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자동차 계기판…안전에는 문제없나 [왜있을CAR]
- 테슬라·볼보 등 속도계 중앙 디스플레이로 통합
현행 안전기준상 문제없지만 시선 분산·고장 우려
수만 개의 부품이 모여, 하나의 차량이 완성됩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제 몫을 다하는 작은 부품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과 닮아 있습니다. 작고 하찮아 보일지라도, 그 어느 하나 대체될 수 없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하는 부품들이 차를 움직이고·길을 만들고·앞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지금부터, 미처 보지 못했던 부품들을 하나씩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편집자주]
[이코노미스트 박세진 기자] 자동차 계기판이 사라지고 있다. 차량의 속도와 주행거리, 각종 경고등을 표시하던 계기판의 기능이 중앙 디스플레이로 옮겨가면서다. 자동차 제조사들은 이를 실내 디자인의 변화이자 기술 혁신으로 내세운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운전석 주변의 물리적 장치를 줄이고 여러 기능을 하나의 화면에 통합하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중앙 디스플레이를 중심으로 실내 구조를 설계하는 방식이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 잡는 모습이다.
속도만 표시하면 된다?…계기판 위치 규정 없는 현행법
국내 완성차 업체와 수입차 브랜드도 이러한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신형 아반떼에 운전대 뒤 별도 계기판을 기본으로 제공하는 대신 선택사양으로 마련했다. 기본 모델에서는 중앙 디스플레이를 통해 속도 등 주행정보를 확인해야 한다. 볼보 EX30 역시 별도 계기판 없이 중앙 디스플레이로 주행정보를 제공한다.
계기판이 없는 자동차는 국내 자동차 안전기준에 부합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현행법상 문제는 없다. 자동차의 속도와 각종 주행정보를 운전자가 확인할 수 있다면 표시장치가 반드시 운전대 뒤에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자동차 제조사가 차량 제원을 신고할 때도 계기판 설치 방식은 별도의 관리 대상이 아니라는 의미다. 자동차의 크기와 성능 등 주요 제원과 달리 운전자에게 주행정보를 제공하는 방식은 별도 항목으로 구분하지 않는 것이다.
‘자동차 및 자동차부품의 성능과 기준에 관한 규칙’ 제54조와 제110조는 자동차에 속도계를 설치하고 운전자가 주야간에 속도값을 명확하게 읽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속도표시부는 운전자의 전방 시야 범위 내에 위치해야 한다.
운전대 뒤에 독립적인 계기판을 설치하도록 의무화한 규정은 없다. 국토부는 역시 별도 계기판 설치 여부나 중앙 디스플레이를 통한 정보 표시방식을 구분해 규정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기계식 계기판뿐 아니라 디지털 방식의 중앙 디스플레이 등을 통해 주행정보를 표시하는 것도 가능하다.
국제기준도 비슷하다. 국제연합(UN) 자동차 관련 국제기준인 UN R39와 UN R121은 속도 표시와 각종 표시장치의 시인성 등에 관한 기준을 정하고 있지만 계기판의 설치방식을 일률적으로 제한하지 않는다. 계기판이 어디에 설치됐는지보다는 운전자가 필요한 정보를 제대로 확인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현행 제도에서는 운전대 뒤에 계기판을 둔 차량과 중앙 디스플레이로 주행정보를 제공하는 차량에 동일한 안전기준이 적용된다. 그러나 두 방식은 운전자가 정보를 확인하는 과정부터 차이가 있다. 자동차 실내 구조가 달라지는 상황에서 기존 안전기준이 이러한 변화를 충분히 반영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속도 확인하려 시선 이동…화면 꺼지면 정보 확인 어려워
해외 연구에서도 계기판 위치에 따른 차이가 확인된 바 있다. 운전대 뒤 계기판과 차량 중앙에 배치된 속도계를 비교한 연구에서는 중앙 속도계를 사용할 때 운전자의 시각적 부담과 주의 분산이 더 크게 나타난 것으로 분석됐다.
같은 속도 정보를 표시하더라도 운전자의 정면에 배치된 계기판과 중앙에 설치된 디스플레이가 주행 중 운전자에게 미치는 영향은 다를 수 있다. 기존 차량에서는 운전자가 정면에 가까운 위치에서 속도를 확인할 수 있지만 중앙 디스플레이 방식은 시선을 차량 중앙으로 옮겨야 한다. 화면의 위치와 크기, 정보 배치에 따라 운전자의 시선 이동의 정도도 달라질 수 있다.
디스플레이가 고장 났을 때도 마찬가지다. 별도 계기판이 있는 차량은 중앙 인포테인먼트 화면에 문제가 생겨도 계기판을 통해 주행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반면 속도 등 필수정보를 중앙 디스플레이 하나에 통합한 차량은 화면이 꺼지면 해당 정보를 확인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중앙 디스플레이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뿐 아니라 화면이 꺼지거나 일부 기능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도 운전자가 필요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이유다. 평상시 주행정보를 표시하는 것과 고장 상황에서도 이를 안정적으로 제공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자동차 제조사들이 계기판을 없애는 이유는 분명하다. 실내 디자인의 자유도를 높이고 여러 기능을 하나의 디스플레이에 통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운전석 주변의 물리적 장치를 줄여 실내 공간을 간결하게 구성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디자인의 변화가 안전성 향상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계기판은 단순한 편의사양이 아니라 운전자의 안전과 직결되는 장치다. 계기판을 없애는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계기판이 없어도 운전자가 필요한 정보를 안전하게 확인할 수 있는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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