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모두가 도비의 자유를 꿈꾸는 시대의 ‘일’ [임홍택의 일로서기]
- 투자의 시대, 흔들리는 직업관
삶의 의미는 어디에서 오는가
사실 청년 세대의 이러한 인식에는 눈뜨고 마주하기 힘든 냉혹한 현실도 자리하고 있다.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026년 5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청년층(15~29세) 취업자는 1년 전보다 약 25만명 줄었다. 청년 고용률 역시 25개월 연속 내림세를 이어갔다.
그들의 언어를 빌어 말하자면, 지금의 취업시장은 반갈 죽(‘반으로 갈라져서 죽어’의 줄임말) 되어 있다. 그런 와중에 ‘운이 좋게’ 주식 시장에 먼저 들어간 또래 친구들이 빠르게 돈을 벌어가는 현실 속에서, 이들의 시선은 과연 어디로 먼저 향하겠는가.
물론 이런 인식이 청년 세대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우리 기성세대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요즘 회사 화장실은 오전 9시만 되면 으레 가득 찬다. 볼일을 보러 온 것이 아니라, 주식 거래창을 확인하러 온 직원들로 붐비기 때문이다. 이렇게 많은 이는 목표 수익률을 달성하는 즉시 사표를 던지고 영화 속 노예 요정의 대사인 "도비는 자유예요!"를 외치며 조기 은퇴(파이어족)하겠다는 꿈을 품고 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을 기반으로, 과연 다음 세대에게 "노동은 무의미하니 일을 포기하고 전업 투자자가 되라"고 조언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자본주의 체제 아래에서 일은 오직 '돈을 버는 행위'로 의미가 축소되어 고착화됐다. 투입한 시간과 노력에 비해 높은 보상을 주는 소위 '좋은 직장'의 문은 너무나 좁고, 대다수는 원하는 일을 하지 못한다. 운 좋게 원하는 일자리를 얻는다고 해도 이내 실망감에 휩싸이곤 한다.
조직 생활 속 노동은 대개 ▲지루하고 ▲개인의 자유를 제약하며 ▲타인과의 갈등을 필연적으로 동반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좋은 일'을 향해 평생을 달음질하지만, 막상 그 일에 치이고 실망하며 좌절하는 모순이 반복된다.
이러한 노동의 딜레마는 비단 지금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의 논픽션 작가 스터즈 터클이 1974년에 출간한 명작 ‘일’(Working)의 부제는 ‘누구나 하고 싶어 하지만 모두들 하기 싫어하고, 아무나 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한 줄의 문장이야말로 우리가 일에 대해 느끼는 애증을 완벽하게 관통한다.
터클은 45년간 보통의 미국 노동자들을 인터뷰하며, 일이 생계를 위한 고된 의무이면서도 동시에 자기 존중과 성취감을 얻는 모순된 장임을 기록했다. 저자는 일을 단순히 밥벌이 수단으로 격하시키지 않고, 인간이 일을 통해 어떻게 존엄성과 의미를 길어 올리는지 깊이 있게 고찰했다.
이 책에서 영감받은 대학생 버락 오바마는 훗날 미국의 대통령으로서 자기 일을 수행했다. 그리고 퇴임 후, 마침내 이 책을 모티브로 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일: 우리가 온종일 하는 바로 그것’을 직접 기획하고 내레이션을 맡았다.
이 다큐멘터리는 좋은 일자리가 단순히 급여의 액수로만 정의되지 않고 ▲보수 ▲고용 안정성 ▲조직 내 존중감 ▲자율성 등이 복합적으로 고려될 때 완성된다고 말한다. 직급과 직종을 아우르는 구성을 통해, 일을 단편적인 경제 활동이 아닌 ‘삶 자체를 구성하는 핵심 축’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인간에게 일이 밥벌이의 수단인 점은 부인할 수 없는 대전제다. 그러나 제대로 해낸 일에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존엄'이 있다. 나아가 일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규정하는 정체성의 핵심이며, 공동체와 사회를 유지하는 구조적 연결점이다.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로서 거대한 사업을 이끌어가든, 가사 노동을 묵묵히 수행하든, 각자의 일은 사회 전체를 톱니바퀴처럼 작동시키는 귀중한 동력이 된다.
결론적으로 일을 한다는 것은 단순한 경제적 이윤 추구를 넘어, 삶의 궤적을 그리며 타인과 사회에 연결되는 숭고한 방식이다. 나는 자신이 가진 역량을 세상과 연결하고, 그 힘을 바탕으로 사회 속에서 당당히 한 사람의 몫을 해내는 과정을 ‘일로서기’ 라고 부르고자 한다.
일로서기는 자기 힘으로 삶을 개척해 나가는 자립의 과정이자, 세상에 나라는 존재의 발자국을 남기는 유일한 방식이다. 각자 자신을 정의할 수 있는 일을 통해 하나의 독립된 주체로 우뚝 서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 일생에서 가장 가치 있는 성취다.
물론 주식이나 가상 자산에 투자해 평생 일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일확천금을 벌 수도 있다. 그러나 대박 신화의 이면에는 보통 사람이 통제할 수 없는 '비범한 운'이 작용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삶을 온전하고 건강하게 살아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비록 비범한 운이 내 삶을 비껴갈지라도 매일의 일상에서 무너지지 않고 자신만의 싸움을 묵묵히 이어 나가는 것이다.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스스로를 지탱하고, 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우뚝 서게 만드는 자립의 힘. 그 힘은 다름 아닌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일' 속에 깃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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