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ECONOMIST

ECONOMIST MAGAZINE

1850호 매거진 커버 이미지

1850호 2026-08-24

산업스파이 대한민국을 훔치다

정기
구독
에코프로·맥쿼리도 베팅한 K뷰티..제조생태계에 몰리는 자금줄 [K뷰티공장에 뭉칫돈 몰린다]①

산업 일반

K-뷰티 제조 생태계에 글로벌 뭉칫돈이 몰리고 있다. 국내외 사모펀드(PEF)와 전략적 투자자(SI)가 화장품 브랜드 대신 제조업자개발생산(ODM)·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과 패키징 업체에 잇따라 자금줄을 대고 있어서다. 최근 글로벌 뷰티 시장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 경쟁력이 부각되면서 한국에 있는 화장품 생산 기반 자체가 투자 대상으로 떠오르는 것으로 분석된다. 과거에는 브랜드 하나의 흥행에 의존했지만, 이제는 다양한 고객사를 확보해 안정적인 현금흐름과 성장성을 동시에 기대할 수 있는 제조 기반에 주목하는 것으로 보인다. K브랜드 대신 K공장 산다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아시아·유럽을 중심으로 투자하는 글로벌 PEF 운용사 어펄마캐피탈은 화성코스메틱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맥쿼리프라이빗에쿼티(맥쿼리PE)를 선정했다. 매각 대상은 어펄마캐피탈이 특수목적법인(SPC) 아스테리온홀딩스를 통해 보유한 화성코스메틱 지분 약 70%와 기초화장품 ODM 업체 나우코스 지분 전량이다. 거래 규모는 3000억원 안팎으로 거론된다.화성코스메틱은 에스티로더그룹 등을 고객사로 둔 색조 화장품 ODM 업체다. 씨앤씨인터내셔널과 함께 국내 색조 ODM 시장을 이끌며 글로벌 브랜드를 고객사로 확보해왔다. 지난해 매출 1107억원, 상각전영업이익(EBITDA) 235억원을 기록했다. 맥쿼리PE가 나우코스까지 품으면 색조와 기초를 아우르는 ODM 생산 포트폴리오를 확보하게 된다. 맥쿼리PE는 지난해 결성한 1조1200억원 규모의 ‘맥쿼리코리아오퍼튜니티즈펀드 6호’를 활용할 것으로 예상된다.치열한 경쟁 끝에 얻은 기회다. 이번 화성코스메틱 인수전에는 배터리 소재 기업 에코프로가 한국투자프라이빗에쿼티(한투PE)와 함께 뛰어들었다. 배터리 업황의 변동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창출할 수 있는 K-뷰티 제조업을 새로운 투자처로 본 것으로 풀이된다.비단 화성코스메틱만의 일은 아니다. 인수·합병(M&A) 자문사 삼일PwC에 따르면 최근 국내 화장품 제조 분야에서는 ODM·OEM 업체뿐 아니라 용기·부자재 제조사에 대한 재무적 투자자의 인수가 이어지고 있다. 전략적 투자자들도 사업 다각화를 위해 제조업체를 인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실제로 글로벌 PEF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는 지난해 미국계 PEF 텍사스퍼시픽그룹(TPG)로부터 국내 화장품 용기 제조사 삼화 지분 100%를 약 7330억원에 인수했다. 삼화는 300개 이상의 국내외 화장품 브랜드에 패키징을 공급하며 ▲로레알 ▲에스티로더 ▲샤넬 ▲LVMH 등을 고객사로 두고 있다. 에어리스 펌프와 쿠션 용기 등 고기능 제품을 개발할 수 있는 R&D 역량도 갖췄다.싱가포르 비즈니스타임스는 지난해 9월 KKR과 블랙스톤의 투자를 계기로 한국 뷰티·퍼스널케어 분야의 PE 거래가 확대될 것으로 전망하면서, 2025년 관련 거래 규모가 14억1000만달러(약 1조98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KKR의 삼화 인수와 블랙스톤의 한국 프리미엄 헤어케어 체인 JUNO 투자를 기점으로 글로벌 자금이 한국 뷰티산업의 브랜드뿐 아니라 제조·서비스 인프라에 본격적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국내 뷰티업계 관계자는 “KKR이 산 것은 특정 화장품 브랜드가 아니라 글로벌 브랜드가 계속 제품을 내놓는 한 반복적으로 주문이 발생하는 공급망”이라며 “고객사가 바뀌더라도 주문을 이어갈 수 있는 기술력과 영업망, 생산 기반을 산 것”이라고 말했다. 왜 K뷰티 생태계에 꽂혔나 그동안 글로벌 뷰티 시장은 유망 브랜드를 인수한 뒤 자본과 연구·개발(R&D), 글로벌 유통망을 더해 키우는 방식으로 성장해왔다. ▲3CE ▲닥터지 ▲닥터자르트 ▲AHC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근래들어 K-뷰티의 성장 방식이 변화 중이다. 해외에서 팔리는 한국 브랜드가 늘어나는 데 그치지 않고, 미국과 유럽의 인디 브랜드를 비롯한 글로벌 업체들이 한국 ODM을 통해 제품을 개발하고 생산하기 시작했다. 한국 제조사가 특정 브랜드의 흥망과 관계없이 여러 브랜드의 성장에 올라탈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수출 규모가 이를 뒷받침한다. 한국 화장품 수출액은 2023년 84억6000만달러(약 11조9000억원)에서 2024년 102억달러(약 14조3700억)로 처음 100억달러를 넘어섰고, 2025년에는 114억3000만달러(약 16조1000억원)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수출 대상 국가도 2025년 202개국으로 확대됐다. 특히 미국 수출은 21억9000만달러(약 3조850억원)로 중국을 제치고 최대 시장으로 올라섰다.시장이 넓어지면서 제조사의 고객 기반도 함께 커지고 있다. 한국콜마·코스맥스·코스메카코리아·씨앤씨인터내셔널 등 주요 ODM 4개사의 지난해 합산 매출은 6조원을 넘어섰다. 국내외 인디 브랜드의 성장과 수출 확대가 생산 주문 증가로 이어지면서 이들 업체는 생산능력 확대와 R&D 투자에 나서고 있다.해외에서도 한국 제조사의 경쟁력을 주목하고 있다. 프랑스 르몽드는 지난해 8월 한국 화장품 산업을 조명하면서 “한국 ODM사는 제품의 품질을 보장하는 동시에 기록적인 속도로 혁신을 내놓을 수 있는 연구개발팀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일본·중국 등 아시아 뷰티 트렌드와 혁신을 분석하는 아시아 코스메랩의 플로랑스 베르나르댕 대표는 “한국은 가격 경쟁력은 물론 새로운 제형과 재미있는 패키징을 선보이는 데 강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업계는 한국 ODM사의 역할이 단순한 하청관계를 넘어서 생산에서 제품 개발로 넓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새로운 제형을 개발하고, 패키징을 설계하고, 국가별 규제에 맞춰 제품을 조정하는 등 글로벌 브랜드의 제품 출시 과정에 깊숙이 관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K-뷰티 공장’이 브랜드 뒤에서 제품을 만드는 생산시설을 넘어 글로벌 뷰티 시장의 공급망이 된 셈이다. 글로벌 뷰티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로레알과 에스티로더 등 내로라하는 그룹의 임원들이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간판 ODM사 대표와 별도 미팅을 가질 정도로 K-뷰티 영향력이 커졌다"고 말했다.

