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
살 게 없는 홈플러스의 '살길'…'한국판 트레이더 조' 실험 성공할까
- ‘차별화’ 핵심…자금 부족·신뢰도 회복 과제
매장 규모 차이 커…높은 상품 회전율 확보가 관건
[이코노미스트 강예슬 기자] “살 게 없네.”
지난 9월 7일 오후 방문한 서울 마포구 홈플러스 합정점은 한산했다. 지난 8월 13일 홈플러스가 전국 67개 매장 영업을 재개한 지 약 한 달 만이다.
매장 곳곳에선 매대에 제품을 진열하는 직원들 사이로 카트를 끌고 돌아다니는 고객 몇몇이 보였다. 지난 7월 13일 홈플러스 전 점포가 일제히 임시 휴업에 돌입하기 직전보단 매대가 제법 채워졌지만, 대부분의 소비자는 찾는 상품이 없어 한참을 헤맸다.
냉장식품 매대 앞에서 만난 60대 중반 주부 홍모씨는 “떡볶이 재료를 사러 왔는데 떡볶이 떡이 홈플러스의 자체브랜드(PB)인 ‘심플러스’(simplus) 제품밖에 없어 어쩔 수 없이 담았다”며 “근처에 사는데 멀리 가기 싫어 홈플러스를 자주 이용하지만 대부분 PB 상품이라 장보기가 힘들다”고 전했다.
‘단층 매장·PB 중심’ 운영 효율 극대화
이날 찾은 홈플러스 합정점은 예상보단 구색을 갖춘 모습이었다. 7월 초까지만 해도 텅 비었던 매대는 콜라·사이다 등 음료를 비롯해 소주·맥주 등 주류와 물, 과자, 정육, 해산물, 과일 등으로 채워졌다.
다만 홈플러스가 영업을 재개하며 납품 대금을 선지급할 수 있는 범위에서만 제품을 공급받는 만큼 상품 구색과 물량은 아직 충분히 회복되지 않은 상황이다.
냉장 식품이 진열돼야 할 공간에는 나무 주걱과 도마, 투명 정리함 등이 대신 놓였다. 매장 한가운데엔 다이소처럼 ▲청소용품 ▲조리 도구 ▲주방용품 등 생활용품을 균일가에 판매하는 매대를 마련했다.
부실한 상품군 속에서 유일하게 진열대를 빼곡히 채운 건 ‘심플러스’의 ▲과자 ▲냉동 과일 ▲냉동 피자 등 PB 제품뿐이었다.
PB는 홈플러스가 내세운 ‘살길’이다. 홈플러스는 지난 7월 22일 “영업을 재개할 핵심 점포 67곳은 일반 대형마트와 달리 미국 유통업체 ‘트레이더 조’(Trader Joe’s)와 유사한 방식으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1967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패서디나에서 출발한 트레이더 조는 전체 상품의 80% 이상이 PB인 PB 전문 슈퍼마켓이다. 대형마트보다 작은 규모의 매장에서 식품과 생필품을 주로 판매한다. 트레이더 조 매장의 단위 면적당 매출은 일반적인 미국 식료품 마트 평균 매출의 두 배를 웃돈다.
홈플러스는 “트레이더 조처럼 특정 제품에 집중한 상품 구성을 통해 적은 자금으로 매장 운영 효율을 극대화하겠다”면서 “전자상거래(이커머스) 업체와의 경쟁 환경에서 홈플러스의 회생과 정상화를 위해 필요한 전략적 대응”이라고 설명했다.
홈플러스는 점포를 재개장하며 기존 복층이던 매장을 3306㎡(약 1000평) 규모의 단층으로 줄였다. 제품군도 식품과 PB, 회전율이 높은 생필품 중심으로 재편했다.
“실현 가능성 없어…답은 매각뿐”
‘한국판 트레이더 조’ 전략은 새로운 성장 전략이라기보단 홈플러스가 회생 과정에서 택할 수밖에 없는 ‘고육지책’에 가깝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레이더 조와 홈플러스의 PB 전략은 출발점부터 다르다. 트레이더 조는 일반 대형마트보다 취급 품목 수가 적은 대신 PB를 중심으로 엄선한 상품을 선보인다. 트레이더 조가 소금·꿀 등 자체 제품을 내놓을 때마다 ‘오픈런’이 벌어질 정도로 트레이더 조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는 굳건하다.
미국 전역에서 선풍적 인기를 끈 ‘한국산 냉동 김밥’, 출시 때마다 품절 대란을 빚는 ‘미니 캔버스 토트백’ 등 차별화 상품이 트레이더 조의 경쟁력으로 꼽힌다.
트레이더 조와 같은 전략을 펼치기 위해서는 강한 자본력과 신뢰, 상품 기획력 등을 바탕으로 납품업체와 독점적 공급 계약을 맺어야 한다.
홈플러스가 긴급운영자금(DIP)으로 확보한 2000억원은 대형마트를 운영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업계에 따르면 대형마트 매장 1곳을 채우는 데 필요한 비용은 30억~35억원 수준이다. 67개 매장에 물건을 진열하는 데만 2000억원을 다 써야 하는 셈이다.
납품업체와의 관계 회복도 문제다. 홈플러스가 지급하지 못한 납품 대금은 총 5032억원에 달한다. 회생채권과 달리 전액 갚아야 하는 공익채권이다. 납품업체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 홈플러스가 영업을 통해 자체적으로 현금을 만들어내기 어렵다.
업계 관계자는 “PB 전략이 성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낮은 비용으로 질 좋은 제품을 공급할 수 있는 협력업체를 찾는 일”이라며 “홈플러스가 이미 대금 미정산으로 제조사의 신뢰를 잃은 상황에서 기술력을 갖춘 납품업체가 홈플러스와 손을 잡으려 할지 의문”이라고 했다.
이종우 남서울대 유통마케팅학과 교수는 “홈플러스가 내세운 트레이더 조 전략은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다”면서 “트레이더 조는 매장 크기가 한국의 중형마트 수준인데 대형마트인 홈플러스에서 트레이더 조처럼 소품종 PB 상품을 판매하기엔 규모 차이가 너무 크다”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PB 중심으로 매장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상품 회전율이 높아야 하는데 대다수의 고객이 이탈하고 협력사 확보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PB만으로 경쟁력을 확보하긴 어렵다”며 “현재 홈플러스가 유일하게 다시 살아날 방법은 매각뿐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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