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일반
SK하이닉스 ‘액면분할’ 기대감?…업황·실적·주주환원 ‘알맹이’ 봐야
- [액면분할 환상과 실제]①
기업 가치 변동 없는 착시 효과 유의해야
삼성전자·네이버 분할 후 주가 하락 잔혹사
마이크론, 강력한 주주보상 발표 후 급등
[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 최근 SK하이닉스 주식 액면분할 가능성이 대두되면서 투자자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 주당 가격이 100만원이 넘는 이른바 ‘황제주’가 액면분할을 통해 몸값을 낮추면, 더 많은 투자자가 접근하기 쉬워져 주가가 오를 수 있다는 기대감이 일부 투자자들 사이에서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액면분할이란 말 그대로 주식을 쪼갠다는 뜻이다. 주식을 일정한 비율로 나눠서 주식 수를 늘리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투자자 A씨가 1주에 100만원인 주식을 1주 보유하고 있는데 해당 회사가 10대 1로 주식을 액면분할하면, A씨는 주당 10만원짜리 주식을 10주 갖게 되는 것이다.
실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 7월 미국 뉴욕 나스닥 본사에서 열린 SK하이닉스 미국주식예탁증서(DR) 상장 오프닝 행사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액면분할 가능성을 언급했다. 최 회장은 개인 투자자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액면분할을 검토하고 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요청이 더 오면 당연히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아직 최고재무책임자(CFO)로부터 공식적인 제안을 받지는 못했다”고 했지만, 그룹 최고 의사결정권자가 액면분할 가능성을 열어두었다는 사실만으로 투자자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는 평가다.
그러나 증권 전문가들은 액면분할 기대감이 주가 상승의 근거가 되기는 어렵다고 지적한다. 액면분할은 주식 총수를 늘리는 작업일 뿐, 기업의 자본금이나 본질 가치에는 아무런 변화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1만원짜리 지폐 한 장을 1000원짜리 10장으로 바꾼다고 해서 1000원짜리 10장의 가치가 1만원 이상으로 높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소액 자금이 일시적으로 유입되는 효과는 기대할 수 있지만, 이를 기업 가치가 높아지는 것과 연결 짓는 것은 무리한 측면이 있다”며 “(SK하이닉스의) 액면분할 이야기는 최근 주가가 급락한 가운데 수급 호재를 열망하는 기대심리가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네이버 액면분할의 흑역사
과거 국내 증시를 대표하는 대형주들의 액면분할 사례를 살펴보면 주식 쪼개기가 주가 상승을 보장하는 수단이 아니라는 점이 극명히 드러난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8년 5월 주당 250만원을 웃돌던 주식을 50대 1로 분할해 재상장했다. 액면가가 5000원에서 100원으로 낮아지면서 주가는 5만원대로 낮아졌다. 분할 상장 첫날 삼성전자의 거래량은 이전보다 100배 이상 늘면서 하루 거래량 신기록을 세웠다. 수많은 소액 투자자가 유입되며 삼성전자는 이른바 ‘국민주’ 반열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주가 추이는 시장의 기대와는 전혀 다르게 흘렀다. 분할 상장 첫날인 2018년 5월 4일 5만3000원이었던 삼성전자 주가는 하락세를 거듭하며 같은 해 말 3만원대까지 추락했다. 일부 투자자들은 “삼성전자가 아니라 ‘3만전자’가 됐다”며 낙담했다. 이듬해 10월 14일이 돼서야 5만원을 기록한 삼성전자의 주가는 한동안 4만~6만원 수준의 박스권에 갇혀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글로벌 유동성 공급과 반도체 초호황이 찾아온 뒤에야 상승세를 탈 수 있었다.
2018년 10월 5대 1 액면분할을 단행했던 네이버도 주가 하락의 쓴잔을 들었다. 당시 한 주당 70만원을 웃돌았던 네이버는 액면가를 500원에서 100원으로 낮췄다. 주가는 액면분할 이후 14만원대로 내려왔지만, 이후 내리막을 걸었다. 이듬해 8월에야 다시 14만원대로 올라섰다.
당시 박상진 네이버 CFO는 2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액면분할의 주된 목적은 유통 주식 총수를 늘려 투자 접근성을 높이고 유동성을 개선해 장기적으로는 주주가치 제고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그는 “네이버를 많이 사용하고 계시는데도 주식 접근이 어려워 (액면분할이) 의미가 있다고 본다”며 “무상증자나 주식 배당은 아니지만 잉여 현금흐름의 30% 정도를 환원하려고 하고 있고, 기본 주주 정책은 변화된 게 없다”고도 했다. 하지만 박 CFO의 설명이나 기대와는 달리 실제 효과는 없었던 셈이다.
기술 격차·메모리 시장·주주환원 봐야
증권가에서는 SK하이닉스를 주목하는 투자자들에게 단순한 수급 이벤트가 아니라 기업의 실적과 기초체력, 해당 기업이 속한 반도체 시장 업황, 기업의 강력한 주주환원 정책 등을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특히 인공지능(AI) 산업 발전으로 반도체 수요가 향후 수년간 줄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상황에서 내놓을 주주환원 정책에 이목이 쏠린다. 미국의 대표 반도체 기업 중 하나인 마이크론은 지난 6월 잉여현금흐름(FCF)의 100%를 주주에게 환원하겠다는 파격적인 정책을 발표하며 주가를 끌어올렸다.
반면 SK하이닉스는 2분기 컨퍼런스콜에서 주주환원 실행 방안 계획을 밝히면서도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추가적인 주주환원 실행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고 구체적인 계획은 확정되는 대로 시장과 소통하겠다”고만 했다. 이후 비판 여론이 커지자 7일 장 마감 후 보통주 1주당 375원의 분기 현금배당을 지급하겠다는 공시를 발표했다. “또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추가 주주환원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라며 “구체적인 사항은 3분기 중 확정해 발표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재원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지난 7일 장 마감 이후 3분기 내 주주환원 정책을 발표할 것이라고 공시하자 대체거래소(NXT)에서 주가 반등을 야기했다”며 “강력하고 투자자들을 만족시킬 만한 수준의 주주환원 정책을 발표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결국 주가를 움직이는 것은 액면분할이라는 포장지가 아니라, 기업의 성장 가능성과 이익 그리고 이를 주주에게 어떻게 배분하느냐 하는 정책”이라며 “지난 컨퍼런스콜에서 주주환원에 관한 내용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아 많은 주주들이 실망했는데, 어떤 정책을 내놓느냐에 따라 주가 흐름도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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