2026.08.26 06:00

4분 소요
“공장은 살 수 있어도 수주는 못 산다” 모나미코스메틱 박경현의 ‘발품 영업’ [K뷰티공장에 뭉칫돈 몰린다]②

산업 일반

“처음에는 미팅 한번 잡는 것부터 쉽지 않았습니다. 샘플을 들고 찾아가도 쳐다보지도 않더군요.” 지난 7월 말 용인시 모나미코스메틱 공장에서 만난 박경현 대표가 담담하게 말했다. ‘국민 볼펜’ 기업 모나미가 화장품 제조업자개발생산(ODM) 사업에 뛰어든 지 3년여. 3100평 규모의 공장과 연간 4500만개의 생산능력을 갖췄지만, 박 대표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해외 고객을 찾아 나서는 일이었다.화장품 용기 기업 연우에서 마케팅·해외영업을 맡은뒤 시너지파트너스와 나우코스를 거친 박 대표는 20년 가까이 화장품 업계 영업·마케팅 현장을 누빈 ‘뷰티통’이다. 지난해 2월 모나미코스메틱 대표에 취임한 뒤에는 미국·유럽·아시아를 오가며 고객사를 직접 만났다. 지난해 비행거리만 약 10만 마일에 달했다. 해외 시장의 문을 두드린 끝에 이제는 먼저 테스트와 미팅을 요청하는 브랜드도 생겼다.박 대표는 대표 취임 후 처음 가진 와의 인터뷰에서 “공장은 살 수 있어도 수주는 살 수 없다. ODM은 제조업이면서 동시에 수주 산업”이라고 말했다. 문전박대에서 환대로생산자 입장에서 K-뷰티는 이미 ‘레드오션’에 들어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글로벌 브랜드를 잡기 위한 국내 ODM 업체들의 경쟁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 생산시설만 갖췄다고 고객이 따라오는 시대도 아니다.한국의 대표 문구 제조기업 모나미는 이 치열한 시장에 후발주자로 뛰어들었다. 2023년 모나미코스메틱을 출범시킨 뒤 제조 기반을 갖췄고, 지난해 2월 박 대표를 선임하면서 해외 영업에 속도를 냈다.“대표가 사무실에서 보고 의사결정만 하는 사람이면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모나미에서는 처음부터 현장을 뛰겠다고 생각했죠.”첫 성과는 지난해 3월 미국 출장에서 나왔다. 모나미코스메틱은 첫 해외 영업에서 미국 뷰티 브랜드 키스뉴욕과 계약을 맺었다. 이후 제품 기획과 개발을 거쳐 약 1년 3개월 만에 첫 제품 출시까지 이어졌다. 통상 제품 기획부터 출시까지 2~3년이 걸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빠른 속도다. 입소문이 나면서 해외 시장의 반응도 달라지고 있다.“예전에는 샘플도 받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샘플을 받아서 가고 일주일 뒤에 구체적인 피드백까지 줍니다. 예전에는 피드백을 주지도 않고 함흥차사인 경우가 많았는데 많이 달라졌습니다.”처음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박 대표가 과거 해외 영업 현장에서 경험한 것은 문전박대에 가까웠다. 어렵게 미팅을 잡아 샘플을 들고 찾아가도 샘플을 받지 않고 돌려보내기 일쑤였다. 하지만 K-뷰티의 위상이 완제품 브랜드를 넘어 제조 역량으로까지 이어지면서 한국 ODM 업체를 바라보는 해외 브랜드의 시선도 달라졌다.박 대표가 현장을 고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K-뷰티의 제조 경쟁력을 모나미코스메틱에 빠르게 이식하기 위해서다.“고객사 직원의 얼굴을 보면 어떤 걸 원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걸 빠르게 캐치해서 연구소에 전달합니다. 미국에 있는 동안 샘플을 다시 만들어 보내달라고 하기도 합니다.”색이나 제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의견이 나오면 해외 출장 중에도 수정 샘플을 요청한다. 한국에서 다시 만든 샘플을 현지로 보내 고객이 원하는 수준에 맞을 때까지 조정한다.“요즘 글로벌 자본이 한국 화장품 ODM사에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요. 돈으로 공장은 살 수 있지만 고객사로부터 수주는 살 수 없습니다. 뷰티 ODM은 제조업이면서 동시에 수주 산업입니다.” 모나미의 제조 DNA를 화장품으로모나미는 1960년 광신화학공업사로 출발해 60년 넘게 필기구를 만들어온 제조기업이다. 1963년 ‘모나미 153’ 볼펜 생산을 시작한 뒤 사인펜·매직펜 등으로 제품군을 넓혀왔다.“모나미는 문구회사지만 결국 용기를 사출하는 회사입니다. 볼펜도 플라스틱을 찍어내는 제품입니다. 그 기술을 화장품으로 돌리는 것이 모나미코스메틱의 역할이지요.”색조 화장품은 특히 컬러 구현력이 중요하다. 발색과 제형, 용기의 조합에 따라 제품의 사용감과 완성도가 달라진다. 박 대표는 모나미가 가진 컬러 구현 능력이 색조 ODM에서 강점이 될 수 있다고 봤다.“색조는 무조건 발색이 가장 중요합니다. 어떤 제형에 어떤 용기를 쓰느냐에 따라 발림성과 기능성도 달라집니다. 컬러를 잘 뽑아내는 것은 모나미만의 장점입니다.”모나미코스메틱이 내세우는 또 다른 차별점은 ‘턴키’다. 자체적으로 모든 용기를 생산하는 대신 외부 업체에서 용기를 조달하더라도 고객사의 브랜드에 맞는 디자인과 기능을 제안하고 내용물과 결합한다. 같은 내용물이라도 스펀지가 얼마나 머금고 어떻게 뿜어내느냐에 따라 사용감이 달라진다는 설명이다.모나미코스메틱은 가격 경쟁 대신 연구·개발(R&D)로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중국 업체들이 낮은 가격과 빠른 모방 능력을 앞세우는 만큼 이미 나온 제품을 따라가는 방식으로는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중국은 카피를 잘합니다. 그래서 R&D 투자가 중요합니다. 색조 트렌드는 반복되지만, 과거보다 무엇이 발전했느냐가 중요합니다. 새로운 제형과 기능을 계속 만들어야 합니다.”모나미코스메틱은 현재 약 20% 수준인 공장 가동률을 올해 말 50%까지 끌어올리고, 매출을 지난해보다 두 배 이상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흑자 전환 시점은 2028년 상반기로 잡았다. 장기적으로는 색조에서 경쟁력을 확보한 뒤 클렌징 등으로 제품군을 넓힐 계획이다.모나미코스메틱은 단기간에 세계 각국의 뷰티 브랜드로부터 테스트와 미팅을 제안받는 회사로 올라섰다. 그럼에도 박 대표는 당분간 현장을 더 뛸 계획이라고 했다. “송하윤 모나미 회장님께서 저를 믿고 맡겨주셨습니다. 빠르게 자립하는 것이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출장을 3주씩 다녀도 수주에 성공한다면 그 보다 더 기쁜일이 없는 이유입니다.”

