업을 구상하는 'AI 네이티브' 기업이 등장하는가 하면, AI를 ‘조직의 일원’으로 개념화하여 인간과 AI가 함께 의사결정하고 협업하는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확대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코파일럿(Copilot)을, 구글은 제미나이(Gemini)를 업무 흐름에 녹여 협업 방식을 바꾸고 있으며, 세일즈포스는 '디지털 노동력(Digital Labor)'을 통해 24/7 고객 서비스를 구현한다. 이는 과거 글로벌 기업이 전 세계에 물리적인 공유 서비스 센터(SSC)를 두었던 것에서 한 차원 진일보한 방식으로, 기술 도입과 동시에 조직 운영 모델을 혁신한 사례다.AI 시대의 조직 변화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어떤 의사결정까지 AI에게 맡길 것인가 ▲인간의 역할은 어디에 집중할 것인가 ▲이러한 혁신을 위해 필요한 정책·시스템·조직 문화·역량·리더십은 무엇인가다. 이 질문들을 바탕으로, AI 전환에 앞서가는 기업들이 공통적으로 준비하는 5가지 핵심 영역을 정리할 수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들이 정책·제도·시스템 같은 하드(Hard) 요소뿐만 아니라, 조직 문화처럼 소프트(Soft)한 요소들까지 오랜 기간 체계적으로 준비해왔다는 것이다. AI 시대를 선도하는 조직의 5가지 핵심 준비 영역 AI 전환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기업들에는 공통적으로 5가지 핵심 영역이 존재한다. 첫 번째 의사결정 파트너가 있다는 점이다. 인간과 AI의 협업 거버넌스 인간과 AI의 하이브리드 의사결정 체계는 둘 사이의 협력 가치를 내재화하기 위한 거버넌스를 포함한다. 알고리즘적 사고의 한계를 인지하고, 결과를 비판적으로 판단하며 최종 의사결정 권한을 명확히 인간이 가져야 한다는 의미다. 즉, 인간이 해야만 하는 영역과 AI가 뛰어난 영역의 경계를 이해하고, 절차와 범위를 명확히 설정해야 실수나 손실을 예방할 수 있다.2024년 에어캐나다의 챗봇은 고객에게 잘못된 할인 정보를 안내해 법적 분쟁을 야기했고, 법원은 항공사의 책임을 인정했다. 반면, 대출 플랫폼 업스타트(Upstart)는 전통적 신용평가 방식이 놓쳤던 교육 수준·고용 이력·소비 패턴 등을 AI 모델로 분석하여 대출 부실률을 크게 낮췄다. 핵심은 ▲AI에 적절한 역할을 부여하고 ▲AI가 제시하는 통찰을 사업적 맥락에서 해석하며 ▲최종 의사결정의 권한과 책임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선도 기업들은 향후 다중 AI 에이전트 활용으로 더욱 복잡해지는 협업 환경에서는 예측불가능한 상호작용 발생 가능성에 대한 대응책을 준비하고 있다. 구글·마이크로소프트·IBM 등은 AI 거버넌스 프레임워크를 업데이트하고 있다. 별도의 전문 부서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논의에 참여시키고 있다. 수평적이고 민첩한 조직이 있다는 게 또 다른 공통점이다. 경계를 허무는 협업 전통적인 위계 중심 조직 구조와 달리, AI는 부서 간 경계를 허물고 데이터 연계성을 높여 아이디어와 정보가 자유롭게 흐르도록 돕는다. 이를 통해 기능 간 협업은 전에 없던 형태로 확장되고, 새로운 조합을 통해 혁신적인 해결책을 만들 수 있다.AI가 중심이 되는 조직은 기능별 고정적인 구조를 최소화하고, 목적 중심으로 유연하고 민첩하게 변형 가능한 구조를 확대한다. 조직 개편에는 일반적으로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만, AI 기반의 조직은 문제해결을 위한 최적의 자원 배분과 민첩한 실행을 위한 수평적 관계 구조로 운영하는 것이 효과적이다.테슬라는 매우 평면적인 조직구조를 운영한다. 중간 계층을 최소화하고 엔지니어들이 직접 일론 머스크와 소통할 수 있는 채널을 유지한다. 이를 통해 신속한 의사결정과 혁신이 가능하다. 애자일 방법론은 소프트웨어 뿐 아니라 하드웨어 제조 분야에도 적용되어 자율적인 팀들이 문제 해결을 중심으로 구성되고 협력하여 신속히 솔루션을 모색하도록 한다.스포티파이의 Squad 모델도 소규모 자율팀을 작은 스타트업처럼 운영하여 스스로 업무 방식을 선택하고, 네트워크 조직으로 지식공유를 활성화하여 생산성을 높이도록 운영한다 수평 구조 운영의 핵심은 심리적 안전감 (Psychological Safety)으로, 구성원들이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환경적 요소이다. 여기에 AI 협업 툴을 더하면, 시공간 제약 없이 아이디어를 발전시킬 수 있다. 이는 원격, 하이브리드 근무환경을 선호하는 현 세대의 특성에도 부합한다. 세 번째 미래형 인재 생태계가 존재한다. 성과를 낼 수 있는 인재의 요건이 무엇인지는 모든 기업의 경영자가 밝히고자 하는 내용이다. AI와 함께 일하는 조직에서는 구성원에게 요구되는 역량과 성과책임이 더욱 선명해져야 한다.글로벌 인재관리 컨설팅사인 콘 페리(Korn Ferry)의 채용 트렌드 분석에 따르면, 기업은 핵심기술을 가진 인재의 채용에 더욱 집중하고 있다. 범용 자격요건 (예: 학위, 자격증, 특정 회사나 직무 경험 등)의 중요도는 이전 보다 더욱 감소하고, 핫스킬 보유자를 확보하는데 집중된다. 특히 AI관련 스킬을 보유한 직원들은 평균적으로 더 높은 급여를 받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기업은 인재를 확보하고 성장시키는 기준이 되는 스킬맵을 정의하고, AI를 활용하여 스킬 보유, 이동 경로, 활용 현황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하며 최적의 스킬 조합을 찾아야내야 한다. 인재관리는 더욱 정교해지고 있다. 몇 년간 지속적 감원으로 인적자원 최적화를 진행하는 메타·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 등의 기업들은 엄격한 성과관리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이러한 최적화의 또 한 축으로는 기존 인재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리스킬, 업스킬 프로그램을 꾸준하게 운영한다. 이러한 조직중심의 프로그램 운영과는 별개로 어느 때보다도 신기술과 역량에 대한 구성원의 자발적인 학습 노력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인재 요건 중 뚜렷한 경력 비전과 일에 대한 소명 의식, 자발성과 성장 마인드셋, 적응 능력 등이 중요한 자질로 고려될 것이다.이러한 변화는 관리자 역할에도 영향을 미친다. 디지털 역량 격차를 빠르게 줄이고, AI 활용 업무를 판단하고 조언하며, 디지털 워크 포스를 포함한 자원 관리, 동기부여 등의 고도의 휴먼 스킬이 리더들에게 새롭게 필요한 역량으로 강조된다. 빠른 실패를 하고 더 빠르게 학습한다는 공통점도 눈에 띈다. AI 시대는 빠른 실행이 가능하기 때문에 완벽한 계획하는 것 보다 신속한 실행과 시행착오를 통한 학습이 더 중요하다. 문샷 팩토리로 불리는 구글의 연구조직 X는 체계적인 실험문화를 구축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 조직은 실패로 인해 프로젝트가 중단될 때, 직원들을 축하하고 보상한다. 프로젝트 종료가 실패가 아니라 실험의 성공적인 신호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중단된 프로젝트의 인사이트, 경험, 프로토타입 등은 다음 아이디어에 영감을 제공한다고 강조한다.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는 ‘우리는 세계 최고의 실패 장소입니다. 실패와 발명은 분리할 수 없는 쌍둥이”라고 말했다. 사실 이와 유사한 문화적, 제도적 사례들은 기존 기업들에서도 충분히 발견할 수 있다. 선후 관계를 따지자면, 현재 성공적으로 AI를 도입한 기업들이 선명한 철학하에 조직문화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왔기 때문에 혁신 시대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핵심은 AI와 협업하여 아이디어를 발전시킬 수 있는 속도가 빨라진 만큼, 이를 실행할 수 있는 건강한 환경을 조성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실행-피드백-개선의 업무 방식을 조직에 생착시켜 AI와 함께 일하는 이점을 더욱 크게 만들 수 있다. 실패 예산 제도 등으로 건강한 실험 환경을 만들고, 학습 성과를 인정하며 실패 경험을 자산화하고 확산시키는 체계 마련과 한께, 성과 목표와 허용 범위를 명확히 해야할 것이다. 윤리에 기반한 신뢰가 존재한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AI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새로운 리스크가 등장한다. 데이터 오남용이나 보안 침해, 알고리즘 편향, 정보 유출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가치 소비를 중시하는 현세대에게는 AI와 관련 윤리와 투명성이 장기적인 신뢰 형성과 경쟁력에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기업은 내 외부 고객 모두에게 일관성있는 AI 윤리기준을 적용하고, 이를 모니터링 할 수 있는 원칙과 체계를 수립하고 실행해야 한다. 오픈 AI 출신 연구진들이 창업한 Anthropic은 인류를 위한 AI라는 방향성 하에서 AI의 안전성과 윤리적인 배포를 위한 프레임워크를 구축했다. 윤리원칙과 제약조건들을 내재하여 AI가 인간을 잘못된 결정으로 유도하는 등의 파괴적인 행동을 사전 테스트한다. 또한 AI에게 명시적인 헌법을 제공하여 윤리적 원칙에 따라 행동하도록 훈련시킨다. 기업용 서비스는 전문 영역을 고위험 영역으로 구분하고, 전문가의 검토를 의무화하는 등의 엄격한 제한 규칙을 따르며 더 높은 고객 신뢰를 얻고 있다. 핵심은 Responsible AI를 위한 노력이다. AI의 활용이 증가함과 동시에 리더십은 의사결정시 AI 사용에 대한 책임감을 조직에 내재화해야 한다. AI 사용 가이드라인을 작성하여 공유하고, 정기 감사 등의 모니터링과 점검체계를 운영하며, 구성원들을 적극적으로 교육해야 한다. 고객에게는 의사결정의 과정을 설명할 수 있는 체계와 피해 발생 시 대응할 수 있는 절차 등의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AI가 로봇 등 다른 기술들과 융합되는 미래를 대비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확장된 활용 영역과 다양한 협업 관계에 대한 고려, 사회적 책임 의식 등을 경영 원칙에 포함하고 공유할 수 있다. AI 혁신,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가? 기업의 상황과 준비도는 모두 다르기 때문에 모든 영역에서 선도기업 수준의 조직운영 환경을 갖추기란 어려운 일이다. 중요한 것은 현 수준을 빠르게 진단하고, 우리 기업 상황에 맞는 우선순위를 정해 목표를 세우는 것이다. 서두의 질문을 다시 한번 던져 본다. 첫 번째, 어떤 의사결정을 AI에게 맡길 것인가. 두 번째, 사람의 역할은 어디에 집중할 것인가. 세 번째, 이러한 혁신을 가능하게 하는데 필요한 ▲우리 조직의 정책 ▲시스템 ▲문화와 역량 ▲리더십은 무엇인가. 우리의 현재 수준은 어떠한지를 살펴봐야 한다. AI는 조직 운영의 체질을 바꾸고, 경쟁우위를 만들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성공을 위해 조직의 사고방식과 운영방식을 근본적으로 점검하고 작은 것부터 실행해 나가야 할 때다. 필자는 IBM, 헤이그룹, 삼성글로벌리서치, 하이브 등에서 20여 년간 조직과 인사 분야 전문성을 쌓아왔다. 현재는 디아이(THEI) 대표로서 기술 발전이 가져온 새로운 조직 환경에서 구성원과 회사 간 신뢰 형성, 효과적인 동기부여, 그리고 협업 체계 구축 등 핵심 조직 이슈 해결을 위해 다양한 기업들과 협력하고 있다.

