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빌리티 혁신 가로막는 규제들] ①
상용화 시작한 미국·중국
한국은 규제 정비 미비

문제는 한국이다. 한국은 여전히 ‘실험실’을 벗어나지 못했다. 국내에서는 자율주행 기술을 실제 도로에서 시험할 수는 있지만, 이를 활용한 영업은 여전히 금지돼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제도가 따라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율주행 시대, 갈 길 먼 규제들
국내 자율주행차는 ‘임시 운행’ 중이다. 국내 자율주행차에 대한 ‘임시 운행 허가제도’는 지난 2016년 2월 처음 도입됐다. 국토교통부와 한국교통안전공단은 자율주행 기술 개발과 일반도로 주행 실증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이를 신설했다. 시행 첫 해인 2016년에는 총 6개 기관에서 11대가 허가를 받는 데 그쳤지만, 이후 기술 개발과 수요 증가에 따라 허가 대수는 매년 증가했다.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임시운행 허가 제도가 도입된 이후, 지난 2023년 기준 국내 자율주행차는 약 460여 대 수준에서 운영되고 있다. 시험운행은 국토교통부의 허가 하에 이뤄지며,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안전요건 충족 여부를 확인한다. 그 결과에 따라 운행 허가증이 발급된다. 허가증을 받은 차량은 임시 번호판을 달고 일반 도로에서 주행할 수 있게 된다.
국내 자율주행차는 서울 상암과 경기도 판교 등 일부 지역에서 시범 운행이 가능하다. 운행 범위는 철저히 제한돼 있어, 정해진 구역과 시간 내에서만 운행할 수 있다. 최근 시범운행지구 내에서 제한적으로 유상 운송이 허용되고 있으나, 대규모 상업적 운행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완전한 상용화 시기는 여전히 예측하기 어렵다.
상용화의 최대 걸림돌은 제도와 규제다. 자율주행차를 실제 교통체계에 편입시키기 위한 법적 기반이 아직 미비하기 때문이다. 2020년 제정된 ‘자율주행자동차 상용화 촉진 및 지원에 관한 법률’(자촉법)은 자율주행차 상용화를 지원하는 첫 단추로 평가됐지만, 이후 후속 제도 정비는 더뎠다.
대표적으로 사고 시 책임 소재다. 자율주행차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 자율주행 시스템이 직접 운행을 담당하는 경우, 사고의 원인이 소프트웨어·센서 결함, 운전자 조작 미흡, 제조사의 과실 등 복합적으로 얽힐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으로 누구에게 법적 책임이 귀속되는지에 대한 기준은 부족한 실정이다.
지난 2020년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자배법) 개정으로 일정 부분 보상 체계는 마련됐다. 개정안에 따르면 자율주행차가 자율주행 모드로 운행 중 사고가 발생해도, 기존 차량과 마찬가지로 운행자(차량 소유자)가 1차적으로 손해배상 책임을 진다. 다만, 자율주행차 특유의 사고 책임 분산 문제와 제조물책임, AI 판단 오류 등 새로운 쟁점에 대한 세부 법적 해석과 기준은 여전히 공백으로 남았다.
교통법규도 마찬가지다. 도로교통법에서는 ‘운전자’를 ‘조향 장치와 제동장치 등을 직접 조작하여 주행하는 자’로 정의하고 있다. 이는 자율주행시스템이 운전자로 인정되지 않음을 뜻한다. 자율주행차의 완전 무인 운행(레벨4 이상)이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고, 시험·시범운행 시에도 반드시 사람이 동승해 운전자 역할을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데이터도 적다. 이는 주행 거리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국내 자율주행 누적 운행 거리 1위 업체의 오토노머스에이투지의 운행 거리는 약 50만km다. 이에 반해 중국 바이두의 누적 운행 거리는 약 1억10000만km다. 국내 1위 기업의 운행 거리가 중국 바이두의 220분의 1수준이다.