2026.08.26 06:00

4분 소요
'걸려도 남는 장사'인 산업스파이

산업 일반

과거 중국은 타국의 기술 탈취 시도에 시달리던 나라였다. 600여년 전 문익점이 대표적(?)이다. 그는 사신으로 갔던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숨겨 들여와 고려의 의(衣)생활을 바꿨다. 면직물 보급이 늘었고 백성들의 삶도 달라졌다.고려 백성들에겐 은인이지만 중국 입장에서는 귀중한 종자가 국경 밖으로 빠져나간 산업 자원 유출 사건이었을 게다. 6세기 비잔틴제국은 중국 등 동방의 비단 기술을 탐냈다. 수도사들이 누에알을 지팡이에 숨겨 가져왔고, 비잔틴은 이를 발판으로 비단산업을 키웠다.19세기 영국도 그랬다. 동인도회사는 식물학자 로버트 포춘을 중국에 보내 차나무와 종자를 가져왔다. 재배법과 가공법을 익히고 중국의 차 재배 전문인력을 식민지였던 인도로 데려갔다. 이렇게 성장한 인도의 차 산업은 중국이 독점해온 차 시장 판도를 바꿨다. 지금은 입장이 바뀌었다. 중국이 세계를 상대로 기술 탈취에 열을 올리고, 각국은 이를 방어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반도체, 배터리, 조선, 자동차, 디스플레이, 방산. 주요 전략 산업분야에서 세계가 탐내는 기술이 적지 않다. 자칫 해외로 유출되면, 특히 중국으로 넘어가면 단번에 기술 격차를 좁혀 국부(國富)를 흔들 수 있는 기술들이다. 상징적인 사건이 삼성전자 반도체 ‘복제공장’ 사건이다. 몇년 전 삼성전자 한 전직 임원은 국내 반도체 전문인력을 끌어모으고 삼성의 공정기술과 공장 설계자료를 활용해 중국에 반도체 공장을 세우려 한 혐의로 수사를 받았다. 단순히 설계도 몇 장을 빼돌린 수준이 아니다. 반도체 공장의 기본설계자료와 공정 배치도, 생산 과정에 필요한 핵심 정보에 엔지니어까지 중국으로 옮기려 했다. 검찰이 당시 추산한 삼성전자의 피해액은 최소 3000억원이었다. 30년 넘게 축적한 기술과 시행착오의 가치까지 따지면 실제 피해는 수조원에 이를 수 있다고 봤다.하지만 사건은 기소된 지 3년이 넘도록 재판이 이어지면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주범으로 지목된 전직 임원은 구속기소된 지 5개월 만에 보증금 5000만원을 내고 보석으로 풀려났다.반도체 장비 기술을 중국에 빼돌린 세메스 사건에서는 관련 매출이 수백억원에 달했지만 주범에게 내려진 1심 벌금은 10억원에 불과했다. 범죄수익에 대한 추징도 이뤄지지 않았다.박균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산업스파이 가중처벌에 관한 특별법'을 추진하는 이유다. 산업스파이특별법은 국가핵심기술 탈취를 나라 경제를 흔드는 '안보범죄'로 규정해 최고 무기징역에, 수백억대 벌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특히 기술 유출이 경제적 이익을 노리고 벌어지는 사건이라는 점을 감안해 범죄수익을 전액 몰수 또는 추징함으로서 기술을 빼돌리는데 성공해도 돈 한푼 챙기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게 법 제정 취지다. 늦었지만 필요한 일이다. 산업스파이를 근절하려면 기술을 빼돌려 얻는 이익보다 적발됐을 때 치러야 할 대가가 커야 한다. ‘걸려도 남는 장사’인한 기술 유출 시도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박 의원이 추진하는 특별법이, 산업스파이 처벌법이자 예방법이어야 하는 이유다.

2026.08.24 13:14

2분 소요
“韓 기술유출 4년 새 3배 늘었는데…최고형 6년4개월, 美는 20년”

산업 일반

핵심기술 하나가 빠져나간 대가는 혹독했다. 미국 에너지 기술 기업 아메리칸 슈퍼컨덕터(AMSC)는 중국 최대 풍력터빈 업체였던 시노벨을 주요 고객으로 두고 성장하던 기업이었다. 그러나 2011년 시노벨이 AMSC 자회사 직원을 포섭해 풍력터빈을 제어하는 핵심 소프트웨어의 소스코드를 빼돌리면서 상황이 급변했다.시노벨은 훔친 기술로 AMSC의 소프트웨어 없이도 풍력터빈을 가동할 수 있게 됐고 거래도 끊었다. 그 충격으로 AMSC는 주주가치 10억달러(약 1조4000억원) 이상을 잃고 직원 약 700명을 내보냈다. 기술 유출은 경쟁자가 수년간 쌓아야 할 기술과 시행착오를 단숨에 확보해 기술격차와 시장 경쟁 구도까지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치명적이다. 특히 첨단산업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한 기업의 기술 유출이 수출과 일자리, 공급망 등 국가 경제의 손실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국내에서 ‘핵심기술을 지킬 강력한 보안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첨단산업 특화국 韓...기술 유출 타격 ‘심각’한국 경제의 첨단산업 집중도는 주요국 가운데서도 높은 수준이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2024년 한국의 제조업 수출액 가운데 고도 기술 제조업 수출액 비중은 36.3%로 주요 7개국(G7) 평균(20.2%)의 약 1.8배를 기록했다.미국 정보기술혁신재단(ITIF)이 올해 발표한 ‘해밀턴 지수’에서도 한국의 첨단산업 특화도는 2.17로 세계 2위를 기록했다. 독일(1.45), 일본(1.38)을 크게 웃돈다. 국내 기술 유출도 빠르게 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산업통상자원부 등의 자료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 핵심 기술 해외 유출 적발 건수는 2021년 9건에서 2025년 33건으로 4년 만에 3배 이상 증가했다. 2020년 이후 산업기술 해외 유출로 발생한 국가 경제 피해 추산액은 약 23조원에 달한다. 더 큰 문제는 23조원이라는 숫자조차 실제 경제적 손실을 온전히 보여주기 어렵다는 점이다. ▲아직 상용화되지 않은 기술의 미래 매출 ▲경쟁사가 단축한 개발기간 ▲원천기업이 잃게 될 시장점유율 등을 금액으로 환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 산업은 과거 기술을 따라가는 추격자에서 이제는 앞서가는 선도자로 산업구조가 바뀌었다”며 “추격하던 입장에서 기술을 지켜야 하는 수성자의 입장이 된 만큼 산업기술 보호와 처벌 체계도 그에 맞게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韓 최고 형량 6년 4개월…美는 20년국내 기술유출 사건의 역대 최고 형량은 징역 6년 4개월이다. 삼성전자 18나노미터(㎚) D램 공정 기술을 중국 반도체 업체 창신메모리(CXMT)에 유출한 사건에 내려진 형량이다. 개발에 약 1조6000억원이 투입된 국가 핵심기술이 넘어갔고, CXMT는 이후 D램 양산에 성공했다.해외에서는 산업스파이에 훨씬 무거운 형을 선고한다. 미국에서는 중국 국가안전부(MSS) 정보요원 쉬옌쥔이 제너럴일렉트릭 에비에이션(GE Aviation)의 독점적인 항공기 엔진 복합재 기술 등을 탈취하려 한 혐의로 2022년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대만에서도 올해 티에스엠씨(TSMC)의 첨단 2나노 공정 관련 영업비밀을 불법 취득한 사건에서 핵심 피고인에게 징역 10년이 선고됐다. 미국은 1996년 제정한 경제스파이법(EEA)을 통해 외국 정부나 기관 등에 이익을 주기 위한 영업비밀 탈취를 ‘경제스파이’ 범죄로 별도 규율한다. 대만도 2022년 국가안전법을 개정해 국가 핵심기술 영업비밀을 외국이나 중국 등 외부 세력을 위해 빼돌리는 행위를 ‘경제간첩죄’로 처벌하는 체계를 마련했다. 반면 국내에서는 산업기술보호법과 국가첨단전략산업법, 부정경쟁방지법 등에 관련 처벌 규정이 나뉘어 있다. 국가 안보 대응 차원에서 더 강력한 처벌 법안이 필요하다는 시각이 존재하는 이유다.국내에서도 기술 유출을 ‘경제 안보’ 차원에서 다루기 위한 방어막은 강화되고 있다. 국가정보원은 국가핵심기술의 해외 유출을 경제 안보를 위협하는 행위로 보고 관련 정보 수집과 방첩 활동을 통해 유출 징후를 포착하고 관계 기관과 대응해왔다. 오는 9월에는 이른바 ‘간첩법’으로 불리는 개정 형법도 시행된다. 간첩죄 적용 대상을 기존 ‘적국’에서 ‘외국 또는 이에 준하는 단체’로 확대해 외국 정부 등이 개입한 국가기밀 유출에 대응할 법적 기반을 넓혔다.다만 개정 형법만으로 산업기술 유출 전반을 포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가핵심기술이 형법상 ‘국가기밀’에 해당하는지가 쟁점이 될 수 있고, 해외 민간기업으로 기술을 빼돌린 경우 간첩죄 적용이 어려울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박균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산업스파이 가중처벌 특별법’은 이런 사각지대를 겨냥한다. 국가핵심산업정보 유출을 배후와 목적에 따라 ‘경제간첩죄·경제이적죄·일반 경제이적죄’로 구분하고, 외국정부 등을 위한 유출은 무기 또는 7년 이상 징역과 10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법인에는 최대 200억원의 벌금을 부과한다. 국외범 처벌과 범죄수익 몰수·추징, 경제간첩죄 공소시효 25년, 미수와 예비·음모 처벌도 담았다. 기술유출을 기업 차원의 범죄를 넘어 국가안보 범죄로 별도 규율하겠다는 취지다.다만 법을 만드는 것만으로 기술유출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최승재 세종대 법학과 교수는 “형량을 계속 높이는 것보다 해외로 기술을 빼돌리는 행위를 어떤 범죄로 규율할 것인지, 현행법에서 빠져 있는 구성요건은 없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살인범의 형량을 아무리 높여도 범인을 잡지 못하면 의미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법 개정뿐 아니라 산업스파이를 실제로 얼마나 잘 적발하고 수사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2026.08.24 09:00

