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항공권 예약 넘어 여행 설계 도맡아
기내 와이파이부터 AI 여행 추천까지
싱가포르항공은 더 이상 ‘비행’에만 머물지 않는다. 예약 단계부터 도착 이후까지, 디지털 기술이 여정 전반을 하나의 흐름으로 엮고 있다. 글로벌 항공업계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싱가포르항공은 디지털 혁신을 차별화의 핵심 축으로 삼고 있다.
끊김 없는 디지털 여정
싱가포르항공은 이동의 전 과정에서 고객 개개인에 최적화된 초개인화 경험을 구현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회사가 내세우는 핵심 키워드는 ‘끊김 없는 디지털 여정’(Seamless Digital Journey)이다.
디지털 전환의 출발점은 2019년 문을 연 디지털 혁신 연구소 ‘크리스랩’(KrisLab)이다. 항공업계에서는 보기 드문 자체 기술 연구 조직이다. 크리스랩은 단순한 연구개발 부서를 넘어선다. 아이디어를 실제 서비스로 연결하는 혁신 거점이자, 디지털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전략적 기반 역할을 맡고 있다.
크리스랩에서는 증강현실(AR)을 활용한 기내 디자인 시뮬레이션, 딥러닝 기반 수하물 파손 감지 알고리즘 등 실제 운영 현장에 적용 가능한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혁신의 범위도 내부에만 머물지 않는다. 싱가포르항공은 싱가포르 과학기술청(A*STAR), 싱가포르 민간항공청(CAAS), 경제개발청(EDB), 국립싱가포르대학교(NUS) 등 주요 연구기관 및 산업 파트너와 협업 체계를 구축했다.
이를 통해 싱가포르를 아시아·태평양 지역 항공 디지털 허브로 키우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임직원들이 직접 혁신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역량을 축적하는 조직 문화 역시 크리스랩을 통해 자리 잡아가고 있다.
이 같은 성과는 외부 평가로도 이어졌다. 싱가포르항공은 2024년과 2025년 2년 연속으로 항공·여행 테크 분야의 권위 있는 지표인 ‘FTE Digital Transformation Power List’에서 아시아·태평양 최고 혁신 항공사로 선정됐다. AI와 로보틱스,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실제 업무에 접목한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는 설명이다.
싱가포르항공의 디지털 혁신이 한 단계 도약한 계기는 2025년 4월 발표된 오픈AI(OpenAI)와의 전략적 파트너십이다. 글로벌 항공사 가운데 오픈AI와 협력한 첫 사례로 주목받은 이번 협업은 고객 경험과 내부 운영을 동시에 혁신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싱가포르항공 앱에 탑재된 가상 비서(Virtual Assistant)는 오픈AI 기술을 바탕으로 한층 고도화됐다. 단순 문의 응답 기능을 넘어, 자연스러운 대화형 여행 설계 서비스로 진화한 것이다. 여행지 선호도와 항공기 기종, 좌석 등급, 경유 도시, 마일리지 조건 등 복합적인 요소를 한 번에 반영해 맞춤형 항공편을 추천할 수 있다. 이용자가 여러 화면을 오가며 조건을 따로 입력할 필요 없이, 원하는 여정을 말하듯 입력하면 AI가 최적의 선택지를 제안하는 구조다.
내부 운영 효율화도 속도를 내고 있다. 승무원 스케줄링처럼 수십 가지 변수를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복잡한 업무에 AI 분석 시스템이 도입되고 있다. 반복 업무는 자동화하고, 과거 운영 데이터를 바탕으로 인사이트를 제공함으로써 직원들이 보다 핵심적인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싱가포르항공의 혁신은 내부 조직에만 머물지 않는다. 전 세계 소비자들의 의견을 반영해 항공 여행 경험을 개선할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싱가포르항공 앱 챌린지’(Singapore Airlines App Challenge)를 2015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참가자들에게는 ▲끊김 없는 고객 경험 ▲인력 및 운영 ▲여행 그 이상 등 미래 전략과 맞닿아 있는 과제가 주어진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마스터카드, AWS 등 글로벌 기업들이 스폰서로 참여하는 이 챌린지는 참가 자격에 큰 제한이 없어 전 세계 스타트업들에게 사업 확장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수상자에게는 크리스플라이어 마일 등 실질적인 보상이 제공되며, 싱가포르항공 그룹과의 협업 기회도 함께 주어진다.
디지털 혁신은 하늘 위에서도 이어진다. 싱가포르항공은 업계 최초로 전 좌석, 전 클래스 무료 무제한 기내 와이파이를 도입했다. 퍼스트·비즈니스 클래스는 물론 크리스플라이어 회원이라면 프리미엄 이코노미와 이코노미 클래스 승객도 모든 국제선에서 제한 없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기내에서도 업무를 이어가고, 가족이나 지인과 연결되며, 다양한 콘텐츠를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환경을 갖춘 셈이다. ‘하늘 위에서도 일상이 이어진다’는 감각이 이 서비스로 구현된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내 엔터테인먼트 시스템 ‘크리스월드’(KrisWorld) 역시 꾸준히 진화하고 있다. 1900편이 넘는 영화와 TV 프로그램, 음악 콘텐츠를 제공하는 크리스월드는 ‘크리스월드 디지털’(KrisWorld Digital) 플랫폼을 통해 탑승 전 웹사이트나 개인 디바이스에서 콘텐츠를 미리 탐색할 수 있도록 했다.
탑승 이후에는 기내 와이파이를 통해 동일한 경험을 이어갈 수 있다. 읽을거리 서비스도 강화됐다. 글로벌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 프레스리더(PressReader)와의 협업을 통해 뉴욕타임스, 파이낸셜타임스, 이코노미스트,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를 포함한 전 세계 1400여 종의 신문과 잡지를 전자도서관 형태로 제공하고 있다.
기내식 메뉴 역시 크리스월드 디지털 메뉴를 통해 확인할 수 있어, 좌석 앞 스크린 하나로 식사와 엔터테인먼트, 뉴스 소비까지 아우르는 개인 맞춤형 공간이 완성된다.
싱가포르항공의 디지털 전략이 다른 항공사와 구별되는 지점은 기술 그 자체보다, 기술을 경험으로 전환하는 방식에 있다. AI 기반 여행 추천은 단순한 항공편 검색 기능을 넘어 승객의 취향과 일정, 마일리지 조건까지 반영하는 여정 설계 파트너로 확장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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