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현대차그룹 마지막 1% 채우는 남양연구소 [가봤어요]
- 현대차그룹 연구개발 심장 남양연구소
차체 없이 달리고, 로봇이 단차 잡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작되는 품질 경영
기자는 1일 남양기술연구소를 찾았다. 현대차그룹 연구개발의 심장으로 불리는 곳이다. 이날 마주한 풍경은 흔히 떠올리는 자동차 개발 현장과 달랐다. 위장막을 두른 시험차가 트랙을 달리는 장면보다, 차가 만들어지기 전 오류를 먼저 잡아내는 장비들이 눈에 들어왔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강조해 온 품질 경영의 최전선이 이곳이라는 생각 마저 들었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노바랩이었다. 노바랩은 차세대 개방형 제어기 검증실이다. 연구실 안에는 완성차 대신 철제 구조물 위로 전선과 제어기, 전장 부품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자동차라기보다는 수술대 위에 놓인 장기에 가까웠다. 차체 안쪽 깊숙이 숨어 있어야 할 제어기와 배선이 모두 밖으로 드러나 있었다. 자동차의 혈관과 신경망을 그대로 꺼내 놓은 듯했다.
이곳은 차가 만들어지기 전 전기·전자 시스템을 먼저 검증하는 공간이다. 자동차가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바뀌면서 제어기 복잡도는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대형 차종의 경우 전장 부품은 수백 개, 와이어링 커넥터만 약 500개에 달한다. 완성차가 만들어진 뒤에는 이 부품들이 차량 깊숙한 곳으로 들어간다.
문제가 생긴 뒤 뜯어보려면 늦다. 이 때문에 노바랩이 1차 거름망 역할을 수행한다. 검증 과정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제어기 소프트웨어가 나오면 노바랩에서 치명적인 오류를 먼저 찾아낸다. 이후 부문별 세부 검증을 거쳐 최종 개선 단계로 넘어간다. 방문한 정차 상태 검증 현장에서는 회로·통신·기능·진단 검증이 자동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정차 상태 검증 다음은 주행 상태 검증이었다. 다만 와이어카에는 타이어도, 차체 무게도 없다. 무부하 상태에서는 모터가 실제 주행과 다르게 반응할 수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차량 무게와 같은 부하를 주는 장비를 활용한다. 소형 다이나모미터를 활용한 장비는 실제 주행에 가까운 부하를 능동적으로 구현할 수 있다.
현대자동차 노바랩 연구원과 대화를 나눠보니 현대차그룹의 차세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인 플레오스 커넥트 같은 새 기능도 이곳에서 검증 체계를 거쳤다고 한다. 새 기능은 양산 전 단계에서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다. 기존에 없던 기능일수록 변수도 많다. 다만 현장에서 반복 시험을 거치며 양산 단계에 접어든 뒤에는 검증 체계도 안정화됐다는 설명이다.
현장에는 3차원 측정장비(CMM)가 놓여 있었다. 센서가 측정물에 직접 닿아 좌표값을 읽는 장비다. 장비는 “뚜, 뚜” 소리를 내며 한 포인트씩 차체를 짚었다. 의사가 환부를 찾듯, 로봇은 차체 곳곳의 오차를 찾아냈다. 차체는 환자였고, 측정기는 메스 대신 좌표값으로 이상 부위를 찾아내는 집도의 같았다.
한 대를 측정하는 데 차급에 따라 4~5시간이 걸린다. 측정 포인트는 약 1000개다. 중요한 것은 점 하나가 아니라 점과 점 사이의 관계다. DMC는 여러 측정 포인트를 유기적으로 묶어 하나의 표준을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기준은 양산 공장으로 넘어가 같은 품질 기준으로 활용된다.
도어와 후드, 테일게이트 같은 무빙 부품은 광학식 3D 스캐너가 맡는다. 숙련자가 직접 측정하면 한 부품에 1시간 반가량 걸리지만, 자동화 장비는 약 15분이면 끝낸다. 사람은 측정물을 장착하는 정도만 맡는다. 글라스와 고무 스트립 같은 기능 부품도 사전에 문제가 없을지 예측할 수 있다. 로봇이 집도의처럼 느껴진 이유다.
드라이빙 시뮬레이터도 직접 체험해봤다. 노바랩이 자동차의 신경망을 먼저 검증하는 공간이라면, 드라이빙 시뮬레이터는 실제 도로와 차량을 가상공간에 옮겨 주행 성능을 검증하는 공간이다. 스튜디오 내부에 설치된 운전석에 앉으면 거대한 곡면 스크린이 눈앞에 펼쳐진다. 운전석은 시트와 스티어링휠, 페달 모두 실제 제네시스 G80 양산차 부품을 활용했다.
기자가 놀랐던 점은 도로 노면 질감 구현의 완성도였다. 가상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주행 중 운전석 아래로 잔진동이 올라왔다. 우리가 실제 도로에서 느끼는 노면의 떨림과 소음이 그대로 몸에 전달됐다. 아스팔트 위를 달릴 때의 미세한 진동과 포트홀을 밟을 때 느낌, 차체가 노면을 타고 움직이는 감각 모두 실제 주행에 가까웠다.
날씨 조건도 가상으로 구현할 수 있다. 실제로 비나 눈을 내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타이어와 노면 사이의 마찰계수를 바꿔 젖은 노면이나 눈길을 구현하는 방식이다. 타이어 사양별 차이도 비교할 수 있다. 해외에 나가야 확인할 수 있었던 도로와 기상 조건을 남양 안에서 먼저 검증할 수 있는 셈이다.
현대차는 현실감을 구현하기 위해 각 국가별 노면 특성을 밀리미터 단위로 스캔했다. 아스팔트의 미세한 결, 맨홀, 배수로, 과속방지턱까지 가상환경에 옮겼다. 단순히 도로 모양만 만든 것이 아니라, 타이어가 노면을 밟을 때 운전자에게 전달되는 질감까지 구현한 셈이다. 이 같은 노면 질감 구현 기술은 국내를 넘어 글로벌 기준으로도 최상위권에 속한다는 설명이다.
현장에서는 액상 레진을 굳히는 장비와 금속 와이어를 녹여 쌓는 장비가 가동되고 있었다. 자동용접 장비는 금속을 한 층씩 쌓아 올렸다. 내부 스캐너가 형상 변화를 확인하고, 적층 높이를 실시간으로 조정한다. 단순히 모양만 만드는 게 아니라 원하는 형상에 맞게 계속 보정하며 제작하는 방식이다.
적층 제조의 장점은 단순히 빠르게 만든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금형을 새로 만들기 어려운 부품이나 소량만 필요한 고가 부품에도 활용할 수 있다. 현장에서는 현대차 포니 같은 올드카 부품 복원 사례도 확인할 수 있었다. 과거의 차를 복원하는 기술이 미래차 개발 장비 안에서 구현되고 있는 셈이다.
남양기술연구소에서 본 장면들은 저마다 달랐지만, 방향은 품질 하나로 모였다. 차를 만든 뒤 고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나오기 전 의심하고·달려보고·다듬는 것이다. 전선 하나와 단차 하나, 노면에서 올라오는 작은 진동 하나까지 놓치지 않으려는 과정을 눈앞에서 지켜봤다. 현대차·기아의 마지막 1%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채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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