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AI 광고모델 시대, 성패를 가르는 단 하나의 질문은 [허태윤의 브랜드스토리]
- 광고판까지 점령한 AI 모델…비용·리스크 낮추며 ‘대세’로
성패 가른 건 ‘주연과 조연’…AI에 브랜드 얼굴 맡기면 역효과
[허태윤 칼럼니스트] 지난해 여름, 미국 패션잡지 보그에 낯선 얼굴 하나가 실렸다. 이름은 비비안. 금발에 흠 잡을 데 없는 미소, 완벽한 비율을 가진 이 여성은 미국 패션 브랜드 게스의 광고 모델이었다. 그런데 이 모델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인공지능이 그려낸 얼굴이었다. 광고가 공개되자마자 SNS에는 분노에 가까운 댓글이 쏟아졌다. "우리는 이제 존재하지도 않는 사람과 내 얼굴을 비교해야 하냐"는 것이었다.
비슷한 시기, 한국에서는 정반대의 반응을 얻은 인공지능(AI) 광고가 있었다. 영어교육 브랜드 야나두가 만든 짧은 영상 속에는 어눌한 발음으로 "give me coffee"라 말하는 할아버지가 등장한다. 카페에서 저렇게 말하면 무례하게 들릴 수 있다는 걸, 이 어색한 AI 할아버지가 우스꽝스럽게 짚어준다. 이 영상은 놀림받기는커녕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웃음과 함께 널리 퍼졌다. 같은 기술, 같은 시기, 정반대의 운명. 무엇이 갈랐을까.AI, 이미 캐스팅 디렉터의 첫 번째 선택지
먼저 분명히 해둘 게 있다. AI 광고 모델은 이제 '쓸까 말까'를 고민하는 대상이 아니다. 이미 대세가 됐다. 강원도의 한 리조트는 최근 서양 판타지풍 캐릭터가 등장하는 로맨스 드라마를 유튜브에 연재했는데, 등장인물이 전부 AI로 만들어졌는데도 '신이 빚은 얼굴'이라는 호평 속에 두 편 합쳐 100만 조회수를 넘겼다. 국내 패션 브랜드들의 움직임은 더 과감하다. 한 캐주얼 브랜드는 이번 시즌 백인·흑인·동양인에 성별과 연령까지 다양화한 열두 명의 AI 모델을 동시에 선보였고, 또 다른 브랜드는 아예 전속 AI 모델을 데려다 시즌 화보를 맡겼다. 사람 모델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규모와 속도다.
이유는 단순하다. 유명 모델 한 명을 쓰려면 계약금부터 촬영 스태프, 장소 대여까지 최소 몇천만원, 톱스타라면 억단위가 든다. 게다가 사람 모델은 예측 불가능한 위험을 함께 안고 온다. 최근 몇 년 사이 국내에서도 배우들이 각종 사생활 논란에 휘말리면서, 광고주가 뒤늦게 계약을 해지하고 손해배상 소송까지 벌이는 일이 잇따랐다. 반면 AI는 스캔들도, 지각도, 나이 드는 일도 없다. 시장조사기관 마켓엔마켓은 산업·유통·엔터테인먼트 전반에서 쓰이는 AI 아바타 시장이 2025년 약 1조원에서 2032년 8조원 규모로, 매년 33%씩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 흐름은 대기업보다 오히려 자본이 얇은 스몰 브랜드에 더 절실하다. 수억원대 모델료가 부담스러운 중소기업 입장에서 AI 모델은 사업을 키울 수 있는 매력적인 지렛대다. 대기업이라도 작은 브랜드를 많이 가지고 있는 편의점 GS25는 가상 아이돌과 협업한 빵·과자 시리즈로 130만 개 넘게 팔았고, 한 대형마트는 가상 걸그룹과 만든 과자를 온라인 공개 3분 만에 완판시켰다. 사람 모델을 쓸 여유가 없던 작은 브랜드일수록, AI는 매출로 직결되는 무기가 되고 있다.