2025.09.21 09:00

8분 소요
K-스타트업의 ‘학연 카르텔’ 해결 위한 고민 필요 [최화준의 스타트업 인사이트]

전문가 칼럼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모교 출신 창업 선배들과 만날 기회가 더 많기를 바랍니다.”얼마 전 열린 창업 관련 포럼에 연사로 참석한 한 대학생 창업자의 입에서 나온 희망 사항이다. 대학이 학생 창업자를 어떻게 도우면 좋을지에 대한 질문에 그는 “재무적 지원이 전부는 아닙니다. 모교 출신 창업 선배들의 관심과 조언이 매우 큰 도움이 됩니다” 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모교에 동문 창업자 연락처를 관리하고 후배인 학생 창업자들에게 공유하기를 희망했다. 대학생 창업자가 모교 출신 창업 선배를 찾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인맥은 창업자에게 중요한 자원이다. 스타트업은 인력을 채용할 때, 공개 채용보다 주변에서 추천을 받은 인재를 선호한다. 투자를 집행하는 벤처 캐피털들 역시 연줄을 이용해 피투자 기업 구성원들의 인적 사항을 검증한다. 이처럼 스타트업 생태계 구성원들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한국의 ‘카르텔’ vs 북미의 ‘마피아’…차이점은국내 스타트업 생태계 구성원 사이에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다양한 목적을 추구하는 집단이 형성되고 있다. 구성원 간 관계가 유난히 끈끈한 일부 집단은 생태계에서 영향력을 키우면서 외부와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인다. 외부에서는 그들을 ‘카르텔’로 지칭하기도 한다. 카르텔의 본래 의미는 ‘공동 목표를 위해 구성한 연합체’지만, 국내에서는 통상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횡포를 휘두르는 집단을 뜻한다. 언론에서 자주 쓰이는 용어인 ‘법조 카르텔’ ‘정치 카르텔’ 등을 떠올려 보면, 카르텔이라는 단어는 긍정보다는 부정의 이미지가 더 강하다. 언젠가부터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카르텔이라는 단어가 들리기 시작했다. 기술 창업을 하려면 ‘A대학’ 출신이어야 한다, 소셜 창업을 하려면 ‘B대학’ 출신이 유리하다는 등 뒷이야기가 주변에서 흔하게 들린다. ‘C대학’은 창업자가 대학원이 아닌 학부 졸업생이어야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성골로 대접받는다는 다소 과장된 억측도 있다. 업계는 해당 소문들을 지나가는 풍문으로 치부하면서 동시에 적극 부정하지도 않는다. 해외 스타트업 생태계에도 큰 영향력을 미치는 집단은 있다. 하지만 차이점이 있다. 국내 집단의 구심점은 대학인 반면 해외는 출신 기업을 중심으로 집단이 형성되어 있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미국 실리콘 밸리에는 전자 결제 스타트업 페이팔(Paypal)을 만든 창업자들이 업계 곳곳으로 나아가 활동하는 ‘페이팔 마피아’가 있다. 이들은 페이팔을 떠나 연쇄 창업자로 혹은 투자자로 활동하면서 행동 반경을 넓혀 왔다. 최근에는 인공지능 기반 분석 서비스 스타트업 팔란티어(Palantir Technologies)를 퇴직한 직원들이 스타트업들을 잇따라 창업하면서 그들을 지칭하는 ‘팔란티어 마피아’라는 용어도 생겨났다. 챗GPT를 만든 스타트업 오픈AI 출신 창업자들을 일컫는 ‘오픈AI 마피아’ 역시 인공지능 산업에서 세력을 키우고 있다. 마피아 구성원들은 같은 스타트업 출신이다. 그들은 기업을 세우고 성장하는 동안 동고동락한 사이이다. 가까이서 일한 동료이기에 서로의 능력을 존중한다. 서로를 돕고 지지할 이유가 충분하다. 이처럼 북미 스타트업 생태계의 마피아와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의 카르텔은 다른 가치를 기반으로 발전해왔다. 그래서 그들이 미래 세대를 품는 방식에도 차이점이 있다. 북미의 마피아는 기업 동문 출신 후배들에게 기회를 적극 공유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에 반해 국내의 카르텔은 대학 동문들에게 비교적 그 기회가 전유되는 경향이 있다. 학생 스타트업 수 감소, 서·연·고·카이스트 출신 창업가 수는 증가얼마 전 공개된 한국대학교육협의회와 전국 대학별 창업지원단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대학에서 설립된 학생 스타트업 수는 전년 대비 7.0% 감소했다. 반면 같은 기간 서울대·연세대·고려대·KAIST의 창업자 수는 전년 대비 31.4% 증가했다.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한 정부 지원이 줄어들고 경기 불황이 지속되는 가운데 소수 대학에서만 창업자가 늘어난 것이다. 이유는 무엇일까.창업자가 증가한 대학들을 놓고 원인과 해석은 분분하지만, 대다수 관계자들은 동문의 힘이라고 말한다. 창업 선배들이 출신 모교에 꾸준히 지원한 덕분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창업자가 증가한 대학들은 창업자 졸업생이 많은 학교로 꼽힌다.이는 학연을 둘러싼 국내 스타트업계의 장단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단점은 창업 인기가 높은 소수 대학에 자원과 지원이 편중되는 경향이 앞으로도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장점은 대학이 선후배 창업가 사이 연결 고리를 만들고 인맥을 강화한다면, 언제든지 캠퍼스에 창업 인기를 높일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다는 부분이다.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에 뿌리박힌 학연은 누구도 긍정하지 않지만 부정하지도 않는 존재이다. 일각에서는 그들을 카르텔로 지칭하며 비판하는 시각이 있다. 다른 쪽에서는 학연을 카르텔이 아닌 학력 자본, 즉 자원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런 의견을 가진 이들은 활동 방향과 방식을 조금 바꾼다면 대학 창업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창업 선후배 간의 잦은 교류는 궁극적으로 모교의 창업 인기를 촉진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 범죄 조직을 일컫는 마피아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실리콘 밸리의 마피아들은 재창업의 씨앗을 뿌리는 긍정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이런 면에서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는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의 학연 카르텔도 창업자들을 창업 선후배들 모두의 성장을 돕는 학력 자본으로 거듭날 수 있지 않을까. 포럼에 참석한 창업자의 발언처럼 창업 선배는 모교라는 동질감과 함께 후배들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2025.09.21 08:00

4분 소요
악화일로 청년 취업난, 그리고 규제 합리화  [EDITOR’S LETTER]

전문가 칼럼

청년 취업난이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악화일로입니다. 지난 8월 청년층(15~29세) 취업자 수는 전년 동월 대비 21만9000명이 줄면서 작년 5월부터 16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였습니다. 청년층에서 ‘실업자+취업준비+쉬었음’ 비중은 103만7000명으로, 전체 청년 인구 대비 13.1%로 전년 동월 대비 0.5%p 상승했습니다. 하반기 채용 시즌이 본격적으로 열린 이달도 청년들의 일자리 구하기는 쉽지 않아 보이는데요, 그나마 여력이 있을 것으로 기대한 대기업(매출액 500대 기업) 121곳 중 62.8%가 하반기 신규 채용 계획이 없거나 미정이라고 답했습니다. 이는 지난해 하반기(57.5%)보다 5.3%p 상승한 것으로, 청년의 취업문은 더욱 좁아지고 있습니다. 기업들이 올해 하반기 신규 채용을 꺼리는 이유는 경력직과 수시 채용을 더 선호하는 최근 흐름과 함께 대내외 불확실성 확대와 수익성 악화에 따른 경영 긴축이 주요하게 꼽힙니다. 또 원자재 가격 상승·인건비 증가, 글로벌 경기침체 장기화와 고환율 등 기업을 둘러싼 경영 환경이 역대 최악이라는 점 때문에 청년들이 혜택을 볼 수 있는 신규 채용의 기회마저 사라지고 있습니다.청년 취업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야 하지만 트럼프발 관세 폭탄의 후폭풍이 몰아치고 있는 세계 경제의 사정은 빠르게 개선될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입니다. 그래도 기업들이 비빌 언덕은 국내가 아닐까 합니다. 이재명 대통령도 기회 될 때마다 ‘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들을 옥죄고 있는 각종 규제를 철폐하는 것이 우선일 겁니다. 중소기업계는 최근 과도한 법적 위험으로 내모는 경제형벌을 합리화해달라고 정부와 국회에 건의했는데요, ▲배임죄 등 형벌 폐지 ▲중대재해처벌법 완화 등 형량 조정 ▲처벌→과태료 전환 ▲과징금 합리화 ▲행정처분 합리화 등입니다. 업계는 또 단순 행정착오나 경미한 위반까지 형사 처벌하는 불합리한 사례가 민생과 밀접한 분야에서 빈번하다며 배임죄와 함께 개선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단순한 실수까지 형사처벌로 이어지는 구조는 기업 경영활동을 위축시키고 신규 투자와 고용 창출에도 악영향을 끼친다”며 “정부와 국회는 불합리한 경제형벌 규정을 합리적으로 정비해 중소기업이 안심하고 도전·혁신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시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정부도 조만간 배임죄 관련 1차 개선안 발표, 연말까지 전 부처 경제형벌 규정 30% 정비 등 규제 합리화에 속도를 낸다는 계획입니다. 이 대통령은 “대대적인 규제 혁신에 새로운 성장의 길이 있다”며 "규제 개혁을 위한 규제 합리화 위원회를 대통령실 직속으로 만들겠다"고도 약속했습니다. 이 약속의 실천에 기업도, 청년도 살리는 길이 있을 겁니다.

2025.09.21 07:00

2분 소요
지상은 지키고 지하를 열다…보존과 혁신의 조화[김현아의 시티라이프]

