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일반
“내 퇴직금, 중간에 빼서 쓸 수 있나”…중도인출 조건과 절세 전략 [이병희의 연금술사]
- DB, 중도인출 불가…DC·IRP 6가지 인출 사유 인정
무턱대고 IRP 계좌를 깨면 16.5% 세금 폭탄
계좌 분산 통해 세금 부담 최소화
[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 퇴직연금은 직장인이 노후를 위해 준비하는 든든한 보루다. 은퇴 시점까지 적립·운용해 노후 자금으로 써야 하지만, 살다 보면 뜻하지 않게 목돈이 필요한 순간을 맞을 수 있다. 자신이나 가족이 큰병에 걸려 거액의 치료비가 필요할 때, 급등한 전세보증금을 마련해야 할 때도 있다.
우선 중도 인출이 가능한지를 따지는 나이 기준이 있다. 만 55세다. 가입자가 만 55세가 되면 계좌에 있는 자금을 자유롭게 꺼내 쓸 수 있다. 연금으로 수령할 수도 있고 일시금으로 한 번에 찾아 쓸 수도 있다.
문제는 만 55세 이전에 급전이 필요한 경우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퇴직연금은 예적금처럼 언제든 자유롭게 해지하거나 일부를 꺼내 쓸 수 없도록 엄격하게 제한되지만, 연금의 종류에 따라서 혹은 가입자의 상황에 따라서 중도인출이 가능한 경우가 있다.
무주택자 주택 구입부터 6개월 이상 요양까지 법정 허용 사유
우선 확정급여형(DB) 퇴직연금에 가입한 직장인이라면 중도인출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DB형은 회사가 연금 재정을 알아서 굴리고 최종 퇴직 시점에 정해진 퇴직금을 지급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재직 중인 근로자가 개인 사정으로 회사의 적립금을 임의로 헐어 쓸 수 없다는 뜻이다. 만약 DB형 가입자가 급전이 필요해 퇴직금을 당겨 쓰고 싶다면 먼저 회사의 동의를 얻어 확정기여형(DC)으로 갈아타야 한다.
반면 DC형이나 개인형퇴직연금(IRP)은 특정 요건을 충족할 경우 6가지 사유에 한해 예외적으로 자금을 인출할 수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무주택자인 가입자가 본인 명의로 주택을 구입하는 경우 ▲무주택자인 가입자가 주거를 목적으로 전세보증금을 부담하는 경우 ▲본인 또는 부양가족이 6개월 이상 요양이 필요한 경우 ▲신청일 기준 최근 5년 이내에 가입자가 파산선고를 받은 경우 ▲신청일 기준 최근 5년 이내에 가입자가 개인회생절차 개시 결정을 받은 경우 ▲그 밖에 천재지변 등으로 피해를 입은 경우 등이 해당한다.
핵심적인 사유 중 하나는 거주와 관련된 상황이다. 무주택자가 주택을 마련하려고 할 때, 혹은 목돈의 전세보증금이 필요한 경우 인출이 가능하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공통으로 중도인출 신청서, 주민등록등본, 등기부등본, 지방세 세목별 과세증명서가 필요하다. 주택 구입 시에는 매매계약서나 분양(공급)계약서 사본, 전세의 경우 임대차계약서 사본을 구비해야 한다.
둘째는 본인이나 배우자, 혹은 부양가족이 6개월 이상 요양이 필요한 경우다. 질병이나 부상으로 장기 치료가 필요할 때 의료비 지출액이 연간 임금총액의 12.5%를 초과하는 경제적 타격이 발생하면 중도인출이 승인된다. 중도인출 신청서와 함께 6개월 이상 요양을 증명하는 진단서·소견서(또는 건강보험공단 장기요양확인서), 소득 입증을 위한 전년도 근로소득원천징수영수증이 필요하다. IRP 계좌의 경우 의료비 목적 인출 시 DC형과 달리 연간 임금총액의 12.5%를 초과해야 하는 요건이 면제되는 특징이 있다.
파산선고 및 개인회생 절차가 개시된 경우에도 퇴직연금을 중도인출할 수 있다. 단 신청일로부터 최근 5년 이내에 파산선고·개인회생 절차 개시 결정을 받은 경우에만 한정된다. 이는 신청자의 경제적 재기를 돕는 차원에서 허용되지만, 5년이 넘은 경우에는 인출이 인정되지 않는다.
‘16.5%’ 세액공제 토해내는 기타소득세 페널티
법정 사유를 충족해 정당하게 받는 ‘중도인출’과 단순히 돈이 급하다는 이유로 계좌를 깨버리는 ‘중도해지’는 차이가 있다. IRP의 경우 6가지 법적 사유에 해당하지 않아도 자금이 필요한 경우 중도해지해 자금을 사용할 수 있다. 주식 대금 마련이나 개인 부채 상환, 생활비 마련 등의 이유로 해지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럴 경우 세금 폭탄을 감내해야 한다는 점이다. IRP 계좌를 중도 해지하면 그동안 연말정산 시 세액공제 혜택을 받았던 개인 적립금 원금과 계좌 내에서 불어난 모든 운용 수익을 합산한 금액 전체에 대해 16.5%의 기타소득세가 부과된다. 꾸준히 IRP에 납입해 세액공제를 받아온 직장인이 어느 날 갑자기 계좌를 깨버리면 그동안 아꼈던 세금의 몇 배에 달하는 거액의 세금을 한 번에 토해내야 한다.
총급여가 5500만원을 넘는 직장인이 연간 900만원을 납입하면 세액공제율 13.2%를 적용받아 118만8000원의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만약 10년간 넣었다면 총 1188만원을 환급받는데, 이를 55세 이전에 해지하게 되면 세액공제 받은 원금(9000만원)에 대한 기타소득세 1485만원(9000만원 × 16.5%)의 세금을 내야 하는 것이다.
총급여가 5500만원 이하인 직장인은 세액공제율이 16.5%이기 때문에 총 1485만원을 환급받았다가 해지 시 원금 기준 1485만원 이상의 세금을 토해내게 된다. 만약 이들 가입자가 10년 동안 납부한 원금 9000만원을 운용해 5000만원을 벌었다면, 5000만원에 대한 세금 16.5%가 추가로 부과된다.
퇴직연금도 분산 관리…계좌 쪼개기로 지키는 노후 자산
법정 중도인출 사유에 해당하지 않거나 IRP 세제 혜택을 극단적 선택으로 날려버리고 싶지 않다면 대안을 찾아야 한다.
전문가들은 IRP 계좌를 분할해서 관리하는 분산 전략을 추천한다. IRP 계좌는 금융회사별로 하나씩 여러 개 만들 수 있다. ▲세액공제를 목적으로 매년 돈을 붓는 계좌 ▲과거 직장에서 이직할 때 받은 퇴직금을 이체해 둔 계좌 ▲여유 자금을 추가로 납입한 계좌 등으로 나눠서 운용하는 게 가능하다. 세액공제를 목적으로 하더라도 2~3개 계좌에 나눠 담을 수 있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만약 예상치 못한 급전이 필요할 때 계좌가 하나로 통합되어 있으면 전체를 흔들어야 한다”며 “계좌를 나눠 관리하면 세액공제나 과세이연 혜택이 걸려 있는 핵심 계좌는 보존하고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계좌를 골라 정리할 수 있어 유리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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