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월엔 “해외유출 방지” 평가, 열흘 만에 평가 바뀌어
반대매매·기계적 매도 겹치면 환율 급등·실물 경기 타격 우려
[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 한국은행이 삼성전자·SK하이닉스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와 37조7186억원 규모의 빚투(신용거래융자)를 향해 이례적으로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불과 열흘 전만 해도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에 대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평가했던 한은이 입장을 급선회한 것은 단순한 주가 조정을 넘어 외환·금융 시스템 전반을 마비시킬 수 있다는 걱정이 커졌기 때문이라는 평가다.
한은은 지난 6월 24일 금융안정보고서 발표 당시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미국 증시로 떠나는 국내 투자 자금의 해외 유출을 방지하고 외국의 투기성 수요를 국내로 흡수하는 이른바 ‘방파제’ 역할을 해줄 것이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당시 한은은 기초자산이 되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개별 기업의 시가총액이 워낙 크기 때문에 펀드 자금 유입이 미칠 영향이 미미할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 6월 23일 삼성전자 주가가 31만원, SK하이닉스는 255만5000원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두 기업의 시가총액은 각각 1812조3500억원·1820조9500억원에 달했다. 유가증권시장에서 차지하는 두 종목의 합산 시총 비중이 50%를 웃도는 수준이다.
그러나 불과 열흘 사이에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쏠림 현상이 커지면서 한은의 예상은 빗나갔다. 두 종목과 관련한 거래대금 비중이 63.5%를 웃돌았고 국내 주식시장이 ‘삼전닉스’에 갇힌 모습이 연출됐다.
한은은 5일 국민의힘 박성훈 의원실이 한은으로부터 받은 서면질의 답변을 통해 “최근 반도체 업종의 실적 호조 등으로 국내 주식시장에서 일부 기업에 대한 편중도가 크게 확대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런 상황에서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자금까지 몰리면 쏠림이 심해질 수 있다고 했다. 사실상 한국 증시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쏠림 현상이 과도하고 그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고 경고한 셈이다.
주가 상승기에 함께 급증한 빚투도 위험 요인으로 언급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2일 신용거래융자 잔액은 37조7186억원으로 집계됐다. 한은은 “신용융자 등 개인의 레버리지 투자 증가도 일정 수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며 ”이런 상황에서 주가가 크게 조정받을 경우 개인 투자자의 손실 규모가 커지고 반대매매와 환매 증가 등을 통해 주가 변동성이 증폭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최악의 경우 주가 변동성과 개인 투자자 손실 확대 정도로 그치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은이 경고성 메시지를 낸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것이다. 신용융자와 단일 레버리지로 쌓아 올린 반도체 증시탑이 무너질 때 파생되는 연쇄 반응이 한국 금융시장 전체를 흔들 수 있다는 우려다.
글로벌 반도체 사이클이 꺾이거나 악재가 발생해 두 종목의 주가가 하락하면 레버리지 ETF는 하루 수익률 배수를 맞추기 위한 자산 재조정에 들어간다. 이 메커니즘에 따라 장 마감 직전 매도 폭탄이 쏟아진다. 여기에 37조7186억원에 달하는 신용융자의 반대매매가 겹치면 코스피가 수직 낙하할 가능성이 커진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식을 함께 담은 다른 ETF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동반 매도가 이어질 경우 한국 증시에 대한 신뢰가 붕괴할 수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자금을 회수해 한국을 떠나고 대규모 대외 자금 유출은 원화 가치 급락 즉 환율 급등으로 이어지는 시나리오가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충격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환율이 급등하면 원자재와 부품을 수입해야 하는 국내 제조업 전반의 비용 부담이 치솟는다. 최근 환율이 1500원 중반까지 치솟으면서 수출입 기업의 불안감도 커졌다. 물가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한은이 기준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예상이 금융권에서는 기정사실처럼 이야기되고 있다. 주식시장 자산 증발과 기준금리 인상 및 개인들의 소비 위축까지 겹치면 실물 경기는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된다.
한은이 “거래 쏠림 및 레버리지 축적이 금융 불안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관계 당국과 긴밀히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 전망을 볼 때 주가가 급락할 가능성은 낮지만 쏠림 현상 자체의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며 “국내 증시에 대한 신뢰와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레버리지 문제를 해결한 보완 정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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