전문가 칼럼

도시는 성장의 국면에서만이 아니라 성숙의 단계에서도 새로운 공간을 갈망한다. 개발도상국의 도시들은 인구와 산업의 팽창에 대응하기 위해 초고층 빌딩을 세우며 하늘을 향한다. 하지만 고층 개발은 종종 오래된 거리와 역사적 경관을 훼손하거나 사라지게 만든다. 도시가 성숙기에 접어들면, 단순한 토지 활용을 넘어 과거의 건축과 장소성이 갖는 상징적 가치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때 도시가 찾는 해법은 단순히 더 크게, 더 높게 짓는 방식이 아니다. 낡은 건축과 거리를 보존하면서도 새로운 기능을 담아내는 기술과 디자인이 필요하다. 여기에 지하공간도 빠질수 없다.거리의 얼굴은 지상에, 활력의 무대는 지하에도쿄 오모테산도는 이 전환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919년 메이지 신궁 참배길로 만들어진 이 거리는 전후 미군 문화와 국제적 감각이 뒤섞이며 도쿄의 패션·예술의 중심지가 됐다. 이곳에 자리했던 도준카이 아파트(1927년 건립)는 근대 주거의 기념비적 건물이었지만, 세월과 함께 노후화되며 재건축 논의가 불가피해졌다.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오모테산도 힐스 프로젝트(2003~2006)는 단순히 한 아파트 단지의 재건축에 그치지 않았다. 안도 다다오는 “도시의 원래 얼굴을 보존한다”는 철학 아래, 가로수와 경사에 순응하는 건물 높이, 낮은 파사드를 채택했다. 그러면서도 지하를 적극적으로 파고들어 지하 6개 층을 고급 상점, 레스토랑, 갤러리, 이벤트 공간으로 구성했다. 디벨로퍼인 모리빌딩(Mori Building Co., Ltd.)은 이를 통해 거리 경관을 유지하면서도 도심 속 새로운 에너지를 끌어낼 수 있었다.더욱이 철거된 도준카이 아파트의 흔적을 기록·조사를 거쳐 일부가 ‘도준관’으로 재현된 점은 아주 특별하다. 새로운 건축물 안에 옛 건물의 기억을 물리적으로 남긴 이 시도는, 단순한 개발이 아닌 기억의 계승을 통한 도시 재창조라 할 만하다. 경관을 지키면서 지하에 활력을 더하는 방식은 당시 일본에서도 드문 시도였는데 오모테산도 힐스는 그 전환점이 됐다.빛과 공기를 품은 지하 갤러리 미국 캔자스시티의 넬슨-애킨스 미술관은 본관이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진 기념비적 건물이었다. 인디애나 석회암으로 둘러싸인 중후한 외관과 최소한의 창문은 ‘예술의 신전’(Temple to Art)이라고 불릴 만큼 폐쇄적이고 장엄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며, 더 많은 전시 공간과 보다 개방적이고 유기적인 관람 경험에 대한 요구가 커졌다. 이러한 요구를 해결하기 위해 기존 건물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적인 건축적 해법을 모색하는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아직도 진행중인 이 프로젝트의 출발은 건축가 스티븐 홀이 이를 맡았다. 출발은 확장의 중심, 블록 빌딩(Bloch Building, 1999~2007)의 건립이었다. 이것은 하나의 덩어리 건물이 아니라 서로 연결된 다섯 개의 유리 ‘렌즈(lenses)’(구조물)로 공원 위에 배치했다. 그리고 진짜 확장된 전시공간은 지하에 배치했다. 이 렌즈 구조물은 낮에는 자연광을 모아 지하 갤러리로 끌어들이고, 밤에는 은은히 빛을 내며 주변 풍경을 환하게 밝힌다. 지하 전시공간은 기존 건물의 폐쇄성과 달리, 빛과 공기가 흐르는 열린 공간으로 바뀌었다. 이때 핵심 역할을 한 것이 바로 “Breathing T’s”라는 구조 시스템이다. 이 장치는 단순한 환기구가 아니다. 유리 렌즈 아래의 곡면 구조와 맞물려 빛과 공기를 지하로 전달하면서, 동시에 구조 지지체와 설비 통로를 겸한다. 건축과 설비, 구조가 하나의 유기적 장치로 결합된 셈이다. 덕분에 지하 갤러리는 자연광과 환기를 확보하고, 공원과 실내가 호흡하듯 이어지는 공간 경험을 제공한다. 방문객은 지상의 산책로와 지하 갤러리를 오가며, 실내외의 경계가 풀린 새로운 연속성을 체험하게 된다.지하를 여는 상상력과 기술의 조화이 두 사례는 지상의 경관과 기억을 존중하면서도 지하를 전략적 자원으로 삼아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냈다. 지하는 단순한 부속이 아니라 도시가 선택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무대였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기술과 상상력의 결합이다. 지반을 떠받치는 언더피닝, 상부 구조와 병행하는 탑다운 공법, 유리 구조물을 통한 자연광의 유입, 정교한 방수와 환기 시스템은 모두 그 결합의 산물이었다. 여기에 공간의 의미를 남기려는 건축가의 상상력과 디벨로퍼의 의지가 더해져, 새로운 전략을 탄생시킨 것이다.지난 칼럼에서 다룬 리트로핏이나 적응적 재사용이 낡은 건축물을 되살리는 과정이었다면, 지상 보존과 연계된 지하 개발은 도시 차원의 전략으로 확장된다. 결국 성숙된 도시가 풀어야 할 과제는 더 높이 쌓는 일이 아니라, 무엇을 남기고 어디서 확장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이다. 한국의 재개발·재건축은 여전히 지상의 용적률 확대에 치중한다. 오래된 건물과 거리를 대할 때도 선택지는 대체로 두 가지다. 외형만 남기는 형식적 보존이거나, 흔적조차 없이 철거하는 방식이다. 보존과 개발이 병존하는 전략은 거의 시도되지 않는다. 그러나 위 두 사례는 보존과 개발의 병존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건축기술의 실험이 아니라 도시 전략의 전환이다. 한국에서 도시개발은 신개발이든 재개발이든 더 많은 용적률을 확보하는 것을 개발사업 최대의 목표로 삼는다. 용적률 상승이 곧 수익이라는 낡은 계산법 때문이다. 그러나 꼭 그렇지많은 않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이제 우리도 더 높은 건물을 세우는 용적률의 게임에서 벗어나, 보존과 확장의 병존을 제도화하는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지하 개발을 제약하는 규제를 유연하게 풀고, 경관 보호구역에서 지하 활용을 허용하며, 지하 공간을 복합 기능의 플랫폼으로 승인하는 제도적 변화가 필요하다. 지하는 더 이상 단순한 부속 공간이 아니다. 보존과 혁신이 만나는 또 하나의 무대이기 때문이다. 기술의 진보와 건축가의 상상력, 디벨로퍼와 시민의식이 어우러질 때 한국 도시도 철거와 신축의 낡은 이분법을 넘어설 수 있다. 지상은 기억을 간직하고, 지하는 미래를 여는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025.09.20 13:00

4분 소요
‘사탐런’ 폭발…이과생 문과 침공, 대입 지형 바꿨다 [임성호의 입시지계]

