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70만 보호법인가, 골목상권 청구서인가]④
프리랜서 계약이 형사 리스크로 비화
입증 책임 전환에 채용 위축 우려
[이코노미스트 박세진 기자] 국내 기업들이 프리랜서 계약을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 정부가 추진 중인 근로자 추정제 도입 논의가 본격화하면서다. 근로자 추정제는 노무를 제공한 사실이 확인되면 우선 근로자로 추정하고, 사업주가 이를 방증하도록 하는 제도다.
지금까지는 노동자가 "사실상 근로자였다"는 점을 입증해야 했다면, 앞으로는 기업이 "근로자가 아니었다"는 점을 증명해야 하는 구조로 바뀌게 된다. 아직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은 것은 아니지만, 기업들은 계약서 문구는 물론 프리랜서·용역·위탁 등 외부 인력 운용 방식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예컨대 프리랜서 계약을 맺었더라도 회사가 출퇴근 시간을 정하고 업무를 직접 지시했다면 근로자성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 현재는 노동자가 이를 주장·입증해야 하지만, 근로자 추정제가 도입되면 기업이 독립적인 계약 관계였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입증 책임의 방향이 뒤바뀌는 셈이다.
"기업에 부담이 큰 제도."
근로자 추정제를 두고 한 재계 관계자가 내놓은 짧은 평가다. 기업들이 긴장하는 이유는 프리랜서 한 명의 지위 변화에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근로자로 인정될 경우 ▲최저임금과 주52시간제 ▲퇴직금 ▲주휴수당 ▲4대 보험 등 노동관계법 적용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
복수의 기업 관계자는 "근로자 추정제는 특정 프리랜서 계약 하나를 손보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그동안 여러 형태로 운영해 온 외부 인력 전반에 대해 근로자가 아니라는 점을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사실상 기업이 부담해야 할 법적 책임 범위가 넓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 현장에는 다양한 계약 구조가 이미 자리 잡고 있다"며 "이들을 모두 직접 고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실제 업무가 사업장 안에서 이뤄졌다는 이유만으로 근로자성 논란이 확대된다면 기업 부담은 상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근로자 추정제가 도입된다고 곧바로 채용 감소를 단정할 수는 없지만, 법적 리스크와 비용 부담이 커질수록 기업들은 핵심 인력 외 채용을 줄이거나 인공지능(AI)·자동화 투자를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노동관계법 적용 범위가 넓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법조계 관계자는 "사용자가 근로자가 아니라는 점을 입증하지 못하면 근로계약 관계가 인정될 가능성이 커진다"며 "▲최저임금과 근로 시간 ▲산재 ▲휴일·휴가 등 지금까지 적용되지 않았던 노동관계법이 함께 적용될 여지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계약보다 바뀌는 건 인력 운용 방식
기업들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단순히 분쟁이 늘어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분쟁이 임금 체불이나 퇴직금 지급 문제를 넘어 근로기준법 위반에 따른 형사처벌 리스크로까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기업들이 가장 부담으로 꼽는 부분은 이른바 '부존재의 입증'이다.
업무 지시가 있었다는 사실은 ▲메신저 대화나 이메일 ▲회의록 ▲업무 배정 기록 등으로 비교적 확인하기 쉽다.
반면 업무 지시가 없었다는 사실이나 출퇴근을 관리하지 않았다는 점, 회사 조직에 편입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자료로 입증하기가 훨씬 어렵다. 현장에서 오간 협업이나 품질 관리 지시마저 지휘·감독의 근거로 해석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이광선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근로자 추정제가 도입되면 직접 노무를 제공했다는 사실만으로 해당 노무제공자가 근로자로 추정된다"며 "회사가 근로자가 아니라는 점을 입증하지 못하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될 수 있고, 퇴직금과 연차수당, 임금 미지급은 물론 근로기준법 위반에 따른 형사처벌 리스크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도급·용역업체를 사이에 둔 계약 구조도 새로운 쟁점이다. 기업이 프리랜서와 직접 계약하지 않았더라도 실제 업무 지시와 관리가 원청 중심으로 이뤄졌다면 책임 소재를 둘러싼 법적 분쟁이 원청으로 향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변호사는 "문제는 회사와 직접 계약한 프리랜서만의 문제가 아니다"며 "도급이나 용역업체 등 이른바 도관업체가 중간에 있더라도 실제 업무를 지시하고 노무를 제공받은 주체가 원회사라고 판단되면 노무제공자가 원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법안의 향방을 예의주시하면서 대응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출퇴근 관리나 직접 업무 지시를 최소화하고 계약서상 독립성을 강화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면, 앞으로는 근로관계가 아니라는 점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어떻게 남길 것인지까지 대비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일부 기업들은 계약서 문구뿐 아니라 ▲보고 체계와 업무 지시 방식 ▲장비 제공 여부 ▲정산 구조 등 인력 운용 전반에 미칠 영향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변호사는 "기존에는 종속성을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했다면 앞으로는 회사가 근로관계가 아니라는 점을 적극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자료 확보가 더욱 중요해질 수 있다"며 "계약서 문구를 손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고, 실제 ▲업무 운영 방식 ▲지휘·감독 체계 ▲보고 체계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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