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일반
전기가 있어도 보낼 길이 없다…AI데이터센터 첫 장벽 ‘전력망’
- [AI 데이터센터, 4개의 벽 넘어라]①
수도권 데이터센터 전기사용 신청 승인 1.9%에 그쳐
전력 수요 더 큰 AIDC…송전망·변전소 포화부터 풀어야
[이코노미스트 원태영 기자] 인공지능(AI) 개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그 심장부인 데이터센터(DC) 수요도 급증하고 있다. 그러나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만 확보한다고 AIDC를 지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첫 번째 장벽은 전력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의 ‘전력계통영향평가 시범운영’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8월부터 올해 3월까지 접수된 데이터센터(AIDC 포함) 전기사용 1차 기술검토 신청 736건 중 522건(71%)이 수도권에 집중됐다. 이 중 최종 공급가능 승인을 받은 사업은 10건으로 전체 신청건수의 1.9%에 그쳤다. 일반 데이터센터보다 더 큰 전력을 소모하는 AIDC는 승인받기가 더 어려울 전망이다.
100MW 필요한 AIDC…부지보다 전력 접속부터
AIDC가 요구하는 전력은 기존 데이터센터와 차원이 다르다. 일반 데이터센터의 랙(서버가 들어찬 선반형 장치)당 전력 밀도는 5~10kW 수준이지만 GPU를 촘촘하게 배치한 AIDC는 40~100kW 이상으로 올라간다.
냉각수 펌프 등 각종 설비까지 고려하면 단일 AIDC의 수전용량도 과거 20~30MW에서 100MW 이상으로 커지고 있다. 1GW급 원전 한 기 출력의 10분의 1을 24시간 끊김 없이 요구하는 규모다. GPU를 확보해도 전력 공급이 늦어지면 수조원을 들인 데이터센터를 가동할 수 없다.
기업이 부지를 확보했다고 바로 전기를 공급받는 것도 아니다. 사업자가 한국전력공사에 대용량 전력 공급을 신청하면 한전은 인근 송배전망이 추가 부하를 감당할 수 있는지 검토한다. 10MW 이상을 사용하는 시설은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에 따라 전력계통영향평가도 받아야 한다.
수도권에서는 이 문턱을 넘기가 특히 어렵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집계한 2029년까지의 신규 데이터센터 수요는 732개, 필요 전력은 4만9397MW에 달한다. 80% 이상이 수도권에 몰릴 것으로 예상됐지만 발전소는 해안과 비수도권에 주로 자리 잡고 있다.
송전망 건설에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반영된 송전망 사업 54개 가운데 약 20개가 주민 반대와 지방자치단체 인허가 지연 등으로 계획보다 늦어지고 있다.
강원 신평창변전소는 준공 시점이 2016년에서 2028년으로 밀렸다. 동해안의 전력을 수도권으로 보내는 동해안~동서울 초고압직류송전(HVDC) 사업도 동서울변환소 증설이 늦어지면서 완공 목표가 2019년에서 2027년 이후로 미뤄졌다.
전력이 남는 비수도권으로 옮기면 계통 문제는 줄일 수 있지만 통신 비용과 고객 접근성이라는 부담이 생긴다. 업계에서는 40MW 규모 데이터센터가 수도권에서 약 100㎞ 떨어진 지역으로 이전하면 통신 회선 비용이 연간 약 50억원 늘어날 수 있다고 본다. 기업이 수도권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다.
국회가 지난 5월 처리한 AIDC 특별법은 비수도권 분산을 유도하는 장치를 담았다. 내년 3월 시행되는 특별법은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비수도권 AIDC의 전력계통영향평가를 면제할 수 있는 근거와 인허가 타임아웃제를 마련했다.
하지만 평가를 면제한다고 없던 전력망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원자력발전 직접전력구매계약(PPA)은 반영되지 않았고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사업자와 AIDC 사업자 간 PPA 특례도 빠졌다. 송전선로 경과 지역의 주민 수용성 대책도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美는 원전 장기계약…韓은 비수도권 분산부터
미국 빅테크는 원전을 포함한 무탄소 전원을 장기계약으로 확보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콘스텔레이션에너지와 20년 PPA를 맺고 재가동되는 스리마일섬 원전 1호기의 835MW 발전량을 PJM 지역 데이터센터의 전력 사용량과 연계한다.
아마존도 탈렌에너지와 계약을 확대해 2042년까지 최대 1920MW의 원자력 전력을 공급받기로 했다. AI 연산 수요 증가에 대응할 기반을 미리 확보한 것이다.
한국의 현행 직접 PPA는 재생에너지 중심이다. 태양광과 풍력은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달라 24시간 가동하는 AIDC의 수요를 맞추려면 전력망과 에너지저장장치(ESS), 안정적인 보완 전원이 함께 필요하다.
해법은 단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당장은 발전 설비와 송전망에 여유가 있는 호남·영남·영동권 등 비수도권에서 AIDC를 먼저 늘리는 것이 현실적이다. 사업자도 부지부터 매입할 것이 아니라 인근 변전소의 접속 가능 용량과 공급 시기, 전력망 보강 비용을 먼저 확인해야 한다.
정부는 비수도권 이전에 따른 통신 비용과 입지 불이익을 줄일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지역별 전력망 여유와 접속 가능 시기를 공개하고, 송전망 건설 지역에는 보상과 주민 편익을 연계해 수용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이후 송전망이 보강된 지역부터 수도권 접속을 단계적으로 허용할 수 있다.
박종배 건국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수도권은 송전망 건설이 지연돼 신규 접속이 힘든 상황”이라며 “대규모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는 현재로서는 어렵고 2030년 이후에나 가능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이어 “호남권과 영남권, 영동권 등은 송전망 접속이 가능하고 발전 설비에도 여유가 있다”며 “해당 지역으로 가면 송전망 보강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장기적으로는 신규 안정 전원을 확충해야 한다. 다만 기존 원전 전력을 특정 데이터센터에 우선 공급하면 다른 소비자가 비용을 나눠 부담할 수 있어 기존 원전 PPA를 곧바로 허용하기 어렵다.
박 교수는 AIDC 사업자가 신규 소형모듈원자로(SMR) 등 데이터센터 추가 수요에 맞춰 새로 건설하는 전원은 다른 문제라고 봤다. 그는 “신규 SMR 건설은 가능하지만 관련 규제와 인허가를 뒷받침할 법적 근거가 아직 충분히 정착되지 않았다”며 “정부가 적극적으로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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