전문가 칼럼

2017학년도부터 수능 체제가 크게 개편됐다. 사회탐구 과목은 사회문화, 생활과 윤리 등 9개 과목으로, 과학탐구 과목은 지구과학Ⅰ, 생명과학Ⅰ 등 8개 과목으로 확정됐다. 이전까지 사회탐구 영역에 포함됐던 한국사는 2017학년도부터 탐구 선택과목에서 제외되고, 모든 수험생이 반드시 응시해야 하는 필수 과목으로 지정됐다.대학입시의 변수들2026학년도 대학입시의 핵심 변수는 지난해부터 입시 용어로 등장한 '사탐런' 현상이 더욱 확산됐다는 점이다. 이는 수험생의 전략 선택과 대학의 전형 운영 모두에 큰 영향을 미치며, 중대한 입시 변수로 떠올랐다.현행 통합수능은 2022학년도부터 실시됐으며, 현재 고2이 치를 2027학년도 입시를 끝으로 종료된다. 2022학년도 첫 통합수능의 최대 쟁점은 수학 과목이었다. 기존에는 수학 가형과 나형으로 문·이과가 각각 다른 시험지를 풀고 별도로 석차를 매겼지만, 통합수능에서는 공통과목 22문항에 더해 미적분, 기하, 확률과 통계 중 하나를 선택해 총 30문항을 치르고, 문·이과 학생이 함께 석차를 매기도록 변경됐다.이 방식에서는 수학에 강점을 지닌 이과 학생들이 상위 등급을 사실상 독식했다. 실제로 1등급 인원의 약 95%가 이과 학생이었으며, 이로 인해 이과 학생들이 인문계 상위권 학과로 진학하는 '문과 침공'이 예견됐다.예상은 그대로 현실이 됐다. 통합수능 첫해였던 2022학년도 입시에서 서울대 등 최상위권 대학의 인문계 학과, 특히 상경계열에서는 미적분이나 기하를 선택한 이과 학생 비율이 80% 이상에 달했다.문제는 수학 만점을 받아도 문과 선택과목을 택했을 경우 표준점수와 백분위에서 불리해지는 구조였다는 점이다. 수험생과 학부모가 점수 체계를 이해하기조차 어려웠고, 결과를 예상하기도 힘든 상황이었다.또한 이과 학생들이 과탐 과목을 선택해 인문계 학과로 지원하는 데에는 제한이 없었던 반면, 사탐 과목을 선택한 문과 학생들이 의대 등 자연계 학과로 지원하는 경우는 주요 대학에서 대부분 제한됐다. 이러한 불균형을 완화하기 위해 대학들은 2025학년도부터 일부 자연계 학과에서 사탐 과목 응시자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과 학생들의 '사탐런'이 조치가 2025학년도부터 '사탐런'의 직접적인 촉매제가 됐다. 과탐 과목은 난이도가 높아 수험생의 부담이 크다. 이에 이과 학생들은 상대적으로 학습 부담이 적다고 여겨지는 사탐 과목으로 눈을 돌렸고, 대학은 이들을 자연계 학과로 받아들이는 전략을 택했다.이과 학생 입장에서는 과탐 부담을 줄이고 사탐에서 상위 등급을 확보해 수시와 정시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었다. 남는 학습 여력을 국어나 수학 등 다른 과목에 집중하는 전략도 가능해졌다.이 같은 흐름은 수험생 응시 인원 변화에서도 드러난다. 2026학년도 수능에서 사회문화 과목 응시자는 26만3047명으로, 2025학년도 18만5014명, 2024학년도 14만1016명 대비 급증했다. 생활과 윤리 역시 22만4552명으로, 2025학년도 18만3441명, 2024학년도 16만1009명에서 크게 늘었다. 두 과목은 사탐 전체 응시자의 66.8%를 차지하며 절대적인 비중을 보였다.반면 과탐 과목 응시자는 급감했다. 지구과학Ⅰ은 2026학년도 11만5435명으로, 2025학년도 15만3987명, 2024학년도 16만9535명에서 크게 줄었다. 생명과학Ⅰ 역시 11만2128명으로, 2025학년도 14만1027명, 2024학년도 16만409명에서 감소했다. 두 과목의 합은 과탐 전체의 69.2%를 차지한다.사탐 과목 응시자가 늘어나면서 1등급 4%, 2등급 11% 구간에 진입할 수 있는 인원이 크게 증가했다. 그 결과 수시에서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충족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다만 이로 인해 수능보다는 내신 성적이 당락을 좌우하게 되고, 내신 합격선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는 부담 요인이 발생했다.반면 과탐 응시자가 줄면서 의대 등 최상위 자연계 학과 수험생은 수시에서 수능 최저 등급을 맞추기가 한층 어려워졌다. 2026학년도 사탐런 현상은 지난해보다 훨씬 심화됐다. 현행 수능은 내년 2027학년도 대입을 치를 현 고2까지 적용된다.2027학년도에는 사탐런의 강도가 올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질 가능성이 높다. 이미 각 대학별 전형 방식이 확정된 상황이어서 변화 여지가 적기 때문이다.수험생의 노력보다 정책 변화와 과목 선택에 따른 응시자 집단 규모가 유불리를 크게 좌우하는 구조다. 올해 입시 결과에 따라 내년 2027학년도 입시의 흐름도 달라질 수 있어, 입시 안정성을 위협하는 중대한 문제로 지적된다.

2025.09.20 11:00

3분 소요
왜 그들은 실리콘밸리로 돌아왔나 [실리콘밸리의 사람들]

전문가 칼럼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샌프란시스코 부동산 가격과 생활비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수많은 창업자와 기업들이 텍사스 오스틴·플로리다 마이애미, 심지어 해외로까지 본거지를 옮겼다. 일론 머스크가 테슬라 본사를 텍사스로 이전하고, 오라클이 본사를 오스틴으로 옮긴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하지만 흥미로운 건, 이들 중 상당수가 다시 실리콘밸리로 돌아오고 있다는 점이다. 팬데믹 초기 ‘실리콘밸리의 종말’을 예측했던 전문가들의 예상과 달리, 2023년부터 다시 회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원격근무 문화가 정착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면 네트워킹과 우연한 만남의 가치를 재발견한 것이다.더 놀라운 건 새로운 창업자들이다. 전 세계 어디서든 원격근무가 가능한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수많은 창업자들이 첫 번째 선택지로 실리콘밸리를 꼽는다. 실제로 2024년 상반기 기준, 전 세계 VC 투자의 약 40%가 여전히 실리콘밸리에 집중되고 있다. 런던·베를린·싱가포르·서울 등 각국 정부가 스타트업 허브를 만들기 위해 천문학적 예산을 쏟아붓고 있지만, 창업 생태계의 절대강자 지위는 여전히 흔들리지 않고 있다.