4분 소요
‘산업스파이 처벌법’ 박균택 의원…“기술과 인재, 국경 넘기 전에 막겠다”

산업 일반

기술은 한번 국경을 넘으면 되돌리기 어렵다. 범인을 잡고 형량을 높여도 이미 해외에 넘어간 기술까지 되찾을 수는 없다. 기술 유출이 단순한 문제가 아닌 이유다. 수년간 쌓아온 연구개발 성과와 노하우가 한순간에 경쟁국의 자산이 될 수도 있다. 피해를 확인한 뒤 움직였다면 이미 늦었을 가능성이 높다.박균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산업스파이 가중처벌에 관한 특별법’을 발의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기술유출 범죄를 단순한 기업 간 분쟁으로 보지 않는다. 국가 경제안보를 흔드는 문제로 보고, 사후 처벌보다 조기 인지와 차단에 무게를 둔 법적 대응체계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기술·인재 지켜낸다는 의지박 의원이 특별법을 고민한 직접적인 계기는 광주 군공항 이전과 호남 반도체 산업단지 조성이다. 특히 반도체 산업단지는 단순하지 않다. 공장만 들어선다고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기업과 연구인력이 모이고, 핵심 공정기술과 노하우가 축적된다. 하나의 산업 생태계가 만들어지는 셈인데, 박 의원은 이 지점에서 깊은 고민에 빠졌다.산업 생태계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박 의원은 기술 인재의 중요성에 주목했다. 공장과 전력·용수 등 기반시설을 마련하는 것만큼 그 안에 쌓이는 기술과 인재를 어떻게 지킬지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판단했다.박 의원은 “지금의 반도체 패권경쟁은 누가 더 많은 공장을 짓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뛰어난 기술을 개발하고 그 기술과 인재를 끝까지 지켜낼 수 있느냐의 싸움”이라며 “기술이 해외로 완전히 넘어간 뒤 유출자를 처벌하는 것만으로는 기업의 피해도, 국가적 손실도 되돌릴 수 없다”고 강조했다.국내에 기술 유출을 처벌할 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산업기술보호법과 부정경쟁방지법 등이 이미 존재한다. 그럼에도 별도의 특별법까지 만들 이유는 명확했다. 현행 법체계만으로는 최근의 기술탈취 범죄를 온전히 다루기 어렵다는 것이다. 박 의원은 기존 기술보호 법률은 보호 대상 기술을 지정하고 관리하거나, 산업을 육성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판단했다.외국정부나 해외기업이 배후에 있는 초국경적·조직적 기술탈취를 하나의 국가안보 범죄로 다루기에는 빈틈이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여기에 방첩활동과 국제공조, 경제간첩죄에 대한 장기 공소시효, 피해 기업의 수사·재판 참여 등 기술유출 범죄에 필요한 절차도 여러 법에 흩어져 있다고 지적했다.박 의원은 “시급한 사각지대는 기술이 해외로 넘어간 뒤 국내 실행자만 처벌하는 사후 대응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며 “유출 이전부터 범죄의 배후를 밝히고 추가 유출을 차단할 통합적인 대응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별도의 특별법이 필요한 이유는 산업스파이 범죄에 필요한 형사절차와 피해 기업 보호장치를 하나의 체계로 연결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新 법안, 어떤 내용 담겼나박 의원이 기술유출을 국가안보의 문제로 바라보는 데는 이유가 있다. 박균택 의원실에 따르면 핵심기술 해외 유출 적발 건수는 2021년 9건에서 2025년 33건으로 늘었다. 최근 5년간 적발된 사건만 103건이다. 2020년 이후 국가경제 피해액도 약 23조원으로 추산된다. 박 의원이 기술유출을 국가안보의 문제로 바라보는 이유다.박 의원은 “핵심기술 해외 유출의 증가 추세와 피해 규모, 국가 공급망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고려하면 이미 기업 간 분쟁을 넘어 국가 경제안보를 위협하는 수준”이라며 “반도체·배터리·자동차 등 첨단기술이 해외 경쟁기업에 넘어가면 피해 기업뿐 아니라 국내 생산기반과 일자리, 후속 연구개발 역량까지 약화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다만 모든 영업비밀 유출을 국가안보 범죄로 묶겠다는 뜻은 아니다. 특별법의 적용 대상은 외국 세력이나 국외 사용과 관련된 국가핵심산업정보 침해행위로 한정한다는 게 박 의원의 설명이다. 박 의원은 산업스파이를 단순히 회사 자료를 반출한 사람이 아니라, 외국정부나 해외기업 등을 위해 국가적으로 중요한 비공개 정보를 빼내거나 유출·사용한 사람으로 규정했다.특별법 적용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도 제시했다. 해당 정보가 국가안보와 국민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국가핵심산업정보’인지, 외국 세력의 이익이나 국외 사용과 관련된 행위인지 등 법에서 정한 침해행위가 있었는지를 따지겠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영업비밀 분쟁이나 직원의 자료 무단 반출이 곧바로 산업스파이 범죄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박 의원은 “일반 사내 자료를 반출한 경우에는 기존 법률에 따라 처리한다”며 “국가핵심산업정보를 외국정부나 해외 경쟁기업 등을 위해 부정하게 취득·반출하거나 국외에서 사용될 것을 알면서 침해한 경우 특별법을 적용하게 된다”고 설명했다.물론 처벌을 세게 만든다고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기술유출 사건은 범죄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부터 어렵다. 범인을 찾아도 혐의를 입증해야 한다. 검사로 오랜 기간 수사 현장에 있었던 박 의원 역시 이 점을 산업기술 유출 수사의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았다.반도체 같은 국가핵심기술은 내부자가 자료를 복제하거나 해외 서버, 제3자를 거쳐 전달하는 경우가 많다. 피해를 입은 기업조차 기술이 빠져나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는 이유다. 정보기관이 수집한 첩보가 수사의 단서가 될 수 있지만 첩보만으로 재판을 할 수는 없다. 압수수색과 디지털 포렌식 등을 통해 법정에서 사용할 수 있는 증거로 만들어야 한다.박 의원은 “법이 약해서만도, 발견하기 어려워서만도, 입증하기 어려워서만도 아니다”며 “이 세 가지 문제가 함께 얽혀 있는 것이 산업기술 유출 수사의 가장 어려운 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별도의 기관을 신설하거나 어느 특정 기관이 모든 역할을 주도하기보다 각 기관의 전문성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2026.08.24 08:30

