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글로벌에 한국을 알리는 대표선수 될 것”[이코노 인터뷰]
- 정혜연 ING은행 한국대표
한국 진출 35주년 맞은 네덜란드계 은행
현지 금융으로 한국 기업 해외 확장 지원
[이코노미스트 김윤주 기자] 한국 기업이 해외 각지에 공장을 세우고, 현지 통화로 자금을 조달하는 순간 은행의 일도 국경을 넘는다. 한국 기업의 글로벌 행보를 뒷받침하는 곳은 다름 아닌 네덜란드계 은행이다. 한국 진출 35주년을 맞은 ING은행의 정혜연 한국 대표를 만나 한국 기업의 해외 진출을 돕는 금융 전략을 들어봤다.
금융사는 경쟁 아닌 한 팀…해외 금융시장 잇는다
서울 중구 파이낸스타워에 위치한 ING은행 한국 사무실에서 정 대표를 만났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네덜란드의 상징색인 ‘오렌지’(Orange) 색상으로 꾸며진 인테리어가 눈에 들어왔다. ING는 오렌지색에 직원·고객·금융기관 간 협업의 의미를 담고 있다. ING는 네덜란드에 본사를 둔 종합 금융그룹이다. 1991년 한국에서 은행업을 시작해 올해 한국 진출 35주년을 맞았고, 2016년에는 ING증권 서울지점을 설립해 채권자본시장(DCM)과 금융투자 부문을 확대했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ING은행의 주요 업무는 기업금융이다. 개인 고객을 상대로 예·적금이나 주택담보대출을 판매하는 국내 시중은행과 달리, 국내외 기업과 금융기관에 대출·무역금융·외화 조달·환헤지·채권 발행 주선 등을 제공한다. ING증권 서울지점은 채권·주식 발행, 파생상품 등 자본시장 업무를 맡아 국내 기업과 기관투자자를 글로벌 투자자와 연결한다.
정 대표는 외국계 은행의 한국 대표 역할이 결국 ‘연결과 소통’에 있다고 봤다. 그는 “글로벌 금융회사 한국 대표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한국을 제대로 대변해야 한다는 책임감”이라며 “외국계 은행에서 한국 대표를 맡으면 일종의 ‘한국의 대표 선수’가 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국내 기업과 금융기관은 경쟁 상대가 아니라 같은 팀”이라며 “다른 나라와 비교해 한국이 가진 강점과 경쟁력을 본사에 적극 알리고, 한국에 대한 지원이 계속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ING은행은 국내 금융사들과 협업한다. 국내 금융사가 한국 기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할 때 ING의 현지 네트워크와 외화 조달 역량을 활용하는 식이다. ING은행은 BNK금융그룹과 해상풍력·해운 분야 협력 양해각서를 맺었고, 한국수출입은행·한국무역보험공사 등 정책금융기관과도 국내 기업의 해외 프로젝트 금융을 지원하고 있다.
유럽 네트워크로 넓힌 K-기업의 자금 조달 창구
ING은행의 강점은 유럽 현지 네트워크다. ING는 전 세계 35개 시장에 진출해 있고, 유럽·중동·아프리카(EMEA)에만 20여개국 이상의 거점을 뒀다. 최근에는 폴란드와 헝가리로 향하는 배터리·전기차 밸류체인 기업, 미국에서 매출채권 금융을 필요로 하는 자동차 부품 기업 등의 상담이 늘었다.
정 대표는 “한국 내에서는 대출만 잘해도 은행 역할을 할 수 있지만 해외에 나가면 그 나라의 규제와 통화, 거래 관행까지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ING는 전기차와 배터리 공장, 관련 밸류체인에 상당한 규모의 금융을 제공해 왔으며, 헝가리와 폴란드 등에 진출하는 한국 기업에는 장기 자금조달뿐 아니라, 공장 설립 이후에도 현지 운전자금과 무역금융·유동성 관리까지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ING의 아시아태평양 시장에서 중요한 시장 중 하나다. 숫자도 성장세를 보여준다. ING은행 한국의 자산 규모는 최근 5년 사이 약 2.3배로 커졌다. ING는 한국 기업의 유로화 채권 발행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ING가 주선한 한국 기업의 유로화 채권 발행 규모는 2024년 3억3133만유로에서 지난해 8억2000만유로로 늘었다. 올해 상반기에도 5억1000만유로를 기록했다. 달러화에 쏠린 자금 조달 창구를 유로화로 넓히려는 기업들의 수요와 맞물린 결과다.
다만 기업의 해외 진출 길이 마냥 넓어진 것만은 아니다. 고금리와 환율 변동성·공급망 재편·지정학적 갈등은 기업의 투자 판단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정 대표는 “최근 주요 고객들과의 논의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주제 중 하나는 유동성 관리이며, 외환 헤지 역시 중요한 우선순위”라고 진단했다.
그가 향후 기업금융의 가장 큰 기회로 꼽은 분야는 인공지능(AI) 인프라다. 특히 AI 데이터센터와 이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전력망에 주목하고 있다. ING는 최근 100메가와트(MW)급 친환경 데이터센터 사업에 4400억원 규모의 녹색대출을 주선했다.
지속가능금융도 같은 맥락이다. 철강·석유화학·해운처럼 탄소 감축이 쉽지 않은 산업은 전환에 막대한 비용이 든다. 정 대표는 금융기관이 친환경이라는 이름만 보고 자금을 공급하기보다, 기업이 어떤 경로와 속도로 탄소를 줄일지 현실적인 전환 계획을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30년 기업금융 현장서 배운 리더십
정 대표는 약 30년간 기업금융 현장에서 활동했다. JP모건증권 투자은행(IB) 부문에서 자동차·조선·에너지·철강 기업의 인수합병(M&A)과 주식·채권 발행을 담당했고, 이후 홍콩상하이은행(HSBC)과 미즈호, BNP파리바를 거쳐 지난해 7월 ING은행 한국 대표를 맡았다. 금융위기처럼 시장이 흔들릴 때마다 한국 기업의 경쟁력을 해외 시장에 설득하는 일 또한 그의 몫이었다.
그는 “한국의 위상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서도 많이 높아졌고, K-컬처를 통해 해외 인지도도 커졌다”면서 “다만 비즈니스에서는 여전히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한 만큼, 한국의 강점과 경쟁력을 적극적으로 대변하는 일이 중요하고, 저 역시 ING 안에서 한국의 존재감을 더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최근 다시 읽은 고전 ‘손자병법’에서 리더십의 해법 또한 찾았다. 그가 처음 해당 책을 접했을 때는 경쟁에서 이기는 법을 담은 ‘싸움의 기술’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ING은행 한국 대표가 된 뒤 다시 읽어 보니, 사람과 조직을 이해하고 이끄는 리더십의 책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정 대표는 “이제는 ‘손자병법’을 단순한 병법서가 아니라 ‘리더십의 바이블’에 가깝게 본다”며 “경쟁에서 이기는 기술보다는 사람과 조직을 어떻게 이끌 것인지에 대한 관점에서 읽어볼 만한 책”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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