도대체 왜일까. 단순히 투자금이 많아서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을까.자본보다 빠른 ‘투자 의사결정 속도’ 많은 사람들이 실리콘밸리의 강점을 '풍부한 자금'이라고 생각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핵심은 돈의 양이 아니라 '투자 의사결정 속도'에 있다.실리콘밸리에서는 와이콤비네이터(YC, 세계 최대 액셀러레이터)에서 시작해 안드리센 호로위츠(a16z, 유명 벤처캐피털), 그리고 성장 단계 VC로 이어지는 연계 구조가 완벽하게 구축되어 있다. 이 과정에서 핵심은 각 단계별 투자 결정이 빠르게 이뤄진다는 점이다.예를 들어, YC에서 3개월 프로그램을 마치면 데모데이에서 바로 다음 단계 투자자들을 만날 수 있다. 좋은 아이디어와 실행력을 보여주면 몇 주 안에 시드 라운드(초기 투자)가 성사된다. 심지어 '프리 시드' 단계에서도 24~48시간 안에 투자 결정이 나오는 경우가 흔하다. 이는 한국에서 6개월이나 1년씩 걸리는 투자 유치 과정과는 차원이 다른 속도다.빠른 피드백 → 빠른 투자 → 빠른 제품화. 이 선순환 구조가 실리콘밸리만의 경쟁력이다.실패 후 재도전이 가능한 유일한 도시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인상적인 문화 중 하나는 '실패에 대한 인식'이다. 여기서는 실패한 창업자가 오히려 더 매력적인 투자 대상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실패 경험을 통해 무엇을 배웠는지, 다음에는 어떻게 다르게 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한국에서는 아직도 창업 실패가 개인의 커리어에 치명적인 낙인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사업 망했다"는 말이 거의 사회적 매장을 의미하는 것과 달리, 실리콘밸리에서는 “한 번 실패한 창업자가 두 번째 창업에서 성공할 확률이 더 높다”는 데이터까지 공유되며 실패를 학습 과정으로 여긴다. 실제로 실리콘밸리의 많은 VC들은 "실패 경험이 없는 창업자보다 실패를 경험한 창업자에게 더 관심이 있다"고 공개적으로 말한다.이런 문화 덕분에 창업자들이 더 과감한 도전을 할 수 있고, 빠르게 피벗(사업 방향 전환)하거나 아예 새로운 아이디어로 갈아탈 수 있다. 평판(Reputation)이 아닌 실행력(Execution)으로 평가받는 문화가 바로 이것이다.실리콘밸리 창업팀의 구성을 보면 정말 다채롭다. 인도 출신 개발자와 중국 출신 디자이너 그리고 미국 출신 마케터가 한 팀을 이루는 것은 일상적인 풍경이다. 더 흥미로운 건 이들의 전문 분야 조합이다.예를 들어, 딥테크 박사 + 실리콘밸리 디자이너 + MBA 출신 비즈니스 전문가가 만나 완전히 새로운 관점의 제품을 만들어낸다. 이런 다양성은 한국의 상대적으로 동질적인 팀 구조와는 확연히 다르다.언어, 문화, 산업 배경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기존에 없던 아이디어와 솔루션을 만드는 것. 이것이 실리콘밸리에서 계속해서 혁신이 나오는 이유 중 하나다. 창업이 커리어의 정점인 사회 구조한국에서는 아직도 대기업 취업이 안정적인 선택지로 여겨지고, 창업은 '위험한 도박'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리콘밸리에서는 창업이 '가장 빠른 성장 경로'로 여겨진다.실제로 구글· 페이스북·애플 같은 대기업에서 일하던 직원들이 스타트업으로 이직하는 것이 일상적이다. 더 나아가 사이드 프로젝트로 시작한 아이디어가 창업으로 이어지고, 성공적으로 엑시트(투자금 회수)한 후에는 엔젤 투자자가 되어 다음 세대 창업자들을 돕는 선순환이 이뤄진다.이런 구조에서는 창업이 리스크가 아니라 커리어 발전의 자연스러운 과정이 된다. 설령 실패하더라도 그 경험 자체가 다음 기회로 이어지는 자산이 되는 것이다.실리콘밸리가 단순한 '창업하기 좋은 도시'를 넘어선 이유는 성공 이후의 구조까지 완벽하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오픈 이노베이션(외부 혁신을 내부로 도입하는 전략) → 스타트업과의 PoC(개념 증명 프로젝트) → 실제 매출 발생 → 전략적 투자 → 인수 또는 상장 → 창업자의 새로운 도전으로 이어진다. 이 완벽한 순환 구조가 ▲팔란티어(Palantir, 빅데이터 분석 기업) ▲피그마(Figma, 협업 디자인 툴) ▲인스타카트(Instacart, 생필품 배송 서비스) ▲ 노션(Notion, 협업 워크스페이스) 등의 수많은 성공 사례를 만들어냈다.이 구조에서 핵심은 기회 → 실적 → 투자 → 엑싯 → 재투자의 선순환이다. 각 단계가 서로 연결되어 있고, 한 단계에서의 성공이 다음 단계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반면 한국은 정부와 대기업의 오픈이노베이션 정책은 활발하지만, 실제 매출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고 엑싯 사례도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파트너십 체결 발표는 많지만, 실질적인 성과와 순환 구조는 아직 미성숙한 단계다.왜 여전히 실리콘밸리인가?실리콘밸리의 진짜 경쟁력은 ▲빠른 실험 환경 ▲다양한 인재 풀 ▲구조적 재도전 가능성 그리고 ▲완성된 오픈이노베이션 순환 구조에 있다. 단순히 창업하기 쉬운 곳이 아니라, 창업 이후의 모든 여정이 설계되어 있는 곳이다.물론 다른 도시들도 빠르게 따라잡고 있다. 런던의 핀테크는 유럽 금융 규제의 허브 역할을 하며 독특한 경쟁력을 보이고 있다. 베를린의 모빌리티 스타트업들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싱가포르는 동남아 진출의 관문 역할을, 서울은 게임과 엔터테인먼트, 그리고 최근에는 K-뷰티와 웹툰 분야에서 글로벌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텔아비브는 사이버보안과 군사기술 분야에서, 토론토는 AI 연구 분야에서 각각 특화된 생태계를 구축했다.하지만 종합적인 창업 생태계의 관점에서 보면, 아직도 실리콘밸리를 넘어서는 곳은 없다. 창업은 어디서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성공 확률이 높은 곳은 아직도 실리콘밸리다.

