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실손보험 분쟁, 형사수사로 풀 일인가 [김기동의 이슈&로(LAW)]
- 민사적 분쟁까지 형사사건화하는 관행 재검토해야
보험사기 수사에 과도한 공권력 투입 바람직하지 않아
그런데 지금 현장에서 벌어지는 수사의 실상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필자가 검사로 재직했을 당시부터 경찰이 수사하는 보험사기 사건 중 상당수는 실손보험 관련 사건이었다. 최근 몇 년간 특정 치료 유형을 겨냥한 수사가 파도처럼 전국을 휩쓸었다.
‘보험사 태만’이 가입자 책임이 돼선 안돼
백내장 수술의 경우, 수술 후 병원에 머문 시간이 짧다거나 입원 치료의 필요성이 없다는 이유 등으로 ‘실질적 입원이 아니다’라는 논리를 앞세워 수만 명의 보험금 청구가 보험사기로 고소됐다. 무릎 줄기세포 치료(BMAC·골수 흡입 농축물 주사)는 국가가 신의료기술로 인정한 시술임에도, 입원 필요성이 없다는 보험사의 판단을 근거로 피의자가 양산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지금도 마찬가지고, 그 규모는 점점 커지고 있다.
이 사건들에는 반복되는 하나의 패턴이 있다. 보험사는 신상품을 출시하면서 보험금 지급 범위를 약관에 명확히 특정하지 않은 채 광범위하게 판매한다. 초기엔 별다른 제동 없이 보험금을 지급하다가, 청구 건수가 급증해 손해율이 악화되면 기다렸다는 듯 보험사기 혐의 고소를 남발하기 시작한다. 형사사건화가 되면 그 이후는 보험금 지급 거절과 기지급금 반환 소송이 뒤따른다. 성실하게 보험료를 납부해 온 가입자들이 하루아침에 피의자 신세가 된다.
백내장 사태가 단적인 예다. ‘계속하여 6시간 이상 체류’라는 기준은 2021년 4세대 실손보험 약관에서 처음 등장한 것이다. 그럼에도 보험사들은 이 기준을 2016년 약관 변경 이전 가입자에게까지 소급 적용하며 보험금 지급을 거부했다.
원래 약관 어디에도 없던 기준을 사후적으로 들이밀며, 수십 년 전 체결한 계약에 기초한 가입자의 정당한 청구마저 사기로 몰아간 것이다. 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나온 사례도 있었지만, 그사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수사와 재판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무릎 줄기세포 치료 분쟁도 구조는 다르지 않다. 정부가 2023년 7월 신의료기술로 공식 인정한 BMAC 시술에 대해 보험사들은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거나 심사를 보류했다. 또 보험사가 지정한 자문의의 검토를 받는 데 동의하지 않으면 보험금 심사 자체를 진행하지 않겠다는 사례가 빈발했다.
보험업계 자료에 따르면 골수 무릎주사 관련 실손보험 청구 건수는 신의료기술 인정 이후 반년 만에 30여 건에서 856건으로, 보험금 지급액도 9000만원에서 34억원으로 폭증했다. 건수로는 약 28배, 지급액으로는 약 37배에 달하는 전례 없는 급증세에 보험업계는 즉각 위기감을 느꼈고, 그 시점에 수사가 시작됐다.
여기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것이 진짜 ‘사기’인가. 대부분의 사건에서 본질은 ‘입원치료' 등 보험약관에 기재된 보험금 지급 요건에 해당되는지 여부다. 계약 해석상 다툼에 가깝고, 민사소송을 통해 해결할 성격의 문제다.
사기죄의 본질은 기망(欺罔), 즉 상대방을 적극적으로 속여 재산상 이익을 편취하는 것이다. 그런데 위 사례들에서 환자 대부분은 의사의 권유로 치료를 받고 그 치료비를 청구했을 뿐이다. 허위 진단서를 꾸미거나 받지 않은 치료를 받은 것처럼 서류를 조작한 것이 아니다.
보험사에는 심사 절차가 있다. 진료기록 등을 사전에 제출받아 검증했다면 충분히 걸러낼 수 있었던 유형이다. 보험사의 부실한 심사로 보험금이 지급된 경우까지 피기망자의 착오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보험사의 태만을 사후적으로 가입자의 책임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공권력은 신뢰 복원에 쓰여야 한다
긍정적인 움직임도 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취임 직후 금융소비자 보호를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밝힌 데 이어, 금감원 앞에서 시위 중이던 백내장 실손보험금 민원인들과 직접 면담하고 일부 사안에 대해 보험사에 재검토를 요청했다.
규제기관의 수장이 민원 현장에 직접 나섰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행보다. 이를 계기로 한 걸음 더 나아갈 필요가 있다. 분쟁이 불거진 뒤에 수습하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 보험상품 판매 단계에서부터 보험금 지급 범위와 제한 조건을 소비자에게 명확히 설명하도록 보험사에 대한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법이다.
수사 자원은 무한하지 않다. 경찰과 검찰의 수사력이 실손보험 관련 고소 사건 처리에 쏠리는 사이, 보이스피싱 피해자, 전세사기 피해자, 폭력 피해자들의 사건 처리가 밀린다. 민생을 위한 수사 서비스가 왜곡되는 것이다. 민사 분쟁의 성격이 강한 실손보험 청구 문제는 금융감독원의 분쟁조정, 약관 명확화, 보험사 자체 심사 강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 약관의 불명확성이나 지급 기준의 사후 변경에서 비롯된 사건에 대해서는, 수사기관이 고소장 각하 등으로 수사권 발동을 자제하는 것도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법과 계약은 신뢰 위에 선다. 약관이 불명확한 채로 계약이 체결되고, 분쟁이 생기면 형사고소로 이어지는 구조가 반복되는 한, 그 신뢰는 회복되지 않는다. 공권력은 그 신뢰를 복원하는 데 쓰여야지, 민사적 분쟁의 해결 수단으로 동원되어서는 안 된다.
김기동 법무법인 로백스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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