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
신창재의 ‘디지털 생보’ 13년 실험…3690억 투입 끝에 흡수합병
- 라이프플래닛 내년 4월 흡수합병…독립법인 실험 13년 만에 종료
누적 적자 2200억원…IFRS17·K-ICS에 독자 성장 한계
브랜드·인력은 유지…디지털 역량 교보생명 전 사업에 이식
[이코노미스트 이승훈 기자]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이 디지털 보험시장 공략을 위해 야심차게 출범시킨 교보라이프플래닛생명보험(라이프플래닛)이 13년 만에 모회사인 교보생명에 흡수된다. 교보생명이 설립 이후 약 3690억원을 투입하며 성장을 지원했지만 한 차례도 연간 흑자를 내지 못하면서 국내 최초 인터넷 생명보험사의 독립법인 실험도 막을 내리게 됐다.
16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교보생명과 라이프플래닛은 전날 각각 이사회를 열고 라이프플래닛의 기존 사업과 인력을 교보생명이 흡수합병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교보생명이 라이프플래닛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어 이번 합병은 주주총회 승인 대신 이사회 승인으로 갈음할 수 있는 '소규모 합병' 방식으로 진행된다. 양사는 금융당국의 합병인가 등 필요한 절차를 거쳐 내년 4월 합병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라이프플래닛은 2013년 국내 최초 인터넷 전문 생명보험사로 출범했다. 고객이 설계사를 거치지 않고 보험 가입부터 계약 유지, 보험금 청구까지 온라인으로 처리하는 디지털 보험 모델을 내세웠다. 출범 당시 신 회장은 4~5년 안에 손익분기점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대했던 수익성 확보에는 실패했다. 출범 이후 매년 적자를 기록하면서 단 한 차례도 연간 흑자를 내지 못했다. 지난해 말 기준 누적 적자는 약 2200억원에 달한다.
모회사인 교보생명의 자금 수혈도 계속됐다. 교보생명은 라이프플래닛 설립 당시 일본 인터넷 생보사 라이프넷과 함께 238억4000만원을 출자해 지분 74.5%를 확보했다. 2018년에는 라이프넷이 보유한 지분 25.5%를 81억6000만원에 전량 인수해 100% 자회사로 편입했다.
이후에도 2014년부터 2024년까지 유상증자를 통해 총 3370억원을 추가 투입했다. 설립 당시 출자금과 라이프넷 지분 인수대금, 유상증자액을 모두 합치면 교보생명이 라이프플래닛에 투입한 자금은 약 3690억원에 이른다.
외형 성장도 제한적이었다. 지난 6월 말 기준 라이프플래닛 고객은 23만여명, 총자산은 5273억원이다. 올해 상반기 보험수익은 91억원을 기록했으며 지급여력(K-ICS·킥스) 비율은 162.97%다.
다만 교보생명이 장기간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라이프플래닛을 유지해온 데에는 단기적인 보험 판매 실적뿐 아니라 디지털 보험사업의 기술과 운영 경험을 축적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국내 보험시장에서 비대면 가입부터 계약관리·보험금 청구까지 전 과정을 디지털화하는 실험을 일찍 시작한 만큼, 13년간 쌓인 플랫폼과 고객 데이터 활용 경험 등은 향후 교보생명의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활용할 수 있는 자산으로 꼽힌다.
IFRS17·K-ICS에 막힌 디지털 생보 성장
이번 합병에는 새 회계제도(IFRS17)과 K-ICS 도입 이후 달라진 보험산업 환경도 영향을 미쳤다.
교보생명 역시 강화된 자본건전성 규제 아래에서 디지털 보험사가 독립적인 성장을 지속하는 데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디지털 생보사의 주력 상품인 단기·소액·저축성보험만으로는 미래 이익의 핵심 지표인 보험계약서비스마진(CSM)을 충분히 확보하기 어려운 데다 K-ICS 비율까지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AI를 비롯한 신기술 경쟁이 본격화하면서 보험사의 기술과 인프라 투자 부담도 커지고 있다. 별도 디지털 보험사가 독자적으로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기보다 모회사와 자본·인프라를 공유하는 편이 효율적이라는 판단이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보험산업의 규제 환경이 바뀐 이후 이사회에서 수차례에 걸쳐 고객보장 실천을 위한 최선의 방안을 논의했으며 최종적으로 흡수합병을 결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다만 교보생명은 이번 합병을 디지털 보험사업의 철수가 아닌 전략 전환으로 보고 있다. 별도 법인을 통한 디지털 보험사 육성 대신 라이프플래닛이 지난 13년간 축적한 기술과 사업 경험을 교보생명 본체에 내재화하는 방식이다.
교보생명은 합병 이후 독립사업부인 '라이프플래닛사업부'(가칭)를 신설한다. 라이프플래닛 브랜드도 유지하고 기존 디지털 역량을 상품 개발과 마케팅, 고객관리, 영업채널 등 보험사업 전반에 활용할 방침이다.
라이프플래닛이 구축한 디지털 사업 역시 이어간다. 디지털 보험 마케팅 플랫폼 '라플레이'는 약 35만명의 회원을 확보했으며 라이프플래닛 전체 매출의 약 20%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관련 디지털 기술의 첫 해외 판매에도 나섰고 현재 복수 국가 보험사를 대상으로 추가 공급을 협의하고 있다.
기존 가입자의 보험계약과 서비스도 그대로 유지된다. 합병 이후에도 기존 앱과 홈페이지 등을 이용할 수 있으며 시스템 통합은 고객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단계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라이프플래닛의 디지털 전문성과 혁신성, 민첩성을 교보생명의 보험사업 역량과 결합해 고객에게 더 나은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며 "통합 과정에서도 기존 고객의 계약과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유지해 고객보장의 혜택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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