4분 소요
“은행 대출 막히니 증권사로”…30조 ‘빚투’에 반대매매 폭탄

은행

올해 ‘빚투’(빚내서 투자)의 부실 우려는 예년보다 더 심각해지는 모습이다. 은행권의 대출 문턱이 높아진 사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에서 벗어난 증권사 신용거래융자가 이른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의 우회로로 활용되고 있어서다.특히 반도체주를 중심으로 국내 증시가 빠르게 상승했을 때 부동산 규제로 자금이 주식시장으로 이동하는 ‘머니무브’가 일어났는데, 레버리지 투자까지 함께 확산하면서 개인들의 손실 위험이 한층 커졌다는 분석이다.급락장에 강제매매 월 1조원씩 발생금융권과 증권업계에서는 지난 6월 이후 국내 증시가 급락세를 이어가면서 빚을 내 투자한 개인들의 손실 위험이 한층 커졌다고 보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지난해부터 올해 6월 중순까지 가파르게 오른 영향으로 이후 급락 속도도 빨랐다. 지난해부터 개인들이 과열된 시장에서 외국인의 매물을 모두 받아낸 상황이었던 만큼 최근 하락 구간에서 피해도 큰 모습이다.특히 빚투가 급증한 상황에서 시장 열기가 빠르게 식으면서 강제청산에 따른 반대매매 규모가 커지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8월 14일 기준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30조8675억원으로 집계됐다. 신용융자 잔고는 증시 상승세에 힘입어 지난 5월 사상 처음으로 36조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하지만 6월 말부터 시작된 급락장의 영향으로 30조원대로 낮아졌다.실제로 강제청산은 국내 주식시장이 급락하던 6월 이후 크게 증가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미수금 대비 반대매매 금액은 ▲5월 7076억원 ▲6월 1조1229억원 ▲7월 9927억원 등을 기록했다. 6월과 7월에 평균 1조원에 달하는 규모의 반대매매가 발생한 셈이다. 특히 7월 마지막 거래일에는 하루 반대매매 규모가 1220억원을 넘어섰고, 8월 11일에도 하루 409억원에 달하는 반대매매가 발생하며 시장은 여전히 혼란이 큰 모습이다. 이런 현상과 관련해 금융업계는 신용융자가 DSR에 적용받지 않는 가운데 ‘포모’(FOMO·소외공포감) 영향으로 차입 투자를 늘린 개인투자자가 증가하면서 역대급 반대매매가 나타난 것으로 풀이된다. 금융당국은 신용거래융자와 신용거래대주, 예탁증권담보대출 등 증권사의 신용공여를 DSR에 편입하지 않는 대신 자기자본의 100%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 신용거래융자의 보증금률은 원칙적으로 40% 이상, 담보유지비율은 140% 이상이어야 한다. 증권사는 고객의 투자 성향과 연령, 종목 변동성 등을 고려해 한도와 담보유지비율을 더 높게 설정할 수도 있다.문제는 이 같은 기준이 차주의 소득이나 전체 부채 규모가 아닌 담보가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 소득에 비해 이미 많은 빚을 진 투자자도 보증금만 마련하면 증권사에서 신용융자를 받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주가 상승기에는 적은 자기자금으로 수익률을 키울 수 있지만, 하락기에는 손실도 같은 폭으로 확대되기 때문에 올해 6월 이후 발생한 폭락장에서는 개인투자자들의 손실 규모가 크게 나타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금리 인상 시즌 돌입…DSR 확대 필요성 목소리도여기에 금리 부담까지 높아지면서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7월 기준금리를 연 2.50%에서 2.75%로 0.25%포인트(p) 인상했다. 시장금리와 증권사의 조달비용이 오르면 은행 대출뿐 아니라 신용거래융자 금리도 시차를 두고 상승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주가 하락을 부추길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신용융자 금리는 증권사와 이용 기간, 고객 등급에 따라 차이가 크다. 우대 행사를 적용하면 연 3~5%대 금리가 제시되기도 하지만, 일반 고객이 한 달 이상 이용하면 연 8~9%대가 적용되는 사례가 많다. 기준금리 인상으로 조달비용까지 오르면 장기간 신용융자를 보유한 투자자의 이자 부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DSR 규제에 해당하지 않는 대출 자금은 증권사 신용융자만이 아니다. 주요 생명·손해보험사의 보험계약대출(약관대출) 잔액도 마찬가지로 규제망에서 벗어나 있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보험계약대출은 지난 6월 말 56조5852억원으로 전월보다 6980억원 늘어 올해 들어 가장 큰 증가 폭을 기록했다. 보험계약대출은 가입자가 쌓아온 해약환급금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구조여서 DSR에 따른 신규 대출한도 제한을 받지 않는다. 예·적금담보대출 역시 확정된 상환재원이 있다는 점에서 같은 취급을 받는다.금융당국이 이들 대출을 DSR 규제에서 제외한 것은 담보가치 범위에서 취급돼 일반 신용대출보다 금융사의 손실 위험이 낮기 때문이다. 특히 모든 대출을 DSR에 일률적으로 편입하면 긴급 생활자금까지 막아 금융소비자의 자금 조달을 지나치게 제한할 수 있다는 고려도 깔려 있다. 특히 DSR이 소득에 따른 상환 능력을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담보성이 확실한 대출까지 추가로 DSR에 편입할 필요성이 작다는 게 당국의 해석이다.다만 증권사 신용융자는 예금이나 해약환급금처럼 담보가치가 확정된 상품과 성격이 다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가 변동에 따라 담보가치가 단기간에 급락할 수 있고, 투자 손실이 차주의 다른 부채 상환 능력까지 훼손할 수 있어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신용융자를 DSR에 전면 편입하면 투자자의 자금 조달을 과도하게 제약할 수 있다”면서도 “차주의 전체 부채와 상환 능력을 고려하지 않는 현행 구조는 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보완할 필요성은 있다”고 말했다.

2026.08.24 08:00

4분 소요
산업스파이 표적, 기술서 ‘사람’으로…“경제 방첩 체계 강화해야”

산업 일반

초격차를 외치며 대한민국 첨단 산업을 이끄는 기업들이 살얼음판 위를 걷고 있다. 산업스파이의 기술 유출 위험에 항상 노출돼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현대차·LG·SK 등 굴지의 대기업도 기술 유출 위험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1980년대 중반부터 30년 넘게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국가정보원(국정원)에서 활동한 채성준 서경대 군사학과 교수는 와의 인터뷰에서 기존보다 더 강력한 법률 제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기술 유출 사고가 기업을 넘어 국가 차원의 문제로 확산할 수 있어서다.경제 흔들리면 국가도 위험채 교수는 “오늘날 국력을 뒷받침하는 핵심인 경제력의 기반은 첨단 기술”이라며 “대한민국은 부존자원(지질학적 자원)이 부족한 대신 인재와 기술로 성장한 나라다. 기술은 기업의 자산을 넘어 국가의 생존 자산과도 같다”고 말했다.국가 경제가 흔들리면 국가 안보에도 영향을 끼친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안보의 최후 보루인 국방 예산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시절인 1999년 당시 정부와 국회는 국방비를 전년 본예산 대비 약 6%(1조원가량) 삭감했다.채 교수는 “해외 기술 선진국들은 산업스파이를 중대한 안보 위협으로 보고 있다”며 “특히 중국을 주요 경계 대상으로 삼고 있다”고 설명했다.그러면서 “중국이 전략적으로 육성하는 첨단 산업의 상당수가 우리의 주력 산업과 겹치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며 “핵심 기술 유출은 국가 경쟁력에 치명적인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이런 위기감은 국민의 인식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설문 조사기관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2026년 6월 15~18일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결과, 응답자 72.5%가 기술 유출을 개별 기업 차원이 아닌 국가적 위협 수준으로 인식했다.채 교수는 “첨단 산업은 결국 ‘시간의 경쟁’”이라며 “하나의 기술을 개발하려면 막대한 연구개발비와 수많은 시행착오 그리고 인재와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정부와 국회, 기업 모두 기술 유출이 한국 경제와 국가 안보에 끼칠 영향을 알고 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한 대응 체계도 수립 중이다. 그럼에도 산업스파이 문제는 끊이질 않는다.채 교수는 “역설적으로 한국의 기술력이 높아진 만큼 기술과 핵심 인력이 산업스파이의 중요한 표적이 됐다”며 “또한 산업스파이의 표적은 기술 자료에서 ‘사람’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그러면서 “핵심 연구자를 영입하면 문서로 남기기 어려운 시행착오와 공정 경험, 생산 노하우까지 확보할 수 있다”며 “핵심 연구자 한 명이 수십 권의 기술 자료보다 더 큰 가치를 갖게 돼 산업스파이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대기업만 조심한다고 될 문제도 아니다. 채 교수는 “첨단 산업은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중견기업 및 협력업체 그리고 대학·연구 기관이 하나의 생태계로 연결돼 있다”며 “이들은 대기업보다 보안 역량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개정 간첩법 한계 명확…특별법 필요이런 구조적 문제를 극복하려면 해외 선진국 수준의 인식 정립과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게 채 교수의 생각이다.그는 “미국은 산업스파이와 첨단 기술 유출을 국가 안보 문제로 보고 법무부·상무부·연방수사국(FBI) 등이 참여하는 전담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며 “이들은 AI·반도체·양자 등 핵심 기술의 불법 해외 이전을 추적 및 수사하고 수출 통제와 제재까지 연계한다”고 설명했다.이어 “또한 기업 및 대학과 위협 정보를 공유해 기술 탈취를 사전에 차단하는 등 기술 보호를 국가 차원의 경제 안보 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다”며 “이는 미국뿐 아니라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하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실제 해외 주요 국가들은 기술 유출을 국가 안보의 핵심 위협 요인으로 본다. 관련 법만 봐도 알 수 있다. 중국은 반간첩법, 대만은 국가안전법, 영국은 국가안보법으로 칭하고 산업스파이를 엄벌한다. 반면 한국은 산업기술보호법, 첨단전략산업법, 부정경쟁방지법 등으로 산업스파이를 다룬다.채 교수는 “핵심은 산업 보안 문제를 국가 차원의 ‘경제 방첩’으로 확대하는 것”이라며 “한번 해외로 넘어간 기술은 사실상 회수가 어렵기 때문에 사후 수사보다 사전 탐지와 예방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그러면서 “정보기관과 수사기관 그리고 관계 부처가 위험 징후를 조기에 파악하고 기업과 공유하는 체계를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채 교수는 또 “중소·중견기업과 대학·연구기관에 대한 보안 진단과 사이버 보안 및 내부자 위험관리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며 “핵심 연구자의 처우와 연구 환경을 개선하고 퇴직 기술 인력이 국내에서 계속 전문성을 활용할 수 있도록 인력 차원의 지원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제안했다.현행 산업기술보호법, 부정경쟁방지법보다 더욱 강력한 법제도 역시 필요하다고 채 교수는 강조했다. 그는 “산업스파이 가중처벌 특별법과 같은 법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다만 단순히 형량만 높이는 특별법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채 교수는 “개정 간첩법으로 전통적 간첩죄의 공백을 메웠다면, 이제는 경제 안보의 공백을 메울 법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며 “국가 핵심 기술의 조직적·계획적 해외 유출을 ‘경제 안보 침해 범죄’로 다루고, 가중처벌과 함께 알선·교사 및 범죄 수익의 몰수·추징까지 포괄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이어 “중국은 개정 반간첩법으로 국가 안전과 관련된 데이터·자료까지 보호하고, 외국 기관 등을 위한 영업비밀 절취 및 불법 제공도 별도 범죄로 처벌한다”며 “중국도 이렇게 자국 기술을 지키는데, 기술로 먹고사는 한국이 핵심 기술의 해외 유출을 일반적인 기업 범죄로만 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2026.08.24 08:00