2025.09.15 11:23

4분 소요
창업 실패에 관심이 필요한 시기 [최화준의 스타트업 인사이트]

전문가 칼럼

경영에 어려움을 겪는 스타트업이 늘고 있다. 스타트업 데이타베이스 기업 더브이씨 조사에 의하면, 2022년부터 폐업하는 스타트업들이 매해 증가하고 있다.33.8%. 2022년 과학기술정책연구원에서 발간한 ‘한국의 혁신창업생태계 대시보드’가 신생 기업 5년 생존율로 제시한 수치이다. 스타트업 생태계는 이 수치를 무의미한 명목 생존율로 받아들인다. 전문가들은 운영을 중단했지만 폐업 신고를 안 한 스타트업과 오랫동안 자본 잠식 상황을 벗어나지 못한 스타트업들을 제외하면 실제 생존율은 33.8%보다 훨씬 낮을 것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스타트업에게 실패는 낯설지 않다. 스타트업은 급진적인 혁신 기술을 개발하고 작은 시장을 파고든다. 본질적으로 ‘고위험 고수익’을 추구한다. 소수 스타트업만이 성공이라는 열매를 맺고 대부분 창업자들은 실패로 끝난다. 이런 측면에서 실패는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가장 대중적인 주제일 것이다. 실패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이처럼 창업 실패는 흔한 주제이지만,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는 이를 비중 있게 다루지 않았다. 이는 성공과 같은 긍정적인 성과에 유난히 집착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창업 실패가 새삼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산발적이긴 하지만 지난 몇 년간 관련 영역에서는 창업 실패를 새롭게 해석하려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다.창업자들은 실패를 숨기려 하지 않는다. 필자는 창업자들이 스타트업을 운영하며 겪은 애로 사항을 듣고 이를 이야기로 옮기는 일을 지난 몇 년간 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창업 실패를 둘러싼 그들의 시선이 변하는 것을 부쩍 느낀다. 그들은 “보통 관계자들은 창업 성공 이전에 겪은 여러 번의 쓰라린 실패나 회사를 운영하며 저지른 실수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지만, 저는 후배 창업자들에게 실패와 재도전의 이야기를 꼭 전해주고 싶다”라며, “이는 스타트업 생태계 발전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창업 환경도 변화하고 있다. 몇 년 전 한 창업 재단이 창업자들을 초대해서 그들의 실패담을 공유하는 자리를 마련한 적이 있다. 초대된 창업자들은 실패의 시간을 반추하면서 실패를 피하는 그들만의 노하우와 조언을 들려주었다. 행사가 축제처럼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던 점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필자는 행사를 통해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가 실패의 가치를 공동체의 자산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느낌을 받았다.스타트업 생태계를 돕는 조력자들도 그들만의 방식으로 창업 실패를 해석하고 있다. 스타트업 투자 시장 혹한기가 절정에 달했던 작년 초. 법무법인 미션은 창업 여정을 마무리하는 과정을 조망한 세미나 ‘스타트업, 뜨거운 안녕’을 열었다. 세미나에는 창업자·투자자·정책 입안자 등 생태계의 다양한 관계자들이 함께했다. 세미나는 스타트업의 파산과 창업자의 개인 회생과 관련한 내용을 다루었다. 이는 기존 창업 행사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주제였다. 사실 실패는 창업에서 가장 흔한 결과이기에 해당 법률 정보는 창업자를 비롯한 모든 관계자에게 큰 도움이 되는 내용이었다. 창업 실패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이야기하는 세미나에 참석자들이 방문해 줄까 하는 우려와 달리, 세미나는 성황리에 끝났다. 적지 않은 참석자들은 세미나에 대한 만족감과 더불어 이런 자리가 왜 더 일찍 마련되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과거 기업의 성공 전략에 집중했던 학계 역시 실패의 가치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최근 창업 실패를 주제로 한 논문과 서적들이 하나둘 출간되고 있다. 2021년 개소한 KAIST 실패연구소는 실패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이 담긴 정기 간행물을 발간하고 대중에게 열린 행사를 개최하면서 전국적인 관심을 받았다. 창업 선도국, 창업자 실패 생태계 자산으로 내재화 중 창업 선도국들은 창업자들의 실패를 포용하고 그것을 생태계의 자산으로 내재화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09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처음 시작된 페일콘(FailCon)은 창업자와 관계자들이 모여 실패를 이야기하고 교훈을 공유하는 콘퍼런스이다. 실리콘 밸리에서 시작해 전 세계로 확장되었다. 글로벌 스타트업은 실패를 혁신의 과정으로 인식하고 있다. 글로벌 모바일 게임 개발사 슈퍼셀(Supercell)은 프로젝트에 실패한 팀에게 그동안의 노력과 기여를 인정하는 실패 축하 파티를 열어 준다. 국내 금융 스타트업 토스는 프로젝트의 실패를 일회성 이벤트로 치부하지 않고 과정을 낱낱이 기록해 사내에 공유한다. 이는 실패를 교훈으로 삼아 같은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고 혁신의 토대로 활용하기 위한 활동이다. 그동안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는 성공을 거둔 소수 창업자와 스타트업에게 지나치게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다. 여기에는 분명 여러 장점이 있다. 인상적인 창업 성공 스토리는 생태계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더불어 스티브 잡스나 일론 머스크와 같은 상징적인 창업자들은 수많은 후배 창업자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하지만 현실에서 대다수 창업자는 실패를 경험한다. 이것이 창업 실패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중요한 이유다. 같은 이유로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오랜 시간 활동한 연쇄 창업자들은 창업 실패에 인색한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의 자세에 변화를 바란다.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는 창업 실패를 매몰 비용이 아닌 유익한 교훈이 가득한 자산으로 바라보고 내재화하는 방법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2025.09.15 11:23