문제는 AI를 쓰느냐가 아니라, 어떤 배역을 맡기느냐다. 비비안과 야나두 할아버지의 차이를 다시 들여다보면 답이 보인다. 흔히 "너무 완벽해서 게스가 실패했고, 어설퍼서 야나두가 성공했다"고들 말하지만 사실 그게 핵심이 아니다. 완성도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는 드라마의 주연 자리에 앉았고 하나는 조연 자리에 머물렀다는 차이다.
광고업계는 브랜드를 대표하는 모델을 흔히 '앰버서더', 즉 대사(大使)라 부른다. 국가를 대표해 파견되는 외교관처럼, 앰버서더는 브랜드의 정체성과 가치를 자기 존재로 체현하는 자리다. 게스는 비비안에게 바로 이 앰버서더, 극으로 치면 주연 배우 역할을 맡겼다. 보그라는 무대는 오랫동안 "이런 모습이 아름답다"는 기준을 제시해온 자리였고, 주연은 그 기준을 자기 몸으로 짊어진다. 관객은 주연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자신과 견준다. 그런데 그 주연 자리에, 애초에 도달할 수조차 없는 존재하지 않는 얼굴을 앉혀버렸다. 사람들이 화가 난 건 얼굴이 가짜라서가 아니라, 브랜드를 대표해야 할 주연이 비교조차 성립하지 않는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AI에게 대본은 주되, 주인공 자리는 내주지 마라
반면 야나두는 AI 할아버지에게 주연 자리를 준 적이 없다. 그 얼굴은 조연이었다. "이렇게 말하면 오해받을 수 있어요"라는 메시지가 잘 전달되도록 돕는 역할일 뿐, 극을 이끌거나 브랜드를 대표하지 않았다. 좋은 조연은 관객의 시선을 자기가 아니라 이야기 쪽으로 돌린다. 야나두의 AI 캐릭터가 정확히 그랬다.
같은 실수는 해외에서도 반복됐다. 2024년 크리스마스 시즌, 코카콜라는 30년 가까이 이어온 자사의 상징적인 크리스마스 광고를 통째로 AI에게 맡겼다. 눈 내리는 마을, 트럭을 몰고 오는 산타, 이 모든 장면이 AI가 그린 그림이었다. 결과는 싸늘했다. "AI가 산타를 죽였다"는 조롱까지 나왔다. 이 캠페인 속 산타는 단순한 캐릭터가 아니라, 30년간 코카콜라라는 브랜드 그 자체를 대표해온 주연이었다. 그 자리를 AI에게 맡긴 것이 화근이었다.
반대로 앞서 언급한 리조트의 AI 드라마, GS25의 협업 캐릭터, 대형마트의 가상 걸그룹은 모두 조연의 자리에 머물렀다는 공통점이 있다. 리조트 드라마 속 인물은 브랜드의 정체성이 아니라 로맨스라는 이야기를 실어 나르는 조연이었고, 편의점과 마트의 가상 캐릭터들은 브랜드 그 자체가 아니라 특정 상품과 잠깐 손잡은 조연이었다. 아무도 이 조연들에게 브랜드를 대표해달라고 요구하지 않았기에, 아무 문제도 생기지 않았다.
그렇다면 지갑이 얇은 브랜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AI에게 앰버서더, 즉 주연 자리를 맡기지 않으면 된다. 값비싼 톱모델이 서 있던 그 자리를 AI로 억지로 대체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대신 정보를 쉽게 설명하고, 재미있게 웃기고, 이야기를 실어 나르는 조연의 자리를 찾아가면 된다. 그 자리에서는 AI든 사람이든 큰 차이가 없다.
다만 조연으로 쓸 때도 지켜야 할 최소한의 원칙은 있다. 올해 6월부터 공정거래위원회는 AI로 만든 광고에는 이를 분명히 표기하도록 심사 지침을 바꿨다. 실제 사람이 아닌 존재가 메시지를 전달하는 만큼 그 메시지에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기만 광고로 흐를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AI를 조연으로 쓰더라도, 그 조연이 누구인지는 관객에게 정직하게 알려야 한다.
AI 광고 모델은 이제 대세가 됐다. 이 흐름을 거스를 수 있는 브랜드는 많지 않다. 다만 다음 광고를 준비하기 전에 딱 한 가지만 스스로 물어보면 된다. 이 AI에게, 나는 지금 주연 자리를 내주려 하는가, 조연 자리를 맡기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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