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릴 땐 친환경, 채울 땐 화석연료…수소차의 ‘회색빛 숙제’ [회색빛 韓 수소]①
- [회색빛 韓 수소] ①
수소차 5만대 눈앞…화석연료 기반 생산에 탄소배출·수급 부담
바이오가스·수전해로 전환 시동…생산 규모 확대·비용 절감 관건
[이코노미스트 박세진 기자] 국내 수소차가 5만대 돌파를 앞두고 있다. 수소버스도 3500대를 넘어섰다. 차량이 늘면서 연료 소비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수소 공급망은 여전히 화석연료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다. 주행 중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수소차의 장점을 탄소 감축으로 연결하려면 연료 생산 단계의 배출도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소차는 늘었는데…생산은 정유·석화 중심
14일 기후에너지환경부에 따르면 올해 8월까지 국내 수소차 누적 보급 대수는 4만9722대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 4만4655대보다 5067대 늘었다. 이 가운데 수소버스는 3551대다. 올해 1~8월 수송용 수소 소비량도 1만3711t으로 전년 동기 대비 47% 증가했다. 하루 평균 약 56t이 차량 연료로 사용된 셈이다.
충전시설도 늘고 있다. 한국수소연합이 운영하는 수소경제 종합정보포털(H2Hub)에 따르면 국내 상업용 수소충전소는 2018년 13기에서 2020년 65기, 2022년 200기, 2024년 382기로 증가했다. 지난해 말에는 449기를 기록했고 올해 8월 기준 468기까지 확대됐다. 다만 지난해 증가분은 67기로 2024년(115기)보다 줄었다. 올해 1~8월에는 19기가 추가됐다.
문제는 차량과 충전소가 늘고 있지만, 정작 연료인 수소는 여전히 정유·석유화학 등 화석연료 기반 산업에서 주로 생산된다는 점이다. 한국석유관리원과 한국가스공사 등의 통계에 따르면 2024년 국내 수소 생산량은 268만1479t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정유사가 103만3722t, 석유화학사가 111만4517t을 생산했다. 두 업종이 전체 수소 생산의 약 80%를 차지했다.
부생수소는 석유화학이나 제철 공장에서 다른 제품을 만들 때 함께 나오는 수소를 회수하는 방식이다. 기존 공정에서 얻을 수 있지만 공장 가동률에 따라 공급량이 달라지고, 해당 공정에서 화석연료를 사용하면서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
개질수소는 천연가스를 고온의 수증기와 반응시켜 만드는 수소다. 이 과정에서도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
화석연료 기반 생산의 또 다른 한계는 원료 수급과 가격 변동에 취약하다는 점이다. 최근 중동전쟁과 국내 석유화학 산업 재편으로 나프타 기반 부생수소 공급이 일부 감소했다. 나프타는 원유를 정제해 얻는 석유화학 기초 원료다. 원료 수급과 공장 가동 상황의 변화가 부산물인 수소 공급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다.
수소 가격에도 여파가 미쳤다. 정부는 중동전쟁에 따른 수소 가격 상승으로 버스업계의 부담이 커지자 올해 10~12월 수소버스 연료보조금을 ㎏당 5000원에서 6000원으로 한시 인상하기로 했다. 기존보다 20% 늘어난 금액이다.
이는 에너지 안보와도 연결된다. 2024년 국내 에너지 수입 의존도는 93.7%에 달했다. 수소를 국내에서 생산하더라도 원료를 수입 화석연료에 의존하면 국제유가와 천연가스 가격, 해외 공급 여건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정부는 신규 생산설비 등을 통해 늘어나는 수요에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연말까지 추가로 필요한 수송용 수소는 최대 1만1100t, 같은 기간 공급 가능한 물량은 최대 1만4500t으로 예상하며 수급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공급량을 늘리더라도 화석연료 중심의 생산 구조가 유지되면 원료 수급과 가격 변동에 대한 취약성은 남는다.
대안으로는 재생에너지를 활용한 수소 생산이 꼽힌다. 태양광이나 풍력으로 만든 전기를 이용해 물을 수소와 산소로 분리하는 ‘수전해’ 방식이 대표적이다. 기존 석유화학 공정이나 천연가스를 원료로 사용하지 않고도 수소를 생산할 수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도 이러한 방식이 수입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추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해외에서도 이 같은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중국 장쑤성은 2030년까지 신규 수소 공급에서 재생에너지 기반 그린수소가 주된 비중을 차지하도록 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일본은 후쿠시마현에 태양광 등을 활용한 10MW급 수전해 시설을 구축해 생산한 수소를 차량 연료 등으로 공급하고 있다. 유럽연합(EU)도 ‘유럽수소은행’을 통해 재생수소 생산을 지원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관련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수소사업 브랜드 ‘HTWO’(에이치투)를 중심으로 기존 화석연료 기반 공급망을 보완할 수 있는 수소 생산시설을 구축하고 있다. 하수 슬러지에서 발생한 바이오가스로 수소를 생산하는 충북 청주의 ‘에이치투 에너지 청주’와 물을 전기분해해 수소를 생산하는 전북 부안의 수전해 시설이 대표적이다.
다만 국내 수소 공급망 전체를 바꾸기에는 아직 생산 규모가 작다. 청주 시설의 하루 생산능력 0.5t은 전국 수송용 수소의 하루 평균 소비량 약 56t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부안 시설의 하루 생산능력 1t도 같은 기준으로 약 1.8% 수준이다. 실제 공급량이 아닌 설비 생산능력을 기준으로 한 비교다. 기존 공급망을 대체하려면 생산 규모 확대와 함께 생산비용을 낮추는 것이 과제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생산비용과 공급 안정성 측면에서 부생수소와 개질수소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다”며 “장기적으로는 청정수소의 생산단가를 낮추고 공급 규모를 확대해야 수소차 보급이 실질적인 탄소배출 감축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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