4분 소요
“구글, 반독점 소송서 최악은 피했다”...빅테크 둘러싼 국제 갈등은 여전 [한세희 테크&라이프]

산업 일반

구글이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 구글이 가진 온라인 검색 시장의 독점적 지위를 해소하기 위해 크롬 브라우저를 매각할 필요까진 없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온 것이다. 구글은 지난해 미국 법무부와 소송에서 온라인 검색 시장 독점 사업자라는 판결을 받았다. 이에 따라 구글의 독점 상황을 해결할 방법을 찾기 위한 논의가 진행됐다. 당초 법무부가 법원에 제시한 안은 구글이 만든 브라우저 크롬 매각을 비롯해, ▲안드로이드에서 구글 검색 우대 금지 ▲사용자 검색 데이터 외부 제공 ▲기본 검색 엔진 탑재 거래 금지 ▲검색 광고 노출 순위 투명성 제고 ▲유튜브, 제미나이 등 다른 구글 서비스 우대 금지 ▲다른 브라우저 출시나 투자 금지 등이었다. 이런 조치로도 독점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구글의 모바일 운용체계(OS) 안드로이드 매각도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 법무부 입장이었다. 크롬은 구글의 검색 시장 지배를 위한 가장 강력한 무기다. 주소창에 검색어를 입력하면 바로 구글 검색으로 이어진다. 브라우저를 통해 수집한 사용자 행태 정보는 구글 검색과 광고를 개선하는 밑바탕이 된다. 이 방대한 데이터는 다른 기업이 따라올 수 없는 깊은 해자를 구글에 만들어줬다.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조차 이런 격차 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 검색 서비스 ‘빙’이 구글만큼 좋아지기 어렵다”고 법정에서 증언할 정도였다. 크롬 매각 여부는 이번 판결의 최대 관전 포인트였다. 크롬을 매각해야 한다는 결정이 나면, 구글의 검색 생태계는 적잖은 타격을 입었을 터다. 오픈AI나 퍼플렉시티 같은 AI 기업들은 크롬 인수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9월초 미국 워싱턴DC. 법원에서 나온 판결은 구글의 우려를 상당 부분 덜어주는 내용이었다. 작년 말 구글에게 ‘독점 사업자’라는 판결을 내린 같은 판사가 후속 조치인 규제 해소 방안에 대해선 구글 입장을 들어주었다. 법원은 구글이 크롬을 매각할 필요가 없다고 결정했다. 또 애플이나 삼성전자 같은 주요 파트너 기업들과 검색 엔진 탑재 관련 금전적 계약도 맺을 수 있다고 결정했다. 독점 소송 당시 구글이 애플이나 삼성전자 등 모바일 브라우저에 기본 검색 엔진으로 선탑재되기 위해 거액을 지불한 것이 논란이 됐다. 재판 과정에서 구글이 애플 사파리 브라우저 주소창의 기본 검색 엔진 자리를 사는데 2022년 한 해에만 200억달러(약 27조 50000억원)를 지불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는 애플 영업이익의 17.5%, 구글 매출의 16%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독점 해소책의 일환으로 이 같은 거래는 금지될 것으로 전망됐으나, 판사는 이 역시 지속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독점적 기본 검색 엔진 채택을 전제로 한 거래는 하지 못한다. 한편으로, 법원은 구글이 검색과 관련된 데이터를 다른 기업과 공유하도록 했다. 이 같은 데이터는 그간 구글이 검색 시장에서 앞서갈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 법원은 정부가 제기한 급진적 방안들은 대부분 배제하고 비교적 안전한 선택을 한 셈이다. 기업 분할이 시장 경쟁을 회복하는데 필수적 조치임을 법무부가 입증하지 못했다고 법원은 보았다. 또 크롬이 매각되면 제품 품질과 소비자 후생이 상당히 떨어질 것으로 우려했다. 구글이 검색 엔진 탑재 관련 금전 거래를 하지 못하게 하는 것 역시 휴대폰이나 브라우저 기업들에게 손실을 입힐 수 있다고 우려했다. 파이어폭스 브라우저를 운영하는 모질라재단은 운영 비용의 상당 부분을 구글과의 계약으로 충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 광고 시장도 독점 사업자하지만 구글의 시련이 끝난 것은 아니다. 구글은 검색과 별개로 온라인 광고 시장 독점에 대한 소송도 진행 중이다. 구글은 온라인 광고를 게재하기 원하는 광고주와 광고를 싣고자 하는 매체를 자동으로 연결하는 온라인 광고 기술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우리가 언론사 웹페이지나 커뮤니티 등에서 보는 온라인 광고는 대부분 구글의 이 광고 거래소 기술에 의존한다. 이 사업은 지난 2분기 구글 매출의 10% 정도인 710억달러를 벌어들였다. 지난 4월 미국 연방 법원은 구글이 온라인 광고 시장 독점 사업자라고 판결했다. 정부는 독점을 해소하기 위해 구글이 광고 사업 일부를 매각해야 한다는 안을 들고 나왔다. 이어 9월 초엔 유럽연합(EU)이 “구글이 온라인 광고 기술 분야 지배력을 남용했다”며 29억5000만유로의 벌금을 물렸다. 약 4조8000억원의 엄청난 규모다. 이는 EU 역사상 두번째로 큰 반독점 관련 벌금이다. 온라인 광고 사업 일부를 매각해야 한다는 입장도 밝혔다.흥미로운 점은 미국이 즉각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러한 조치는 차별적이다. 불공정한 처벌을 무효화하기 위해 무역법 301조에 따른 조사를 시작하겠다”며 엄포를 놓았다. 301조는 미국의 무역을 제한하는 외국 정부의 부당하거나 불합리한 행동에 대응할 권한을 행정부에 부여하는 조항이다. 물고 물리는 디지털 국제관계학국내에서도 구글이 온라인 광고 시장 독점 사업자라 규정했지만, 외국에서 제재를 가하는 것은 좌시하지 않겠다는 움직임이다. 반면 EU는 미국과의 관세 협정을 앞둔 민감한 시기였음에도 구글에 거액의 벌금을 부과하며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강력한 규제 의지를 다시 한번 드러냈다. 디지털 플랫폼이 단순한 온라인 서비스를 넘어 사회 인프라와 안보 문제가 되어 가는 현실에서 똘똘한 IT 기업을 키우지 못한 유럽의 고민이 묻어난다. 디지털 플랫폼 시장을 두고 미국과 중국, 미국과 유럽, 유럽과 중국이 서로 물고 물리며 경쟁하고 견제하는 양상이다. AI의 발달은 그렇지 않아도 복잡한 구도를 더욱 혼란하게 한다. 구글이 크롬 매각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생성형 AI 발달에 힘입어 기존의 검색 시장이 흔들릴 것이란 예측이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숨가쁘게 변하는 기술과 물고 물리는 국제 사회의 상호 견제로 세상이 어지럽다. 남들이 넘보지 못한 차별화된 기술과 변화에 적응하는 유연한 자세, 이를 뒷받침할 정책 역량이 모두 필요한 시기다.

