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반
“연봉 더 드립니다”…AI 시대 몸값 뛴 직장인 따로 있었다
- [AI가 다시 매긴 직장인 몸값②]
AI 사용자 업무처리량 평균 21.2%↑…경험·판단력 중요성은 오히려 커져
AI 활용 효과 큰 직업군 고용 증가세…중고노출군 임금 3년간 12.7%↑
초급 업무는 AI가 대신해도 검증·해석은 사람 몫…경력직 가치 재평가
[이코노미스트 김정민 경제전문기자] 오후 4시40분. 송 과장은 김 부장에게 다음 날 임원회의에 올릴 보고서를 보냈다.
“부장님, 보고서 메일로 보내드렸습니다.”
김 부장이 시계를 한번 쳐다봤다.
“벌써 다 했어?”
“네. 숫자만 한 번 더 확인했습니다.”
송 과장의 업무는 1년 전보다 늘었다.
밤사이 나온 업계 뉴스와 경쟁사 동향을 파악하고, 회의가 끝나면 주요 결정사항과 후속 업무를 정리한다. 시장 동향을 조사하고 경쟁사의 실적을 비교한 보고서를 만드는 일도 송 과장의 몫이다. 김 부장이 지시한 임원 보고서 초안 작업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을 권 사원이 했다.
권 사원이 관련 기사를 찾아 정리하고 경쟁사 실적을 엑셀에 입력했다. 회의록을 작성하고 보고서에 필요한 자료를 모아 초안을 만들면 송 과장이 이를 검토했다.
회사에서 생성형 AI를 보급한 뒤 업무 방식이 달라졌다.
송 과장이 AI에 경쟁사와 분석 기간을 지정하면 관련 뉴스와 공시자료를 토대로 초벌 자료가 만들어진다. 회의 녹취를 입력하면 회의 내용과 주요 결정사항도 정리해 알려준다. 경쟁사 실적 자료를 넣으면 비교표와 보고서 초안도 금세 만들어낸다.
권 사원이 하던 기초 작업을 AI가 맡고, 송 과장은 AI가 만든 결과를 검증하고 판단하는 식이다.
그러나 일은 늘었는데 오히려 시간은 남는다.
예전에는 권 사원에게 업무를 설명하고 결과물을 기다려야 했다. 숫자가 틀리면 다시 확인하도록 하고, 보고서 근거와 데이터가 부족하면 수정 방향을 설명해 다시 써오게 했다. 자료를 직접 찾고 검토하는 시간 못지않게 권 사원의 일을 확인하고 가르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AI는 다르다.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다시 지시하면 된다. 자료가 부족하면 추가로 찾게 하고, 보고서의 방향이 틀리면 조건을 바꿔 다시 작성시킨다. 송 과장이 직접 자료를 찾고 표를 만들고 초안을 쓰는 시간뿐 아니라 누군가에게 일을 맡기고 기다리고 고치는 시간까지 줄었다.
그래도 여전히 송 과장이 해야 할 일은 적지 않다.
AI가 가져온 숫자가 맞는지, 수십 개의 뉴스 가운데 어떤 것이 중요한지, 경쟁사 실적 변화가 회사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송 과장이 판단해야 한다. 김 부장이 왜 이 보고서를 요구했는지, 다음 날 임원회의에서 어떤 질문이 나올지 예상해 보고서 방향을 정하는 일도 오롯이 송 과장 몫이다.
◇ AI 쓰는 직장인 "업무처리량 21.2% 늘었다"
송 과장에게만 일어난 변화는 아니다.
국회예산정책처가 9월 발간한 ‘생성형 AI의 노동시장 영향’ 보고서를 보면 국내 화이트칼라 직장인 10명 중 7~8명은 이미 AI를 업무에 활용하고 있다.
예정처가 화이트칼라 중심 57개 직업 재직자 1512명을 조사한 결과 76.1%가 생성형 AI를 업무에 사용한다고 답했다. 이들이 스스로 평가한 업무처리량은 AI 사용 이후 평균 21.2% 늘었다.
다만 AI를 사용한다고 모든 직장인의 생산성이 똑같이 높아진 것은 아니다.
직업별 평균 업무처리량 증가율(AI 미사용자 포함)은 최저 4.0%에서 최고 64.7%까지 편차가 크다.
네트워크·정보보안·데이터 관련 전문가가 64.7%로 가장 높았고 문화·예술 기획자 및 매니저(60.7%), 소프트웨어 개발자(42.9%)가 뒤를 이었다.