4분 소요
1조6000억 기술 빼돌려도 6년4개월…특별법은 ‘무기징역’까지

산업 일반

삼성전자의 ‘18나노 D램 공정 기술’을 중국 반도체 기업 CXMT로 유출한 전직 임원에게 법원이 선고한 형량은 징역 6년4개월이다. 국내 기술 해외 유출 사건 가운데 역대 최고 형량이다.삼성전자가 해당 기술을 개발하는 데 투입한 비용은 약 1조6000억원이다. CXMT는 유출된 기술을 바탕으로 D램 양산에 성공했다. 피해 규모는 수십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지만 유출자에게 선고된 형량은 7년을 넘지 않았다.SK하이닉스에서도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다. 중국 국적 전직 직원은 중국 회사로 이직하는 과정에서 A4용지 4000여장 분량의 반도체 공정 관련 자료를 빼돌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징역 1년6개월과 벌금 2000만원을 선고했지만 항소심은 징역 5년과 벌금 3000만원으로 형량을 높였다.박균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 예정인 '산업스파이 가중처벌에 관한 특별법안'이 시행된 뒤 같은 범죄가 발생한다면 처벌은 어떻게 달라질까. 핵심은 기술 유출의 배후와 목적에 따라 범죄를 구분하고 징역형의 하한과 벌금, 법인 책임을 강화하는 데 있다.삼성·SK 사건, 경제이적죄 적용 가능특별법은 국가핵심산업정보 유출을 ‘경제간첩죄·경제이적죄·일반 경제이적죄’로 구분한다. 외국 정부 등을 이롭게 할 목적이면 경제간첩죄, 해외 민간기업을 위한 범행이면 경제이적죄를 적용한다. 정보가 해외에서 사용될 것을 알면서 유출했지만 구체적인 배후를 확인하지 못한 경우에는 일반 경제이적죄로 처벌한다.현재 확인된 사실관계를 기준으로 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사건에는 경제이적죄가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 기업의 이익을 위해 기술을 취득하거나 누설·반출했다는 점이 입증되는 경우다.경제이적죄 가운데 국가핵심산업정보를 직접 취득·사용·누설하거나 국외로 반출한 행위는 7년 이상의 징역과 8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형법상 유기징역의 상한이 30년인 만큼, 같은 범죄가 특별법 시행 이후 발생하면 최대 징역 30년까지 선고할 수 있다. 삼성전자 사건의 징역 6년4개월과 SK하이닉스 사건의 징역 5년보다 법정형의 하한이 높아지는 셈이다.다만 실제 선고형이 반드시 7년 이상으로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이 범행 가담 정도와 피해 회복, 자수 등 양형 사유를 고려해 법률상 감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별법은 형량을 결정하는 출발점인 법정형의 하한을 높였다는 데 의미가 있다.외국 정부나 정보·군사기관의 개입이 확인되면 경제간첩죄가 적용된다. 법정형은 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의 징역과 100억원 이하의 벌금이다. 다만 중국 기업에 기술을 넘겼다는 사실만으로 성립하지는 않는다. 해당 기업이 외국 정부의 지배·통제를 받았거나 범행이 외국 정부를 이롭게 할 목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구체적인 배후를 확인하지 못해도 기술이 해외에서 사용될 것을 알고 빼돌렸다면 일반 경제이적죄로 처벌할 수 있다. 법정형은 5년 이상의 징역과 65억원 이하의 벌금이다. 기존 법체계에서 놓칠 수 있던 유출 행위까지 단계별로 규율하려는 취지다. 형량 넘어 법인·범죄수익까지 겨냥특별법은 기술을 직접 빼돌린 개인뿐 아니라 범행에 관여한 법인도 처벌한다. 법인의 업무와 관련해 경제간첩죄가 발생하면 법인에 최대 200억원, 경제이적죄에는 최대 100억원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유출 대가로 받은 이직 보너스와 고액 연봉 등 범죄수익과 이를 통해 불린 파생재산은 몰수한다. 직접 몰수가 어려우면 그에 해당하는 금액을 추징한다. 기술을 팔아 얻은 경제적 이익을 남기지 않겠다는 것이다.처벌 범위도 국경 밖까지 확대된다. 외국인이 해외에서 국내 기업의 국가핵심산업정보를 탈취하더라도 대한민국의 경제안보를 침해했다면 특별법을 적용할 수 있다. 경제간첩죄의 공소시효는 25년으로 정하고 미수뿐 아니라 예비·음모도 처벌한다.피해기업의 수사·재판 참여도 확대한다. 피해기업은 압수된 디지털 증거를 선별·분석하는 과정에서 의견을 낼 수 있고 구속 심사와 재판 과정에도 참여할 수 있다. 증거 열람·복사 과정에서 핵심기술이 다시 노출되지 않도록 비밀유지명령을 내릴 근거도 마련했다.기술 유출 사실이 알려지면 보안 관리가 허술한 기업이라는 낙인이 찍히거나 수사·재판 과정에서 핵심 정보가 다시 노출될 수 있다. 피해기업이 신고를 주저하는 이유다. 특별법은 국가와 법무부 장관에게 피해기업 보호·지원 책무를 부여하고 신고자에게 불이익을 주지 못하도록 했다. 신고 포상금과 증인 보호 근거도 마련했다. 처벌 강화뿐 아니라 기업이 안심하고 범죄를 신고해 초기 수사에 협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취지다.특별법이 시행돼도 기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사건의 형량은 달라지지 않는다. 범죄 당시보다 무거워진 형벌을 소급해 적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별법 시행 이후 발생한 범죄부터 새로운 기준이 적용된다.모든 기술 유출 사건의 처벌이 자동으로 강화되는 것도 아니다. ▲유출된 자료가 법에서 정한 국가핵심산업정보인지 ▲피의자가 해외에서 사용될 것을 알았는지 ▲외국 정부나 기업을 이롭게 할 목적이 있었는지는 수사기관이 입증해야 한다.실제로 SK하이닉스 사건 중 일부 혐의는 해당 자료가 산업통상부 고시상 보호 대상인 첨단기술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무죄 판단을 받았다. 보호 대상의 범위가 불명확하면 특별법이 생겨도 입증 문제는 반복된다.위정현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산업스파이 가중처벌에 관한 특별법안’에 대해 “매우 시의적절한 조치”라며 “중국을 비롯한 경쟁국들이 한국의 첨단 핵심기술을 노리고 있고, 상당수 산업에서 한국을 턱밑까지 추격하거나 추월을 시도하는 상황에서 자국 기술 보호는 국가적으로 중대한 과제”라고 말했다.이어 “범죄의 중대성에 비해 현행 양형 기준은 지나치게 낮다”며 “과거와 달리 해외의 기술 탈취 위협이 커진 만큼 이제는 한국의 국력과 기술 수준에 맞춰 핵심기술을 보호할 법적 장치와 제도적 기반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26.08.24 07:30