2025.09.14 14:03

4분 소요
K브랜드에 기회의 땅 ‘동남아시아’는 더 이상 없다 [동남아시아 투자 나침반]

전문가 칼럼

젊음은 언제나 시장의 변화를 이끈다. 동남아시아 인구의 절반 이상이 30세 이하라는 사실은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산업과 소비 구조를 재편하는 거대한 동력이다. 특히 Z세대(1990년대 후반~2010년대 초반 출생)는 태어나면서부터 모바일 환경에 익숙한 디지털 네이티브다. 이들은 제품 검색부터 구매와 결제까지 모든 과정을 온라인에서 해결하며, 브랜드 선택 기준에서도 단순한 가격 경쟁력을 넘어 정체성, 가치, 경험을 요구한다.동남아시아는 이러한 변화를 관찰하기에 가장 역동적인 무대다. 약 6억 7천만 명에 달하는 아세안(ASEAN) 인구 중 절반 이상이 30세 이하이며, 동남아시아의 대부분 국가는 젊은 노동력과 신흥 중산층 소비층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다. 이 거대한 Z세대 집단은 한국의 K-뷰티·K-콘텐츠·K-푸드 등 K-브랜드에 새로운 기회와 도전을 동시에 제시한다.Z세대 소비 패턴의 여러모로 다르다. 첫째, 디지털 중심성이다. 동남아 Z세대의 70%는 제품 탐색과 구매를 소셜 미디어에서 시작한다. 인도네시아와 태국에서는 Z세대의 90% 이상이 유튜브 정보를 기반으로 구매를 결정한다는 조사도 있다. 구글·틱톡·인스타그램은 사실상 쇼핑의 출발점이 되었고, 인플루언서의 추천 한마디가 소비 흐름을 바꾼다.둘째, 가성비와 감성의 공존이다. 단순히 저렴한 제품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브랜드라면 기꺼이 프리미엄을 지급한다. 태국과 베트남에서 K-뷰티 제품이 단순한 화장품을 넘어 자기표현의 도구로 소비되는 이유다. 특정 아이돌이 사용하는 립스틱, K-드라마 속 의상은 곧바로 Z세대의 위시리스트에 오른다.셋째, 가치소비의 확산이다. 기후변화와 사회적 불평등에 민감한 이 세대는 친환경, 공정거래, 비건·할랄 인증 등을 구매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 단순한 디자인이나 기능을 넘어 ‘이 브랜드가 내 가치관과 맞는가?’가 소비의 최종 판단을 좌우한다.K-브랜드, 프리미엄 이미지 갖춰야한국 브랜드는 이미 강력한 문화적 자산을 지니고 있다. BTS와 블랙핑크 같은 K-팝 아티스트는 동남아 전역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들이 사용하는 제품이나 협업하는 브랜드는 곧바로 소비자의 주목을 받는다. 실제로 베트남 화장품 시장에서 K-뷰티 점유율은 22%에 달하며, 인도네시아 15~25세 여성의 62%가 한국 화장품을 사용한다는 통계가 있다.또한 K-드라마와 예능이 넷플릭스·유튜브 등을 통해 확산되면서 한국 브랜드는 단순 소비재가 아니라 문화적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았다. 한국 화장품은 피부를 관리하는 도구를 넘어, 드라마 속 주인공의 삶을 경험하는 수단으로 소비된다. 이는 Z세대의 경험 중심 소비 흐름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동남아 로컬 브랜드는 K-브랜드를 빠르게 추격 중이다. 인도네시아의 ‘와르다’(Wardah)는 할랄·비건 인증과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태국의 로컬 스낵 브랜드들도 Z세대의 기호와 문화를 반영해 K-푸드와 정면 경쟁한다.중국 브랜드의 공세도 만만치 않다. 틱톡샵, 알리익스프레스 같은 플랫폼을 앞세워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Z세대 소비자를 빠르게 끌어들이고 있다. 특히 빠른 트렌드 복제전략으로 K-뷰티나 K-패션의 인기 제품을 즉각 모방하며 시장을 잠식한다.이런 환경에서 K-브랜드가 과거의 문화적 인기에만 기대서는 지속 성장이 어렵다. 새로운 차별화 전략이 필수적이다. K-브랜드가 선택해야 할 세 가지 전략첫째, 콘텐츠와 브랜드의 통합이다. K-콘텐츠는 여전히 동남아시아 시장에서 가장 강력한 문화적 자산이다. 브랜드가 이러한 콘텐츠와 결합할 경우, 제품은 단순한 소비재를 넘어 문화적 경험과 동일시되는 상징적 가치를 얻는다. 이는 가격 경쟁을 회피하고, Z세대의 정체성 소비와 직접 연결되는 핵심 전략이 될 수 있다.둘째, 가치소비에 부합하는 ESG 실천이 있어야 한다. Z세대의 소비 결정에는 환경적·사회적 요인이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친환경 포장재, 비건·할랄 인증 제품, 그리고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브랜드 캠페인은 브랜드가 공유할 수 있는 가치 체계를 제시한다. 이러한 ESG 기반 접근은 경쟁 제품과의 차별화뿐 아니라 장기적 신뢰 구축에도 기여한다.셋째, 옴니채널 경험의 제도화이다. 팝업스토어와 체험형 플래그십 매장은 단순한 판촉 공간이 아니라, Z세대가 스스로 브랜드를 증폭시키는 플랫폼이 된다. 이들은 SNS를 통해 경험을 공유하고, 이는 곧바로 브랜드 충성도로 환원된다. 따라서 옴니채널 전략은 단순한 판매 채널 다변화가 아니라, Z세대를 중심으로 한 브랜드 생태계 구축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동남아시아 Z세대는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다. 그들은 트렌드를 창조하고 확산시키는 참여형 소비자(prosumer)다. 이들을 사로잡는 것은 가격 경쟁이 아니라 정체성과 경험을 제공하는 브랜드다.K-브랜드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K-팝과 K-드라마의 문화적 자산에 ESG와 디지털 경험을 결합해, 단순 제품을 넘어선 경험의 플랫폼으로 진화해야 한다. 동남아 시장에서의 승부는 결국 누가 Z세대를 더 빠르게, 더 깊게 연결하느냐에 달려 있다.세계에서 가장 젊은 소비 시장인 동남아시아. 한국 기업이 문화적 매력과 지속가능한 가치를 결합한 전략으로 대응한다면, 이 시장은 앞으로도 K-브랜드의 기회의 땅으로 남을 것이다.

2025.09.14 10:01

4분 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