아직 희망은 있다. 국제 회계법인 KPMG가 발표한 ‘자율주행차 도입 준비 지수’(AVRI)에 따르면 한국은 자율주행차 관련 기술력과 혁신 항목에서 전체 30개국 중 7위를 차지했다. 인프라 부문에서는 세계 2위를 기록한 반면, 정책·법제 부문에서는 전체 30개국 중 16위에 그쳤다. 법과 규제만 충분히 다듬을 경우,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는 얘기다.
한국은 4G 커버리지, 모바일 연결 속도, 광대역 통신망 품질, 도로 포장 상태 등 자율주행차 주행을 뒷받침하는 통신·물리적 인프라에서 2위를 차지했다. 인프라 만큼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의미다. 특히, 모바일 연결 속도와 광대역 네트워크 품질은 각각 0.959점, 0.917점(1.0점 만점)으로 거의 최고점에 가까운 평가를 받았다. 도로 품질 역시 0.838점으로 미국(0.714점), 독일(0.666점)보다 높다. 다만 전기차 충전 인프라에서는 상대적으로 낮은 점수를 받았지만, 이를 제외한 대부분 지표에서 상위권을 유지했다.
한국은 기술 및 혁신(Technology & Innovation) 부문에서도 7위에 올랐다. 자율주행 관련 특허 출원 수, 사이버보안 역량, 클라우드·AI·IoT 인프라 분야에서 강점을 보였다.
특히, ▲자율주행 관련 특허 점수는 0.856점 ▲사이버보안은 0.874점 ▲산업 간 파트너십은 1.000점 만점으로 평가됐다. 사이버보안은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 3위 수준이며, 자율주행 기술 개발을 위한 연구·개발 체계도 견고하게 자리 잡았다는 평가다.
소비자 수용성 부문에서 한국은 10위를 기록했다. 이는 자율주행차를 수용할 수 있는 사회·문화적 기반이 어느 정도 갖춰져 있다는 뜻이다. 보고서는 한국이 ▲ICT 채택률(1.000점) ▲디지털 기술 숙련도(0.694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밝혔다. 다만, 자율주행 테스트 지역 인근 거주 인구 비율(0.216점)과 라이드헤일링 서비스 보급률(0.483점)은 다소 낮은 편이었다.
이를 두고 자율주행 업계 관계자는 규제가 기술 발전의 걸림돌이 되는 측면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업계 스스로도 성찰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자율주행 기술이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모든 문제를 ‘규제 탓’으로 돌리는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중국과 한국의 누적 데이터 격차에 대해 “중국이나 미국은 땅이 넓다 보니 차량을 돌릴 수 있는 환경이 훨씬 많고, 자본시장도 크니까 대규모 차량을 한 번에 운영할 여력이 된다”며 “그래서 자연스럽게 누적 운행 거리에서도 큰 차이가 벌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규제와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는 “자율주행의 경우 사고가 났을 때 소프트웨어 문제인지, 하드웨어 결함인지 불분명한 경우가 많다”며 “이럴 경우 누가 법적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판단하기 어려워지고, 복잡한 분쟁 가능성도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자율주행차를 직접 만들어서 판매하려는, 즉 차량 제조·판매까지 하려는 회사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 규제 허들이 존재한다”며 “다만, 자율주행 발전 속도에 대해선 업계가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모든 문제를 규제 탓으로 돌리기엔 어려움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브랜드 미디어
브랜드 미디어
[단독]'효능 인정'이라더니…신풍제약 '피라맥스' 유럽 특허, 임상 데이터가 없다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일간스포츠
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
주학년 "AV 배우와 성매매 증거 공개하라"
대한민국 스포츠·연예의 살아있는 역사 일간스포츠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3000P 돌파' 파죽지세 코스피…증권가 "3100선까지 갈 것"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이데일리
이데일리
이데일리
벤처투자·창업·IPO ‘트리플 위축’…“정책 물꼬로 활력 되찾아야"
성공 투자의 동반자마켓인
마켓인
마켓인
최종석 라메디텍 대표 "하나뿐인 레이저 미용기기, 러브콜 쏟아져"
바이오 성공 투자, 1%를 위한 길라잡이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