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일반
퇴직연금 ‘기금화’ 추진…가입자에게 뭐가 달라지나
- [퇴직연금, 이제 굴려야 할 시간]②
수익률 개선 기대…운용 효율성 한계 보완
투자 부담 줄지만, 통제권·책임 논란 확대
퇴직연금 ‘기금형’ 도입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가입자 체감 변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개인이 상품을 직접 선택해 운용하던 기존 구조에 더해, 자산을 하나로 모아 증권사·자산운용사 등 전문기관이 대신 운용하는 방식이 도입될 경우 연금 운용 방식 자체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입자 입장에서 퇴직연금 기금화는 투자 판단 부담을 낮추고 장기적인 수익률 개선을 기대할 수 있다. 다만 자산이 시장에 투자되는 구조인 만큼 손실 가능성 역시 그대로 수반된다는 점에서 가입자 입장에서는 득실이 엇갈린다. 특히 기금형은 개별 투자 판단 대신 자산배분과 리스크 관리가 자동화되는 구조인 만큼 단기 변동성에 대한 대응 부담은 줄어들 수 있지만, 운용 성과가 기대에 못 미칠 경우 이를 직접 통제하거나 조정하기 어렵다는 한계도 존재한다.
기금형, ‘수익률 끌어올리기’ 가능할까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5년 말 기준 퇴직연금 적립금은 확정급여형(DB)·확정기여형(DC)·개인형퇴직연금(IRP)을 합산해 496조원을 넘어섰다. 외형상으로는 사실상 500조원에 근접한 초대형 노후자산 시장이 형성된 셈이다.
그러나 성과 측면에서는 한계가 뚜렷하다. 최근 5년 평균 수익률을 보면 DB형 원리금보장 상품은 연 2~3% 수준에 머물렀고, DC형 실적배당 상품 역시 3~7% 범위에 그쳤다. 자산 규모는 빠르게 불어났지만, 운용 효율성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이에 정부는 퇴직연금 기금형 제도 도입을 준비 중이다. 기금형은 개별 기업과 금융사 간 계약이 아닌, 복수의 기업 적립금을 모아 전문기관이 펀드형태로 이를 운용할 수 있게 된다. 만약 이같은 제도가 현실화된다면 직장인 입장에서는 선택지가 넓어지면서 수익률도 높일 수 있을 전망이다.
다만 퇴직연금 기금형은 본질적으로 국민연금이나 사학연금, 군인연금 등 공적연금과 성격에서 차이가 있다. 공적연금은 강제성을 띄면서 책임 주체가 국가이지만 퇴직연금 기금형은 가입자 선택을 전제로 한 적립식 구조가 유지되는 만큼, 운용 방식은 집합화되지만 책임과 수익은 여전히 개인에게 귀속되는 ‘투자형 기금’ 성격을 띈다.
연금의 특성상 ‘고수익’보다 ‘지속 가능한 수익률’이 중요하다는 점도 기금형 도입 필요성을 뒷받침하는 요소로 꼽힌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퇴직연금은 단기 성과보다 장기적인 자산 증식이 핵심인데, 현재 구조에서는 일부 계좌를 제외하면 수익률이 지나치게 낮게 형성되는 문제가 있다”며 “기금형은 전체 가입자의 수익률 하방을 끌어올릴 수 있고 분산투자와 리스크 관리가 체계적으로 이뤄질 경우, 개별 운용보다 안정적인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제도 방향성 자체는 점차 좁혀지는 분위기다. 시장 충격을 최소화하면서도 수익률 개선이라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정부는 ‘강제 편입’이 아닌 가입자 선택형 구조를 유력한 시나리오로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개인이 기존 금융사 운용을 유지할지, 기금형으로 이동할지를 직접 결정하도록 하되, 필요할 경우 디폴트옵션(자동 편입)을 병행하는 방식이 거론된다. 이는 퇴직연금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돼온 ‘방치 운용’을 개선하면서도 시장 반발을 줄이기 위한 절충안으로 해석된다.
업계에서는 제도 도입 초기에는 가입자 이동이 제한적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선택형으로 기금형이 도입된다고 하면 가입자들이 당장 무조건 갈아탈 이유는 없다”며 “상황을 지켜보며 기존 상품과 기금형 간 수익률을 비교한 뒤 결정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산권·손실 리스크 쟁점…시장 내 시각 엇갈려
퇴직연금 ‘기금형’ 도입 논의는 속도를 내고 있지만, 구체적인 제도 윤곽은 여전히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손실 발생 시 책임 구조 및 수익률 제고와 안정성 사이의 균형 등 핵심 쟁점에서 이해관계자 간 이견이 크기 때문이다. 여기에 기존 금융회사들이 운용 중인 약 500조원 규모 시장과의 충돌 가능성도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성과 책임 문제도 쟁점이다. 기금형도 결국 시장에 투자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손실 가능성을 피할 수 없다. 다만 개인이 직접 투자하는 경우와 달리, 기금형에서는 누가 어떤 판단을 했는지 구조가 복잡해지면서 손실이 발생했을 때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따지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실제 국회 국민청원에서도 반대 의견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특히 기금형처럼 자산을 통합 운용하는 구조에서는 금융위기와 같은 대외 충격이 발생할 경우 전체 수익률이 동시에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 주요 리스크로 지목된다. 개별 계좌가 아닌 하나의 기금으로 운용되기 때문에, 시장 하락 국면에서는 손실이 집단적으로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청원인은 “퇴직연금 적립금을 공단 형태로 통합 운용하는 것은 재산권과 선택권 침해 소지가 있다”며 “운용이 집중될수록 정책 개입이나 판단 오류가 발생했을 때 피해가 광범위하게 확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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