자연과학 연구원·시험원(25.9%), 전문서비스 관리자(25.5%), 금융·보험 전문가(21.9%), 법률 전문가(17.6%) 등도 높은 편이다.
기자·언론 전문가도 14.7%, 광고·조사·상품기획·행사기획 전문가는 업무처리량이 13.1% 늘었다. 반면 경영·인사 전문가(10.3%), 회계·세무·감정 전문가(9.0%)는 상대적으로 낮았다.
송 과장처럼 AI가 만든 결과물을 활용할 수 있는 전문성과 경험을 가진 직장인에게 AI는 경쟁자가 아닌 생산성을 높여주는 도구로 쓰이고 있다. AI가 축적된 경험과 이를 토대로 한 판단력까지 대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정처 조사에서 응답자의 39.1%는 생성형 AI를 사용한 이후 오히려 경험과 판단력 등 인간 고유의 능력이 더 중요해졌다고 답했다. 덜 중요해졌다는 응답은 20.3%에 그쳤다.
◇ AI 시대 ‘일잘러’ 송 과장 일자리 늘고 몸값 올랐다
오후 5시 30분 송 과장의 휴대전화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송○○ 과장님 맞으시죠?”
헤드헌터였다. 경쟁사에서 경력직을 찾고 있는데 지원해 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이다. 사업기획과 데이터 분석 경험을 갖추고 생성형 AI를 실제 업무에 능숙하게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급여 등 조건도 지금 회사보다 좋았다. 전화를 끊은 송 과장은 잠시 생각했다.
"집도 장만해야 하는데, 회사를 옮겨 볼까?"
송 과장 같은 '일잘러'에게 AI는 새로운 기회의 문을 여는 열쇠다.
국회예산정책처가 고용노동부 고용행정통계를 분석한 결과 20~59세 핵심연령대 고용은 챗GPT가 출시된 2022년 11월 이후 전반적으로 완만한 증가세를 이어갔다.
특히 생성형 AI를 활용했을 때 업무처리량 증가 폭이 상위 25~50%에 해당하는 ‘중고노출 직업군’의 고용 증가세가 가장 두드러졌다.
중고노출군에는 송 과장처럼 전문지식과 실무 경험을 활용하는 화이트칼라 직업이 다수 포함돼 있다.
생명과학 연구원·시험원, 전기·전자공학 기술자·시험원, 컴퓨터시스템 전문가, 기계·로봇공학 기술자·시험원, 금융·보험 영업원, 기자·언론 전문가, 법률 사무원, 광고·조사·상품기획·행사기획 전문가 등이다. 이들 직업군의 AI 활용에 따른 업무처리량 증가율은 평균 15.4%다.
고용뿐 아니라 임금에서도 차이가 나타났다.
국회예산정책처가 국가데이터처 지역별고용조사를 분석한 결과 AI를 활용했을 때 업무처리량 증가 폭이 큰 직업일수록 월평균 임금 수준도 대체로 높았다. 2022년 하반기부터 2025년 하반기까지의 임금 상승률에서도 차이가 났다.
중고노출 직업군의 월평균 임금은 3년간 12.7% 올랐다. AI 활용에 따른 업무처리량 증가 폭이 가장 큰 고노출 직업군도 11.8% 상승했다. 저노출(9.4%)과 중저노출(9.0%) 직업군이 뒤를 이었고, 비노출 직업군의 임금 상승률은 7.3%에 그쳤다. 중고노출 직업군과의 격차는 5.4%포인트다.
퇴근길 지하철에 앉은 송 과장이 휴대전화를 꺼냈다. 헤드헌터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
“이직 의사가 있으시면 다음 주 중 미팅을 잡겠습니다.”
송 과장은 잠시 화면을 바라보다 답장을 보냈다.
“내일까지 이력서 보내겠습니다.”
송 과장이 더 좋은 조건을 찾아 회사를 떠난다면 문제가 하나 남는다.
권 사원이 곧바로 송 과장이 하던 일을 대신하기는 어렵다. AI가 자료를 찾고 보고서를 써줄 수는 있어도 이를 검증하고 해석해 판단하는 데 필요한 경험까지 만들어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회사는 또 다른 송 과장을 찾아야 한다. 그마저 없다면 그 빈자리는 김 부장의 몫이 된다.
25년 차 김 부장.
권 사원의 일을 AI가 대신하고, 송 과장마저 AI로 더 많은 일을 해내는 시대다.
그런데도 회사에는 여전히 김 부장이 필요할까? AI 시대에도 김 부장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3편에선 25년차 김 부장이 왜 AI시대에 중요한 인재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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