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서울 유명 병원들도 거절했다…‘1경 시장’에 장흥이 뛰어든 이유 [길에서 만난 사람들]
- 풀뿌리 잡고 8년 버틴 배권세
서울 병원 거절’에 맞선 설승환
장흥의 ‘미친 진심’이 만든 변화
서울 광화문을 출발해 정남(正南)으로 한참을 내달려야 닿는 전남 장흥. 춘분(春分)의 훈풍이 내려앉은 장흥읍 ‘장흥힐링테라피센터’의 문을 열면, 코끝을 찌르는 진한 생약초 향기가 방문객을 압도한다. 단순히 향기롭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도심의 경쟁 속을 버텨온 이들이 이곳의 공기와 마주하는 순간, 뇌와 몸의 긴장은 일순간 무장 해제된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십수 년 지기 고향 친구인 배권세 장흥군신활력플러스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과 설승환 원광대 장흥통합의료병원 사무국장이 있다. 두 사람은 각자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장흥의 생약초와 의료 인프라를 결합해, 시골 마을의 자원을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장흥은 예부터 생약초 특구였으나, 그동안은 단순히 원물을 수확해 판매하는 1차 산업의 한계에 갇혀 있었다. 배권세 이사장은 이를 서비스와 결합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전환하는 데 사업의 성패를 걸었다.
“원물(原物) 판매라는 1차 산업의 굴레에선 미래가 없었제. 매년 7.6%씩 쑥쑥 크는 글로벌 웰니스 시장의 핵심은 ‘서사’라니깐. 도시 사람들이 바라는 거는 약초 자체가 아니여. 그 약초가 내 몸에 닿아갖고 일으키는 ‘회복의 드라마’지.”
배 이사장은 시스템 구축에만 7년 6개월을 쏟았다. 당시의 막막함을 그는 투박한 말투로 회상한다. “처음엔 다들 미쳤다고 했소. 돈도 안 되는 풀뿌리 잡고 뭐 하냐고. 근데 우리 약초가 향기로 터져 나와 사람을 살리는 꼴을 꼭 보고 싶었응께 그랬제.”
그는 외부 전문가 대신 지역 주민 35명을 직접 선발해 8년간 정예 테라피스트로 양성했다. 장흥 자생 약초로 만든 13종의 화장품 브랜드 ‘이로우미(Iroumi)’는 그와 주민들이 함께 빚은 인고의 산물이다. 센터 3층 테라피실에서 5만 원대부터 시작하는 아로마 패키지를 경험해 보면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장흥의 흙이 키운 약초 오일이 숙련된 테라피스트의 손길을 타고 전신에 퍼지는 순간, 8년의 세월이 응축된 향기가 몸 안의 독소를 밀어내는 듯한 감각이 전해진다.
영하 110도에서 만나는 ‘완벽한 리셋’
테라피센터에서 향기로 몸을 달랬다면, 차로 20여분 거리에 있는 장흥통합의료병원 2층 ‘전라남도 마음건강치유센터’는 그 치유에 의학적 신뢰를 부여한다. 이곳은 2025년 우수웰니스관광지로 선정되며 한국형 메디웰니스(Medi-Wellness)의 표준을 제시했다.
설승환 사무국장은 양방·한방·대체의학을 결합한 ‘통합의학’을 웰니스 상품으로 정교하게 설계했다. “수도권 병원들은 수익이 안 나네, 너무 머네 해싸면서 손사래를 쳤제. 그란디 우리 장흥은 요 천혜의 자연 자본을 의학적 처방으로 딱 엮어볼 용기를 낸 거여.”
설 국장은 설립 당시의 절박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서울에 유명하다는 대학병원은 다 찾아다녔제. 근데 다들 ‘너무 멀어서 수익 안 난다’고 손사래를 칩디다. 가슴이 타들어 갔는디, 그때 친구 배 이사장이랑 소주 한잔하면서 ‘우리 자존심 한번 세워보자’고 결심했소.”
이곳의 강점은 ‘과학적 데이터’다. 맥파 검사와 스트레스 지수 측정 등 정밀 진단을 통해 내 몸의 피로도를 시각화된 그래프로 직면하게 한다. 특히 영하 110도의 극저온 전신 자극 장비인 ‘크라이오테라피 챔버’는 짧은 시간에 ‘완벽한 리셋’을 원하는 비즈니스맨들에게 독보적인 인기다. 3분간의 극한 체험 후 혈관이 팽창하며 몸속에 엔도르핀이 도는 그 짜릿한 감각은, 도심의 어떤 스파도 흉내 낼 수 없는 강력한 회복력을 제공한다. 주말과 공휴일을 제외하고 예약제로 운영되는 이곳은 하루 단 3팀에게만 문을 열어 최상의 몰입도를 보장한다.
장흥의 웰니스 비즈니스는 식탁 위에서도 완성된다. 장흥의 대표 특산물인 ‘무산(無酸)김’은 효율성 대신 정직함을 택해 성공한 사례다. 염산을 쓰지 않고 김발을 매일 뒤집어 공기 중에 노출하는 전통 방식은 생산 과정은 까다롭지만 프리미엄 시장에서 독보적인 신뢰를 얻고 있다.
여기에 지역 쌀을 활용한 ‘쌀빵’은 농업 자산을 현대적 푸드테크(Food-tech)로 확장해 소화가 편안한 기능성 식품 시장을 공략한다. 배 이사장은 “정직한 식재료가 바로 우리 지역 산업 경쟁력이여. 장흥 갯벌이랑 산이 정성껏 키운 식재료를 테라피랑 딱 묶어갖고 패키지로 내논께 지역 경제 전반에 활기가 도는 거제.”라고 설명했다. 힐링테라피센터 1층 갤러리와 북카페에서는 누구나 장흥의 쌀과 김으로 만든 웰니스 푸드를 가볍게 체험할 수 있어, 관광객들의 소비를 지역 경제로 직접 연결하고 있다.
정부가 전국 7개 권역을 웰니스 클러스터로 육성하며 16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는 등 정책적 지원을 확대하는 가운데, 장흥은 이미 미식과 의료, 테라피가 결합한 독자적인 산업 생태계를 구축했다.
장흥의 성공은 시골 마을이 가진 보편적인 자원을 어떻게 전문적인 서비스 산업으로 승화시키느냐에 달려 있었다. 길 위에서 만난 두 친구는 자연에 순응하며 저마다의 치유 서사를 써 내려가고 있었다. “사람이 곧 자연입디다. 편백숲 우드랜드 펜션에서 하룻밤 묵고, 다도해가 한눈에 들어오는 장흥126타워에 올라가 보시오. 자연으로 돌아와 깊은숨을 한번 크게 쉬어 보는 거, 그것이 장흥이 제안하는 진짜 여행이자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복원’이라니깐요.” 고향의 자원을 산업화하겠다는 두 주역의 안목과 실행력은 지역 소멸을 고민하는 대한민국 지자체들에 새로운 성공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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