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일반
“상폐 다음은 승강제”…코스닥, ‘돈 들어오는 시장’ 될까
- [코스닥, 다음 퇴출 후보는] ①
부실기업 솎고 우량기업 띄운다…코스닥 ‘투트랙’ 개편
프리미엄 지수·ETF로 기관자금 유도…“실제 성과가 관건”
[이코노미스트 송현주 기자] 코스닥 시장의 ‘물갈이’가 본격화하고 있다. 강화된 상장폐지 요건이 적용되면서 부실·한계기업을 시장에서 퇴출하는 작업에 속도가 붙는 가운데 시장의 관심은 ‘퇴출 이후’로 옮겨가고 있다. 기업을 내보내는 것만으로는 코스닥의 고질적인 저평가와 수급 공백을 해소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가 우량기업을 별도로 묶는 ‘승강제’와 전용 지수·상장지수펀드(ETF)를 통해 기관과 외국인 자금 유입을 유도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놓으면서 코스닥 체질 개선의 두 번째 시험대가 시작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하반기 코스닥 시장을 프리미엄과 스탠다드, 관리군 등으로 구분하는 승강제의 구체적인 도입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상위 세그먼트인 프리미엄에는 시가총액 상위 대형·우량기업을, 스탠다드에 일반적인 코스닥 스케일업 기업을 배치하게 된다. 상장폐지 우려나 거래 위험이 높은 기업은 관리군으로 분리하는 것이 골자다. 세그먼트별 구체적인 진입·유지 요건과 편입 기업 수 등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핵심은 기업의 성장과 실적에 따라 세그먼트 간 ‘승강’이 이뤄진다는 점이다. 스탠다드 기업이 상위 세그먼트 진입 요건을 충족하면 프리미엄으로 승격하고 프리미엄 기업이 유지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강등하는 방식이다. 기업 간 경쟁을 유도하는 동시에 우량기업이 코스닥 시장 전체의 낮은 평가에 묻히는 문제를 해소하겠다는 취지다.
특히 정부는 프리미엄 세그먼트 내 최상위 대표기업을 중심으로 별도 지수를 개발하고 이를 추종하는 ETF를 출시할 방침이다. 기관과 외국인 등이 코스닥 우량기업에 선별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 투자 기반을 넓히겠다는 구상이다. 증권가에서는 승강제 도입 이후 프리미엄에 편입되는 기업을 중심으로 수급 차별화가 나타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퇴출’과 ‘육성’ 동시에…코스닥 체질개선 속도
승강제가 코스닥 상단의 우량기업을 키우기 위한 정책이라면 시장 하단을 정리하는 작업은 이미 시작됐다. 지난 7월부터 강화된 상장폐지 요건이 적용되면서 코스닥 시가총액 기준은 기존 150억원에서 200억원으로 높아졌다. 종가 1000원 미만인 이른바 ‘동전주’에 대한 상장폐지 요건이 도입됐고 반기 기준 완전자본잠식 요건도 신설됐다. 공시위반 벌점 기준도 기존 15점에서 10점으로 강화됐다.
내년부터는 퇴출 문턱이 한층 높아진다. 2027년 1월부터 코스닥 시가총액 기준이 현행 200억원에서 300억원으로 추가 상향될 예정이다. 신규 상장은 활발하지만 퇴출 기업은 상대적으로 적었던 ‘다산소사’(多産少死) 구조를 상장과 퇴출이 모두 활발한 ‘다산다사’(多産多死) 구조로 바꾸겠다는 취지다.
증권가에서는 한계기업 퇴출이 본격화하면 코스닥 시장의 펀더멘털 자체가 개선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증권은 강화된 상장폐지 기준인 ▲최근 30거래일 시가총액 기준 미달 ▲최근 30거래일 종가 기준 미달 ▲완전자본잠식 ▲공시위반 벌점 10점 이상을 적용해 위험 종목군을 추렸다. 그 결과 이달 현재 127개 코스닥 종목이 해당 기준에 들어간 것으로 나타났다.
향후 시가총액과 주가 등에 따라 실제 상장폐지 여부는 달라질 수 있지만 이들 종목이 모두 시장에서 제외된다고 가정하면 코스닥 전체의 수익성은 개선된다. 12개월 후행 기준 코스닥 순이익은 현재 7조6000억원에서 8조6000억원으로 12.9% 증가하고 자기자본이익률(ROE)은 3.08%에서 3.57%로 0.49%포인트 높아진다. 주당순이익(EPS) 역시 13.9포인트에서 15.8포인트로 14.0% 개선된다.
