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일반
AI 반도체 슈퍼사이클의 역설…호황 뒤에 쌓이는 ‘청구서’
- [AI 반도체 패권전쟁]④
코어위브 부채 500억달러…AI 인프라 기업 자금 조달 부담 커져
오픈AI·빅테크 수익화 속도가 GPU·HBM 수요 지속 여부 가를 변수
[이코노미스트 정길준 기자] 인공지능(AI) 반도체 슈퍼사이클을 이끄는 천문학적 투자가 수익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를 두고 시장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투자금 회수가 늦어지면 설비 증설과 반도체 수요가 둔화할 수 있어서다. AI 투자 경쟁의 다음 변수가 ‘얼마나 투자하느냐’에서 ‘얼마나 회수하느냐’로 옮겨가고 있다.
AI 인프라 투자, 자금 조달이 변수
엔비디아의 지원을 받아 급성장한 미국 AI 클라우드 기업 코어위브는 약 500억달러(약 71조원)의 부채를 안고 있다. 이달 중순에는 코어위브의 2031년 만기 회사채 수익률이 한때 16%를 넘어섰다. 일반적인 우량 기업의 회사채 금리가 연 4~5% 안팎에서 형성되는 것과 비교하면 투자 부적격 수준에 해당한다.
AI 인프라 투자에 필요한 자금을 빌린 기업의 상환 능력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코어위브의 회사채 가격이 떨어진 결과다. 이는 시장이 코어위브의 신용 위험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의미로, 향후 추가 자금 조달에도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코어위브의 재무 상황은 이러한 우려가 나온 배경을 보여준다. 회사는 2025년 매출 51억달러(약 7조2400억원)를 기록했지만 12억달러(약 1조7000억원)의 순손실을 냈다. 증권가는 2026년 매출이 130억달러(약 18조4600억원) 수준으로 늘어나지만 연간 순손실도 21억3000만달러(약 3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코어위브는 대규모 수주 잔고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GPU와 데이터센터를 먼저 구축하는 데 필요한 투자비와 금융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수요와 수주가 충분하더라도 이를 수익으로 연결하고 투자금을 회수하는 일은 별개의 문제다.
시장에서는 코어위브를 개별 기업의 문제를 넘어 AI 인프라 투자 구조를 가늠할 수 있는 사례로 보고 있다. AI 클라우드 사업자는 데이터센터와 GPU에 먼저 투자한 뒤 서비스 매출을 통해 자금을 회수한다. 이 과정에서 매출과 현금흐름이 발생하기 전에 금융비용을 부담하면 사업 확장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AI 인프라 기업들이 2030년까지 약 7조달러(약 9940조원)를 투자할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같은 기간 기업과 소비자에게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AI 매출은 약 3조6000억달러(약 5112조원)에 그친다. 투자비와 금융비용, 목표 수익률까지 충당하려면 약 8조5000억달러(약 1경2070조원)의 매출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윌 좀머 가트너 애널리스트는 “다양한 AI 연산 작업을 처리하기 위해 등장한 신생 클라우드 사업자의 80% 이상이 2030년까지 인수·합병(M&A)이나 파트너십, 사업 실패 등을 통해 독립적인 운영을 중단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신생 사업자가 급증한 현재 상황을 ‘캄브리아기 대폭발’에 비유했다.
오픈AI 수익화·빅테크 투자 회수 주목
AI 모델 개발사의 수익화 속도도 투자 회수 전망을 좌우할 변수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오픈AI의 올해 매출이 360억달러(약 51조12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올해부터 2030년까지 누적 잉여현금흐름 적자는 2780억달러(약 394조7600억원)에 이를 수 있다고 전했다.
매출이 빠르게 늘어나더라도 컴퓨팅 자원 확보와 인프라 확장에 들어가는 비용이 크면 현금흐름이 개선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의미다.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는 마이크로소프트도 투자와 회수 속도를 조율하고 있다. 회사의 2026회계연도 4분기 설비투자액은 410억달러(약 58조2200억원)였다. 이 가운데 약 3분의 2는 GPU와 중앙처리장치(CPU) 등 상대적으로 수명이 짧은 자산에 투입됐다.
현금 기준 유형자산 지출은 358억달러(약 50조8400억원)였다. 영업활동 현금흐름은 554억달러(약 78조6700억원)였지만 설비투자 등을 반영한 잉여현금흐름은 196억달러(약 27조8300억원)로 줄었다.
막대한 인프라 투자는 클라우드 사업 성장으로 이어졌다. 같은 분기 마이크로소프트의 클라우드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27% 늘어난 593억달러(약 84조2100억원)를 기록했다. 다만 클라우드 매출 전체를 AI 매출로 단정할 수 없고 설비투자 역시 AI에만 투입된 것은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데이터센터와 사무용 건물의 회계상 내용연수를 15년에서 25년으로 늘리기로 했다. 감가상각비를 반영하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연간 비용 부담이 줄어드는 효과가 발생한다. 회사는 실제 운영 경험과 예상 사용 기간을 반영한 조정이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폭증하는 AI 인프라 투자의 감가상각 부담을 분산하고 대규모 자본 지출 속도를 조율하기 위한 대응으로도 해석한다.
국내에서도 AI 반도체 주도권을 잡기 위한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3월 시설과 연구개발(R&D)에 110조원 이상을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메모리와 파운드리, 첨단 패키징 역량을 바탕으로 AI 반도체 시장의 경쟁력을 높이고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고부가 메모리의 입지를 강화한다는 구상이다.
삼성전자 측은 “AI 기반 혁신을 바탕으로 AI와 첨단 로봇 등 미래형 사업 구조로 재편해 중장기 성장 동력을 확보할 것”이라고 밝혔다.
업계는 투자 회수 논란이 곧바로 AI 수요의 정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진단한다. 다만 빅테크와 AI 기업이 투자 속도를 조절하거나 자금 조달에 차질을 빚으면 반도체 수요를 흔드는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AI 반도체 호황이 지속되려면 늘어나는 연산 수요를 실제 매출과 현금흐름으로 전환하는 능력도 검증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내 한 AI 스타트업 대표는 “AI 컴퓨팅 수요에는 의심이 없다”며 “2030년까지는 수요가 공급을 압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결국 높은 수요를 감당하기 위한 설비투자 자금의 금리가 올라 생기는 ‘돈의 병목’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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