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물가와 싸움 더 격해질 수도” 퇴임 앞둔 신성환 금통위원의 경고
- “지금은 금리인하 논하기 부담” 유가·인플레 우려
“가난하게 살다 부자로 죽어” 저축 구조 지적도
신성환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금통위원)은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별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신성환 위원은 오는 12일 임기를 마치고 한국은행을 떠난다. 신 위원은 대표적인 비둘기파(통화 완화 선호) 위원으로 꼽혀왔다. 4년의 임기 동안 일곱 차례 금리인하 소수의견을 냈다. 그런 신 위원조차 최근의 인플레이션 상황에 대해선 강한 경계감을 드러낸 셈이다. 실제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월 2.0% ▲2월 2.0% ▲3월 2.2% ▲4월 2.6%로 오름세를 이어가고 있다.
신 위원은 이날 “과거 금리인하 소수의견을 낸 것도 제 나름대로 인플레이션 우려가 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하지만 인플레이션이 한국은행의 목표인 2%에서 벗어나 위로 멀어질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면, 인플레이션과 성장이 상충하더라도, 당연히 물가안정에 무게를 두는게 적절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중동전쟁 이후 고공행진 중인 유가에 대해 우려했다. 반도체 호황에 따른 물가 상승 압력 보다, 최근 배럴 당 100달러 안팎을 넘나드는 유가가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더 크다는 입장을 내놨다.
신 위원은 “당초 올해 말에는 유가가 70달러 정도로 하향 안정화될 것으로 봤는데, 지금 상황을 보면 90달러 정도가 될 것 같다”면서 ”연말까지 유가가 고공행진 하면 물가에 미치는 2차 충격을 피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이어 ”그렇게 되면 물가와의 싸움이 훨씬 더 격해질 수가 있다“고 설명했다.
외환시장에 대한 우려도 내놨다. 최근 중동 리스크와 달러 강세 속에서 원화 가치가 과도하게 저평가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 금융시장을 자동차에 비유하며 정책 대응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신 위원은 ”대한민국 금융시장은 괜찮은 자동차에서 고성능 자동차로 업그레이드 하고 있다“면서 ”이럴 때는 에어백·브레이크도 기존보다 성능이 좋아져야 하는데, 정책 당국이 그 부분에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최근 금리 역전 상황 때문에 원화가 평가 절하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지나치게 약세 아니냐’는 의견에는 동의한다“면서 ”향후 전쟁 상황 전개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단언하기 어렵지만, 환율이 지금보다는 하향 안정화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 위원은 한국의 높은 저축률에 대해서도 경고했다. 고령화와 부동산 중심 자산 축적 문화가 맞물리면서 소비가 위축되고, 이는 결국 한국 경제의 성장 기반인 내수까지 약화시키고 있다는 문제의식이다.
그는 “우리나라 가계순저축률이 굉장히 높은 수준”이라며 “구조적으로는 오래 살게 되면서 미래 대비를 위해 저축을 더 많이 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경제 성장률이 높은 상황이 이어져도 민간소비 증가율은 기대만큼 올라오지 못하고 있다”며 “경제가 안정적으로 돌아가기 위해선 민간에서 충분한 소비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한국의 자산 축적 방식이 소비 여력을 지나치게 훼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 위원은 “집을 사느라 허덕이며 살아가는데, 사실 집을 사는 것도 일종의 저축”이라며 “연금도 계속 저축하고 결국 생활은 빠듯하게 이어가다가 노후에는 부동산과 자산만 남긴 채 생을 마감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은행에서 과거 발표 자료에 사용했던 표현처럼 ‘가난하게 살다가 부자로 죽는 시스템’이 형성돼 있다”며 “이 같은 저축 시스템을 보다 효율적으로 바꿔 국민들이 생애 전반에 걸쳐 더 잘 소비하고, 안정적으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퇴임을 하루 앞둔 그는 금리 결정 과정에 대한 소회도 밝혔다. 신 위원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지난해 8월 금통위에서 금리 인하를 할 수 있었을 때 조금 더 강하게 한 번 내렸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금통위는 개개인의 의사결정보다는 위원회 체제로 운영되는 조직”이라며 “최종적으로 결정된 사항에 대해서는 100% 존중한다”고 덧붙였다.
신 위원은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독립성에 대해서는 높은 평가를 내렸다. 그는 “해외 현장들을 다녀보면 중앙은행, 특히 금리를 결정하는 조직의 독립성이 우리나라만큼 잘 보장된 곳은 흔치 않다”고 말했다.
이어 “많은 나라에서는 금리 결정 기구가 형식적으로만 위원회 구조를 갖추고 있는 경우가 많고, 실제 의사결정의 무게 중심은 총재나 집행부에 과도하게 쏠려 있다”며 “금통위원들은 정책 결정 과정에서 사용하는 시간이나 구조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역할이 제한적인 경우가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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