권범석 삼성증권 연구원은 이 같은 시장 구조의 근본적인 변화에 따른 펀더멘털 개선이 향후 코스닥 상승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내다봤다.
문제는 수급이다. 부실기업을 걷어내 시장의 이익 체력을 높이더라도 새로운 투자자금이 들어오지 않는다면 코스닥의 재평가에는 한계가 있어서다.
올해 코스닥 약세의 배경으로는 대형주를 향한 극심한 수급 쏠림이 지목된다. 올해 들어 8월 초까지 개인투자자는 레버리지 ETF를 16조1000억원 순매수한 반면 코스닥에서는 10조2000억원을 순매도했다. 전체 ETF 순자산총액(AUM)에서 레버리지 ETF가 차지하는 비중은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출시 전인 지난 4월 4.7%에서 6월 7.4%로 높아졌다. 같은 기간 레버리지 ETF AUM도 20조4000억원에서 30조8000억원으로 급증했다.
거래대금에서도 수급 공백은 뚜렷하다. 2023년 코스피와 코스닥의 일평균 거래대금은 각각 9조5000억원, 10조원으로 큰 차이가 없었다. 올해 들어 8월까지는 코스피 35조2000억원, 코스닥 12조4000억원으로 격차가 약 2.8배까지 벌어졌다.
다만 코스닥 부진을 단순한 유동성 부족으로만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코스피 대형주가 수출과 이익 개선을 바탕으로 상승하는 동안 상대적으로 실적 모멘텀이 약했던 코스닥에서 자금이 이탈했다는 것이다.
노동길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7월 말 저점에서 코스닥 낙폭은 47.4%까지 확대됐다”며 “단순 대형주 선호가 아닌 수출과 이익이 있는 시장으로 자금이 이동한 결과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코스닥 반전을 판단하려면 유동성 증가만으로는 부족하다”며 “기존의 이익 열위가 완화되거나, 적어도 원화와 금리가 밸류에이션에 불리하게 작용해 온 방향부터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 정부 정책에 따라 개발된 KRX300과 BBIG 등 지수와 연계 ETF는 장기 성과가 부진해지면서 자금 유인이 지속되지 못했다. 반면 밸류업 프로그램 관련 ETF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정책이 속도감 있게 진행되면서 상장 초기보다 최근 순매수세가 더욱 집중됐다.
신현용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정책의 취지가 제도 설계에 반영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져야 유의미한 규모의 자금 유입을 유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직 프리미엄 세그먼트의 구체적인 진입·유지 요건은 확정되지 않았다. 유안타증권은 프리미엄이 지향하는 ‘대형·성숙기업’의 특성에 맞춰 코스닥 대형 성장 스타일 종목을 중심으로 예상 프리미엄 지수를 구성해 성과를 분석했다.
그 결과 예상 프리미엄 지수는 코스닥뿐 아니라 코스닥150의 성과도 웃돈 것으로 나타났다. 승강제와 연계 ETF가 코스닥 전체의 동반 상승보다 실적과 성장성을 갖춘 우량기업으로 자금이 집중되는 흐름을 강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신 연구원은 “예상 프리미엄 세그먼트에 포함되면서 동시에 코스닥150에 편입된 종목 가운데 향후 최상위 대표지수와 연계 ETF 편입 가능성이 높은 후보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세부 편입 기준이 확정되지 않은 만큼 현 단계에서 특정 종목의 편입을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강조했다.
가격 측면에서는 코스닥이 반등을 시도할 수 있는 구간에 진입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지난 8월 7일 기준 코스닥은 120개월 이동평균선인 800선 부근까지 내려왔다. 지난 7월 최대낙폭(MDD)은 -47.4%로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44.2%보다 컸다.
과거 코스닥이 120개월 이동평균선을 밑돌았던 시점을 분석한 결과 1개월 뒤 기대수익률은 4.4%, 상승 확률(Hit ratio)은 79.9%였다. 12개월 뒤 기대수익률은 36.7%로 높아졌다.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도 18.0배로 역사적 평균인 17.5배에 근접해 밸류에이션 부담이 상당 부분 낮아졌다.
조아인 삼성증권 연구원은 “정책 모멘텀이 집중된 구간에 진입함에 따라 단기적으로 코스닥 지수의 반등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한다”면서도 “중장기적 관점에서 코스피 대비 투자 기회비용을 감안한다면 코스닥 지수 자체에 대한 투자 매력은 제한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코스닥 지수 전반의 방향성보다는 종목별 차별화 장세가 보다 뚜렷하게 전개될 것”이라며 “지수 전체에 대한 추종보다는 AI 수혜 핵심 종목에 대한 집중 투자 전략이 보다 유효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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