4분 소요
산업스파이 잡을 인력 없고, 잡아도 솜방망이…뻥 뚫린 韓 기술보호망

산업 일반

대한민국 첨단산업의 심장부가 기술 유출에 위협받고 있다. 반도체·이차전지·디스플레이 등 수십년간 국가적 역량을 쏟아 세계 정상에 올려놓은 국가 핵심기술이 경쟁국으로 흘러가는 사건이 빠르게 늘고 있다.과거 기술 유출이 개별 기업의 영업비밀 침해나 사익을 노린 개인의 일탈로 여겨졌다면 지금은 다르다. 미중 패권 경쟁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에서 첨단기술 탈취는 한 국가의 산업 경쟁력과 경제 안보를 흔드는 ‘총성 없는 전쟁’으로 바뀌었다.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에 따르면 국내 핵심기술의 해외 유출 적발 건수는 2021년 9건에서 2025년 33건으로 4년 만에 3.6배 이상 증가했다. 적발 건수는 실제 유출 규모의 일부일 가능성이 크다. 기술 유출은 피해 기업이 신고하지 않거나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에야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범행을 적발해도 해당 자료가 법률상 보호 대상인 기술인지, 피의자에게 해외 사용 목적이 있었는지를 입증해야 한다.기술 유출 잡아도 입증부터 난관기술 유출에 대한 국민적 위기의식은 높다. 경총의 대국민 인식 조사에서 응답자의 92.5%는 핵심기술 해외 유출이 국가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심각하다’고 답했다. 91.4%는 주요국처럼 경제 안보 차원의 새로운 법체계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법정형만 보면 국내 처벌이 마냥 가벼운 것은 아니다. 현행 산업기술보호법은 국가 핵심기술이 외국에서 사용될 것을 알면서 유출하면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고 65억원 이하의 벌금을 함께 부과하도록 규정한다. 산업기술 해외 유출도 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억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할 수 있다.하지만 실제 선고형은 법정형에 미치지 못한다. 국내 기술 해외 유출 사건의 역대 최고 형량은 징역 6년4개월이다. 상당수 피고인이 집행유예나 벌금형을 받고, 실형이 선고돼도 비교적 단기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낮은 선고형의 원인을 법원의 관대한 판단으로만 돌리기도 어렵다. 기술 유출 범죄는 ▲유출 자료의 경제적 가치와 비밀 관리 여부 ▲국가 핵심기술 해당 여부 ▲해외 사용 목적 등을 수사기관이 입증해야 한다. 기업이 핵심 자료를 영업비밀로 충분히 관리하지 않았거나 피해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하면 혐의 입증이 어려워진다.피해 기업이 신고를 주저하는 문제도 있다. 기술 유출 사실이 알려지면 보안 체계가 허술한 기업이라는 낙인이 찍히거나 해당 기술이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추가로 노출될 수 있어서다. 신고가 늦어지면 초기 수사의 골든타임도 놓치게 된다.업계 관계자는 “유출 정황이 있어도 기업이 피해 기술의 가치와 보호 노력을 입증하지 못하면 무죄가 나올 수 있다”며 “피해 기업이 안심하고 신고하고 수사에 협조할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전문 인력 부족…수십만개 파일서 증거 찾아야국내 기술 유출 수사의 가장 큰 약점은 첨단기술을 이해하는 전문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이다. 3나노 이하 파운드리 극자외선(EUV) 공정과 8세대 OLED 증착 장비, 전고체 배터리 전해질 배합 기술 등은 공학 전문가도 장기간 연구해야 이해할 수 있는 고난도 기술이다.수사기관은 압수수색으로 수십만개의 이메일과 메신저 대화, 디지털 파일을 확보하고도 어떤 자료가 핵심기술이고 실제 유출에 사용됐는지를 가려내야 한다. 산업 지식과 디지털 포렌식 역량을 함께 갖춘 수사관이 필요하지만 이를 충족하는 인력은 부족하다.기술 분야별 전문 인력을 확보하기도 쉽지 않다. 반도체·배터리·디스플레이 전문가는 대부분 기업과 대학, 연구 기관에 몰려 있다. 공공 부문의 처우와 채용 방식으로는 현장 경험을 갖춘 고급 인력을 영입하는 데 한계가 있다. 전문성을 쌓아도 수사관이 순환보직으로 자리를 옮기면 경험과 노하우가 조직에 축적되지 않는다.결국 수사기관은 외부 전문가의 감정과 피해 기업의 설명에 상당 부분 의존한다. 이 과정에서 수사가 길어지고 양측의 기술적 주장이 충돌하면 혐의를 입증하기도 어려워진다. 기업이 영업비밀 노출을 우려해 자료 제출에 소극적으로 나서면 수사는 더 지연된다.기관별 기능이 분산된 점도 문제다. 국가정보원은 해외 연계 유출 징후를 포착하고 경찰과 검찰은 수사와 기소를, 산업통상자원부는 국가 핵심기술 여부 판단을 맡아왔다. 기관마다 전문 인력이 흩어져 있어 하나의 사건에 역량을 신속하게 집중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더욱이 오는 10월 2일 검찰청이 폐지되고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이 출범하면 관련 인지수사 기능도 새 수사 체계로 넘어간다. 검찰이 기술유출범죄 수사지원센터를 통해 축적한 전문성과 수사 경험을 중수청이 안정적으로 이어받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산업기술 유출 사건은 산업마다 범행 수법과 증거 형태가 달라 축적된 수사 노하우가 중요하다. 조직 개편 과정에서 전문 인력이 이탈하거나 사건 기록과 경험이 제대로 이전되지 않으면 초기 대응이 늦어질 수 있다. 중수청 출범 전까지 인력 배치와 사건 이관 원칙을 구체화하고, 국정원·경찰·중수청·공소청·산업부가 초기부터 공조하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해외는 수사·재판까지 전문화세계 주요국은 기술 유출을 국가안보 위협으로 규정하고 처벌과 수사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전문 수사기관과 전담재판부, 보안 심사 등 적발부터 처벌까지 이어지는 체계를 구축했다.미국은 1996년 제정한 경제스파이법(EEA)을 통해 외국 정부나 기관에 이익을 줄 목적으로 영업비밀을 탈취한 개인을 최대 15년의 징역형에 처한다. 법인에는 1000만달러(약 140억원) 또는 탈취한 영업비밀 가치의 3배 가운데 큰 금액까지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연방수사국(FBI)은 경제스파이 사건을 국가안보·방첩 문제로 다루고 연방검찰과 공조한다. 외국 정부와의 연계 여부와 자금 흐름, 기술 자료의 이동 경로 등을 추적한다.대만은 2022년 국가안전법을 개정해 ‘국가핵심관건기술’의 영업비밀을 외부 세력을 위해 빼돌리는 행위를 경제 간첩 범죄로 규율했다. 해외 유출은 5년 이상 12년 이하의 징역과 최대 1억대만달러(약 44억원)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대만은 지식재산·상사법원에 국가안보 사건을 다루는 전문 재판부도 두고 있다. 기술 이해도가 높은 법관이 사건을 신속하게 심리하고 재판 과정에서 기술 자료가 다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다.일본은 부정경쟁방지법을 통해 영업비밀을 해외에서 사용하거나 공개할 목적으로 침해하면 최대 10년의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다. 법인에는 최대 10억엔(약 88억원)의 벌금을 부과한다. 중요 경제 안보 정보를 취급하는 민관 인력의 신뢰성을 확인하는 보안 심사 제도도 도입했다.중국도 2023년 개정 반간첩법을 시행해 국가안보·이익과 관련된 문건과 데이터, 자료의 탈취를 간첩 행위에 포함했다. 국가안전 기관의 조사 권한도 확대했다.해외 사례는 형량 강화만으로 기술 유출을 막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범죄의 범위를 명확히 정하고 전문 기관이 신속하게 수사하며 기술을 이해하는 재판부가 판단해야 처벌의 실효성이 높아진다.특별법 제정에 나선 국회국회가 ‘산업스파이 가중처벌 특별법’ 제정에 나선 배경도 여기에 있다. 오는 9월 시행되는 개정 형법은 간첩죄 적용 대상을 ‘적국’에서 ‘외국 또는 이에 준하는 단체’로 확대한다. 그러나 국가 핵심기술이 형법상 국가기밀에 해당하는지 불명확하고 해외 민간기업이 배후인 기술 탈취에는 적용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박균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산업스파이 가중처벌에 관한 특별법안’을 대표 발의할 예정이다. 법안은 외국 정부 등을 위한 기술 유출을 ‘경제간첩죄’, 해외 민간기업을 위한 유출을 ‘경제이적죄’로 구분해 처벌한다. 미수뿐 아니라 예비·음모도 처벌하고 범죄수익을 몰수·추징할 수 있도록 했다.이원태 국민대 특임교수는 "산업스파이는 개별 기업의 피해를 넘어 국가 경쟁력과 경제 안보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라며 "국가 핵심기술의 조직적 해외 유출에는 원칙적으로 실형을 선고하고 유출로 얻은 이익과 해외 기업이 절감한 연구개발 비용까지 철저히 환수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산업기술 유출은 기업 한 곳의 손실을 넘어 우리 산업 생태계와 국가 경쟁력에 장기적인 영향을 주는 문제다. 처벌 강화도 필요하지만, 핵심 인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과 중소기업 및 연구 기관에 대한 보안 역량 지원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며 "기술과 인재의 정상적인 교류를 위축시키지 않으면서도 조직적인 해외 유출에는 분명한 책임을 묻는 균형 잡힌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2026.08.24 07:00

6분 소요
“노후자금 투자했는데”…소득 끊긴 은퇴자, 삼전닉스로 ‘연체’ 부메랑

증권 일반

자산 가격 급락과 금리 상승이 맞물리기 시작하면서 빚을 낸 개인들의 손실이 불어나고 있다. 특히 고령층과 청년층의 부채 부실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고령층은 주식 투자를 위해 대출을 늘렸다가 증시 급락에 손실을 보는 중이다. 청년층은 소득과 금융 이력이 부족한 탓에 제도권 금융에서 밀려나 불법사금융에 노출되는 양상이다.삼전닉스 빚투의 63%가 60대 금융권에서는 최근 대출 부실이 빠르게 늘어난 주요 배경으로 증시 하락을 꼽는다. 연초 코스피가 급등하자 일부 투자자들이 주가 하락 위험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은행과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투자했고, 이후 증시가 하락하면서 투자 손실이 대출 상환 부담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특히 경제활동이 활발한 30~40대보다 은퇴 시기에 접어든 60대 이상과 경제력이 부족한 20대 이하에서 부채 부실 징후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고령층은 증권담보대출을 중심으로 위험이 커진 반면, 청년층은 은행 대출을 이용하기 어려워지면서 고금리 대출이나 불법사금융으로 밀려날 가능성이 높아지는 모습이다.30~40대의 경우 빚투에 나서더라도 연체가 발생하지 않을 만큼 일정한 소득과 상환 여력을 갖춘 경우가 많다. 하지만 20대 이하 청년층과 60대 이상 고령층은 상대적으로 소득 기반이 취약해 투자 손실이 곧바로 대출 연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실제로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 소속 이종욱 의원(국민의힘)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의 개인 신용한도대출(마이너스통장) 연체율은 올해 6월 말 기준 0.22%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 0.18%보다 0.04%포인트(p) 상승했다. 같은 기간 마이너스통장 잔액은 39조9000억원에서 43조3000억원으로 8.5% 증가했고, 연체액은 711억원에서 947억원으로 33.2% 늘어나 더 빠른 증가세를 보였다. 5대 은행의 마이너스통장 한도 소진율은 6월 말 약 45%로 전체적으로는 추가 대출 여력이 남아 있지만, 일부 차주는 한도를 모두 소진해 이자조차 제때 내지 못한 것으로 여겨진다. 연령별에서 드러나는 연체율 격차는 뚜렷했다. 60대 이상 차주의 마이너스통장 연체율은 0.37%로 전체 평균보다 0.15%p 높았다. 20대 이하도 0.33%로 평균을 0.11%p 웃돌았다. 반면 30대와 40대는 각각 0.19%, 50대는 0.21%로 전체 평균보다 낮았다. 마이너스통장을 포함한 전체 신용대출에서도 20대 이하 연체율은 0.67%, 60대 이상은 0.59%로 전체 평균인 0.35%를 크게 웃돌았다.특히 고령층이 빚을 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올해 급등한 반도체 주식에 투자하려고 한 정황도 확인된다. 국내 10개 종합금융투자사업자가 삼성전자·SK하이닉스·SK스퀘어·삼성전자우·삼성전기 등 시가총액 상위 5개 종목을 담보로 실행한 증권담보대출 잔액은 지난 5월 말 2조9027억원이었다. 지난해보다 24.3% 증가한 규모다.이 가운데 60대 이상 차주의 대출 잔액은 1조8283억원으로 전체의 63.0%에 달했다. 이어 ▲50대 5933억원(20.4%) ▲40대 3385억원(11.7%) ▲30대 956억원(3.3%) ▲20대 57억원(0.2%) 등이 뒤를 이었다. 은퇴 등으로 정기적인 소득이 줄어드는 시기에 있는 고령층이 보유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늘렸다는 점에서 주가 하락과 이자 부담이 동시에 닥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증권담보대출은 담보로 맡긴 주식 가격이 하락해 담보유지비율을 밑돌면 투자자가 현금이나 주식을 추가로 납입해야 하는 만큼 반대매매 위험이 높다. 올해 5월까지 대출이 증가한 뒤 7~8월 증시가 큰 폭의 조정을 받은 상황이어서 담보가치가 떨어진 차주의 추가 납입 및 상환 부담도 커졌을 것으로 보인다. 저소득 청년들, 불법사금융으로청년층은 고령층과 다른 경로로 부채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 20대의 경우엔 같은 방식의 투자를 했어도 위험 상황에 더 빠르게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 소득과 보유 자산이 적고 금융 거래 이력이 짧기 때문에 은행 대출이 제한될 가능성이 높아서다. 투자한 자산의 가치가 급락할 경우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고금리 대출이나 불법사금융으로 밀려날 수 있다는 분석이다.서민금융연구원이 최근 3년 이내 대부업이나 사금융을 이용한 저신용자 977명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9.4%는 등록 대부업체에서 대출을 거절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또 지난해 대부업체를 이용하지 못하고 불법사금융으로 이동한 저신용자를 5만9000~11만9000명으로 추산했다. 이들이 이용한 금액은 7600억~1조5500억원으로 전년의 약 2배 수준으로 분석됐다.특히 20대는 등록 대부업체와 불법사금융을 동시에 이용하는 비율이 8.9%로 전 연령대 가운데 가장 높았다. 제도권 금융에서 자금을 구하지 못한 청년이 급전을 마련하기 위해 여러 고금리 채무를 동시에 떠안는 다중채무 구조에 빠질 가능성이 그만큼 크다는 분석이다.한 은행 관계자는 “청년층과 고령층은 상환 여력이 상대적으로 취약해 자산 가격이 급락하거나 이자 부담이 높아지면 연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대출 규모뿐 아니라 차주의 연령과 소득, 자금 용도 등을 함께 살펴 선제적으로 부실 위험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2026.08.24 07:00

4분 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